장례식장에서

by 드래곤실버

밤 11시 50분.


나는 상주다. 감투를 쓰는 건 좋은 일이지만 이런 감투는 될 수 있다면 몇 번이고 사양을 했을 거다. 근래의 장례식은 예전과 달라서 밤을 새우는 경우도 밤늦게 오는 문상객도 없다고 한다.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우리 쪽 불은 거의 다 꺼진 상태다. 나는 부조금 받는 책상에 혼자 앉아있다.


뭔가 사명감이 있어서 그런 것도 누군가 부탁한 것도 아닌 그냥 그러고 싶었다. 하루 종일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들과 인사하고 혼자서 가만히 있고 싶었다. 생각할 것도 없지만 그냥 생각하고 있는 척을 하고 싶었다.


책상에 턱을 괴고 나는 시간을 보낸다. 장례식장에서 즐거운 생각을 해보려고 한다. 오늘 내게 있어서 좋은 소식은 수육과 육개장을 원 없이(라고는 해도 한 번 추가하면 몇십 만원씩 돈이 나간다.) 먹을 수 있다는 거고 나쁜 소식은 드물게 아주 드물게 내 입맛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기지개를 켠다. 코로나에 걸려 사경을 헤맬 때도 혼자 격리된 채 삼겹살을 구워 먹었을 정도로 생명력이 넘치는 식욕을 가진 나였지만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다 보니 식욕도 없고 그냥 앉아있고 싶을 뿐이었다. 일을 한 것도 아닌데 피곤하고 지친 기분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상황이었는지 가족과 친척 모두 각자 숙소로 또는 장례식장 내 수면실로 이동했다.


그래도 하루의 마지막을 혼자 보낼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렇게 하루가 가고 내일이 되면 다 거짓말이고 장난이라고 하면서


"돌아가면 좋겠다."


시간을 되돌리거나 다른 멀티버스로 간다던가. 타임머신으로 쓸 수 있는 스포츠카나 전자레인지 아니면 다른 세계로 연결되는 옷장, 아니면 문 틈새로 빨려 들어가서 다른 세계선으로 가거나 이런 망상을 해본다. 다른 선택이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까. 나는 어떠한 행동을 해야 했을까.


작은 선택 하나도 후회가 되고 곱씹게 된다. 만약에 만약에라고 생각을 해보고 상상을 해보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책상에 엎어졌다가 눈을 비벼봐도 변한 건 없다. 시공간이 붕괴하거나 다른 세계로 날아가거나 천장에 닿을 만한 거대한 키를 가진 검은 수염이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거인족이 찾아오거나 하지 않는다. 나는 시계를 본다 아직 오늘이 끝나지도 않았다. 그렇게 앉아있는 중 옆 도시에서 고성이 들린다.


귀를 쫑긋 세운다. 상갓집에서 그나마 재밌는 걱정 하나를 직접 볼 수 있는 건가. 나는 기대감을 품고 다른 호실 쪽으로 향한다. 화장실에 가는 척하며 우리 옆 호실을 본다. 젊은 나이의 죽은 사람의 장례식이라 그런지 저쪽은 낮부터 시끄러웠다. 울고 싸우고 그런 버라이어티한 일이 있기를 바라는 건 너무 이기적인 거겠지.


그럼에도 이곳에 있는 모두가 불행하다면 내가 제일 불행한 사람이 아니길 바라는 건 당연한 게 아닐까. 화장실을 나오며 나는 소리가 났던 호실 쪽을 기웃거렸다.


“뭐야. 조용해졌네.”

실망을 하며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시계를 보았다. 새벽 하루가 지나갔다. 근 몇 년간 있었던 날 중에서 가장 최악인 하루가 그래도 지나갔다.


“오늘은 어제보다는 덜 최악이겠지.”


이딴 위로라도 감사한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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