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침번
밤 11시 40분.
불침번을 중에서 나는 2번초를 좋아한다.
"김병장님 불침번이십니다."
1번초 후임이 나를 일찍 깨운다. 2번초는 24시부터 새벽 2시까지 근무를 한다. 그래서 보통 1번초는 11시 50분 쯤에 후번초를 깨우고 후번초 중에서 후임을 깨우지만 나는 내가 불침번을 설 때면 1번초에게 11시 40분에 깨워달라고 특별히 부탁을 한다,
"응. 그래. 고마워. 고생했다. 이제 가서 잘 쉬고. 오늘 당직사관은 누구냐?"
나는 준비를 마치고 당직실 앞으로 간다. 부사수 후임은 늦게 올 테니 나 먼저 당직실로 들어간다.
"그래. 특이사항은 없으니 위치 잘 지키고 늘 하던 대로만 해라."
당직사관은 심드렁하게 말하고 나는 알겠다고 말하고 당직실을 나왔다. 이렇게 기다리고 있으면 부사수인 후임이 당직실로 올 것이다.
"김병장님 먼저 오셨습니까. 역시 소문대로입니다."
옆 생활관 근무지 후임 이일병이다. 오늘 근무 역시 심심하진 않을 것 같다.
"뭐 나야 늘 악명이 높지."
나는 너스레를 떤다.
밤 11시 50분
생활관 휴게실 앞에서 우린 근무를 선다. 이일병은 본인이 준비해 둔 썰을 내게 말했다. 본인 말로는 자기 누나(처음 전입 왔을 때는 굉장히 화제가 되었던 분이었다. 인스타 여신이라고 불렸으니까.)가 겪은 실재 경험담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거 때문에 인터뷰도 했다고?"
"넵. 저희 누나가 편의점 알바를 하는데. 어떤 미친 아줌마가 자기 내연남을 죽이고 그 칼을 이불에다가 싼 다음에 빨래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럼 살인마를 만난 거야? 진짜로?"
"진짜 진짜 진짜입니다."
흠. 군대에서 듣는 얘기는 왜 다 가짜인 거 같은지. 그래도 근무지 부사수라서 제일 친한 후임은 말인데도 왜 이렇게 의심스러운 건지.
"누나가 자정에 그 살인마 아줌마를 만났는데 분위기가 싸했다고 합니다. 그거 잘못했으면 해코지당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던 겁니다."
이일병은 그 특유의 쾌활하고 부산스러운 제스처를 함께 취하며 말했다.
"그 이후로 저희 누나가 참 인간이 되었습니다. 전에는 백정 같았는데 이젠 좀 누나인 거 같습니다."
"특이한 경험을 하셨네. 별일이 없었다는 게 참 다행이다."
얘기는 그렇게 마무리된다. 나는 시간을 본다. 이제 자정이 넘어가고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려고 한다.
"김병장님 저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됩니까?"
이일병에 의해서 침묵이 깨진다.
"뭐가 궁금한데?"
"김병장님은 왜 2번초만 하는 겁니까? 그걸로 유명하시던데. “
“아 그거. 그냥 좋아서. 뭐야 왜 이상한 사람 보는 눈빛이야.”
“뭐가 좋은 겁니까?”
“이 새벽 감성이 좋은 거지. 온전히 하루를 끝내고 내가 하루를 시작한다는 느낌. 나는 하루 하루 새로 살아간다고 생각하면서 살거든. 나는 다른 누구보다도 늦게 죽고 일찍 태어나면서 사는 거지."
"아. 예. 그렇군요."
분위기에 휩쓸려서 괜한 얘기까지 해버린 것 같다. 이일병은 표정이 떨떠름해 보였다.
"김병장님 그 말씀이 종교 관련된 건 아닌 거죠?"
"그냥 루틴, 생활습관인거지. 나는 이 하루를 온전히 즐기고 싶거든."
"과연..... 김병장님 다운 생각인 거 같습니다."
여기서 나다운 게 뭔데라고 물어보면 되는 걸까. 마치 2000년대 드라마 감성마냥 외치면 되는 걸라나.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 새로운 하루를 산다. 이 하루는 어제처럼 마음껏 즐기자. 그런 마인드야. 이해하기 어렵지?"
끄덕끄덕. 이일병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김병장님은 제가 만나본 사람 중에 제일 특이하신 분인 거 같습니다. 좋은 쪽으로요."
"너도 특이한 놈이야. 그런 걸 물어본 후임은 네가 처음이다. 선임들 나한테 많이 물어봤거든. 너한테 했던 대로 대답을 하니까. 웬 미친놈 아니냐는 얘기까지 들었었다."
내 말에 이일병은 웃음을 터뜨렸다.
"자 이제 웃으면서 하루가 지나고 새롭게 시작된다. 오늘도 잘 지내보자."
"넵 알겠습니다."
"근데 그 무서운 이야기 진짜 실화인거지? 그럼 나도 얘기를 하나 해줘야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