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에게 부부동반 모임이란
얼마 전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들이 여럿 모여 있는 단톡방에서 있었던 일이다. 누군가가 가끔씩 다 같이 모여서 1박 하며 노는 것이 어떠냐는 이야기를 꺼냈다.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회비를 모으니 마니 하는 이야기가 오고 가고 있던 참이었다. 친구 중 한 명이 이런 말을 꺼냈다. "근데 나 1박 이상이면 남편이랑 같이 가야 돼. 괜찮지?" 내 엄지 손가락은 다음 타자를 치지 못하고 핸드폰 위를 헤매었다.
사진: Unsplash의Kimson Doan
고등학생 때부터 친구였다는 것은 벌써 거의 20년째 친구 사이를 이어오고 있다는 게 된다. 알고 지낸 세월이 긴 만큼, 친구들의 희로애락을 다 옆에서 경험했고 그만큼 특별한 사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런 내 친구가 남은 평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한 사람이 그녀의 남편이다. 친구에게 있어서는 세상 그 누구보다 가깝고 모든 것을 터놓을 수 있는 사이일 터였다. 그렇다면, 나와 내 친구의 남편은 어떤 관계가 되어야 하는 걸까?
한 친구의 남편과 처음 만났을 때가 기억난다. 서로 'ㅇㅇ이한테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라고 말하면서 첫인사를 주고받는 사이. 그날 나는 정말 이상한 경험을 많이 했다. 나는 처음 보는 (낯선) 남자인데, 그 남자가 나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어느 회사를 다니고 평소 회사의 어떤 점에 불만을 갖고 있으며 쉬는 날에는 무엇을 하며 노는지까지. 내가 얘기하면 내 친구는 물론이고 그 남자까지 맞장구를 쳐주는 것이 아닌가?
사실 처음에는 그런 현상(?)을 인지했을 때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뭐야, 그럼 내 이런 내밀하고 사적인 얘기를 나는 전혀 모르는 사람인 남편한테 다 했다는 거잖아? 흠.'과 같은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녀의 남편 입장에서 보면 그녀의 친구인 나도 초면인 것은 마찬가지인데, 나도 그녀의 남편에 대해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은 똑같았다. 당연했다. 나는 그녀와 친구니까. 남자친구일 때부터 그녀의 남자친구가 무슨 일을 하고 어떤 취미를 가졌으며 기념일엔 무엇을 했는지까지 세세하게 들은 바 있었다. 그렇게 역지사지로 생각하고 나니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은 말끔히 사라졌다. 그래, 내 친구에게는 남편도 나만큼 매우 가까운 사이니까 가족/친구한테 이야기하듯이 일상적인 얘기는 전달할 수도 있지, 싶었다.
남은 문제는 그래서 내가, 친구의 남편과 친해질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나에 대해 수상할 정도로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지만 실제의 나와는 만날 일이 거의 없는 사람. 심지어 남자사람(그렇다, 나는 남자사람과 친해지는 것이 여전히 더 어렵다). 모든 친구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내 친구 중의 일부는 나와 자신의 남자친구가 친하게 지내길 바라는 경우도 있었다. 얘랑도 친하고 얘랑도 친하니까 우리 모두 친구! 같은 것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나같이 극도로 내향형에다 내성적인 인간에게, 갑작스럽게 들이닥치는 새로운 인간관계는 괴로움에 가까운 감정을 낳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늘 친구의 남편을 소개받는 자리가 불편했다.
하지만 나의 불편함과 상관없이 친구의 남편과 만나야 하는 자리는 점점 많아졌다. 누군가의 결혼식에 친구가 남편을 데리고 오면 같이 밥을 먹어야 했고, 친구와의 만남에 남편이 데리러 오면 잠깐 같이 차를 마실 수도 있었다. 특히나 아이를 낳은 친구의 집에 찾아가면 친구의 남편과 필연적으로 같은 공간에 있게 된다. 여러 번 보니 처음 봤을 때의 어색당황함은 좀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나에게 그들은 익숙하지 않은 남이다. 내 친구의 정말정말 소중한 사람이겠지만, 나에게는 그냥 모르는 남자인 것이다.
그래서 뭘 어쩌겠다는 말이냐? 하면 그건 모르겠다. 여하튼 나는 여전히 친구의 남편이 어색하다. 그리고 이 어색함을 타파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더욱 자주 친구의 남편과 만날 의지가 있냐 하면 그것도 전혀 아니다. 그러니 여전히 딜레마를 안고 어색어색한 자리에 나갈 수밖에. 하지만 언젠가 먼 훗날 친구들이 부부동반 모임을 추진한다면 그 모임에 나는 안 나갈 것 같다. 그것만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