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만 원어치의 인생 레슨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일


단단님의 콘텐츠 독립클럽 3주차 글감(자유주제)에 대한 글입니다.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인스타그램에서 팔로우하고 있었던 계정이 있었다. 워낙 콘텐츠 마케팅 쪽에 관심이 많은 나였으니 아마 관련 계정들 죽 팔로우하다가 같이 팔로우했던 게 아닐까 싶다. 여하간 그곳도 콘텐츠를 생산해 내는, 일종의 잡지 같은 계정이었다. 평소와 같이 인스타그램 피드를 넘기며 보고 있다가, 그 채널의 편집장이 SNS 콘텐츠에 대해 1:1 멘토링을 해주겠다고 게시물을 올린 것을 발견했다. 심지어 무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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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nsplashAlexander Mils



그 게시물을 발견했을 때, 나는 막 퇴사하고 글 쓰는 사람으로 살기 위해 삶 전반을 되돌아보고 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집중하고 있던 것은 다름 아닌 인스타그램이었다. 아무래도 아직 대세는 인스타그램인 것 같은데, 나는 인스타그램 사용법도 제대로 모르는 초보에 불과했으니까. 그래서 마음이 급했다. 누군가가 속성으로 인스타그램의 논리를 설명해 주기를 바랐던 것 같다. 내 니즈만 충족시켜 준다면 일정 금액 이상의 비용을 지불할 의지도 있었다. 그런데, 무료로 1:1 멘토링을 해주겠다는 전문가가 나타난 것이었다. 나는 혹시나 그 사이에 마감될까 걱정하며 재빨리 구글폼 작성에 돌입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의뢰자가 50만 원을 선입금해야 하고 그 금액은 멘토링 종료 후 설문까지 참여하면 되돌려주는 방식이라고 되어 있었는데, 그걸 보고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아무나 막 신청하지는 않겠구나. 어쨌든 50만 원을 내야 시작하는 과정이고 과정이 끝나야 돈을 돌려받을 수 있으니, 정말 진심인 사람만 신청하겠구나 싶었다. 멘토링하는 계정에서도 가볍게 신청하는 사람들을 거르기 위해 보증금을 받는다는 식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나는 오히려 그 제도에 믿음이 갔고, 심지어 지금 브랜드를 만들고 관련 SNS 계정을 시작하려 하고 있는 가족에게 이 과정을 추천하기까지 했다. 언제 마감될지 모르니 빨리 신청하라고 독촉까지 했다.


처음 며칠은 순조로웠다. 내 SNS 계정 정보들과 원하는 계정 운영 방향성 등을 아주 성심성의껏 작성해서 그쪽에 보내니, 몇 가지 질문을 적은 답장이 돌아왔다. 약속한 날짜에 답장이 오진 않았고 며칠 밀리긴 했지만, 신청자가 많으면 그럴 수도 있겠지 싶었다. 다만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금방 마감될 것 같은 1:1 멘토링 신청 공지가 계속 올라와 있었던 것이었다. 신청자가 많을 것 같았는데도 좀처럼 마감되었다는 공지가 올라오지 않았다. 가족에게 농담하듯 말했다. "이렇게 돈 받아놓고 갑자기 사라지는 거 아니야?" 그리고 며칠 뒤, 신청을 받았던 서비스의 모회사에서 자신들은 파산했으며 보증금들을 당장 돌려주는 것이 불가하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처음에는 그저 황당했다. 뭐야? 내 돈 보증금으로 받아가 놓고 돌려줄 돈이 없다는 거야? 나 그럼 50만 원 못 받아? 모든 것이 뭔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잠깐 잘못된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정상화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되기도 했다. 혹시나 해서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해당 서비스로 검색하니 천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들어가 있는 피해자 채팅방이 검색되었다(지금은 천 명을 훌쩍 넘었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아, 나 당했구나. 내 50만 원은 이제 영원히 돌려받을 수 없겠구나. 하고.


그 뒤로 많은 일이 있었다. 다른 피해자들과 채팅창에서 여러 정보를 공유했고, 경찰 사이트에 들어가 처음으로 사이버 범죄 신고를 해봤으며, 기타 여러 가지 일을 하느라 정성과 시간을 쏟았다. 사기당한 것도 서러운데 이런 추가적인 노력까지 투여해야 사기 친 사람이 잡힐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생긴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50만 원이 적은 돈도 아니지만 또 뭐 없다고 내가 당장 망하는 금액도 아니니까, 이 모든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그냥 포기해 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운영자가 바로 그 점을 노리고 이런 일을 벌인 것 같아 너무 억울해 신고를 포기할 수 없었다. 자신은 사람들을 기망하려는 의도가 없었다며 올리는 그 서비스 운영자의 입장문을 볼 때마다 피가 거꾸로 솟았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신고하고 그 결과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이 모든 일을 경험하면서, 사기 피해자들은 자괴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자꾸만 생각나는 내 모습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설레는 마음으로 50만 원을 운영자에게 입금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때의 내가 너무 한심해 보이고, 이렇게 수상해 보이는 일이었는데 SNS 계정을 키워보겠다는 욕심에 의심도 없이 덜컥 신청해 버린 나를 한 대 쥐어박고 싶었다. 신이 나서 가족에게까지 소개하고 가족도 사기에 말려들게 한 나를 매우 치고 싶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잘못한 게 없다. 자기 사진과 몇십 년 경력을 서비스 사이트에 다 게시해 놓고, 10여 년 동안 운영해 오다가 어느 날 갑자기 그 모든 것을 저버리고 사기를 칠 거라 예상이 가능했을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냥 나는 운이 나빴을 뿐이다. 사기 친 사람이 나쁜 것이지, 당한 사람이 잘못한 것은 아니다. 머리로는 이 모든 사실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그래도 한 번 더 의심했어야지. 네가 바보 같으니 이런 일을 당하지.' 하는 생각들이 끊임없이 맴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쓰기로 결심한 것은, 이게 결코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고 오로지 가해자의 잘못임을 글로라도 천명해두고 싶어서이다. 혹시나 이 글을 읽을 사기 피해자 분들이 있다면, 꼭 스스로에게 말해주라고 하고 싶다. 결코 우리의 잘못이 아니라고.




※ 인스타그램에도 같은 내용의 글을 발행했어요. 놀러오세요!

https://www.instagram.com/p/DSheEfSD_iu/?img_index=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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