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같은 열정은 없어졌어도, 네가 잘 되길 응원해
살면서 참 많은 사람들의 덕질을 해왔다. 아이돌, 가수, 스포츠선수, 프로게이머, 배우 등등등... 명수로 따지면 열 명이 훌쩍 넘어간다(대단한데?). 그 수많은 사람들을 지금까지 똑같이 좋아하고 있냐? 하면 그건 당연히 아니다. 모종의 이유로 인해 덕질을 중단(탈덕)한 사람도 있고, 활동이 뜸해짐과 동시에 내 덕질도 뜸해져 그냥저냥 잊혀진 경우(휴덕)도 있다. 하지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어지간해서는 내 덕질에 끝은 없다는 것이다.
하나의 덕질이 폭발적인 시기(매일매일 그의 소식을 검색하고 팬 활동을 하는)를 거쳐 탈덕이든 휴덕이든 시들해지는 시기로 들어가는 이유는 꽤나 다양하다. 내 경우, 보통은 덕질대상의 활동이 취향에 안 맞아서 서서히 마음이 식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배우가 내 취향이 아닌 작품에 연달아 출연해서 못 보겠다든지, 가수가 나로선 듣기 힘든 노래를 계속 낸다든지, 스포츠 선수가 계속 안 좋은 성적만 기록한다든지.. 이런 일반적인 경우가 아닌 특수한 상황은 예를 들어 이런 게 있다. 좋아하던 연예인이 범죄를 저지른다든지, 치명적인 말실수를 한다든지..^^ 당연하지만 나도 이런 일로 인한 탈덕(탈덕이라기보단 덕질에서 쫓겨남에 가깝다고 생각한다)을 경험해 봤다. 개인적으로는 어떤 덕질을 시작하든, 그 끝이 9시 뉴스만은 아니기를 기도하는 편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 어떤 사유로 탈덕/휴덕하더라도 (구)최애에 대한 애정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비록 어떤 이유로 인해/또는 이유도 없이 덕질대상에 대한 열렬한 사랑은 식었더라도, 힘든 일상을 이겨내도록 도움을 줬던 즐거운 추억에 대한 고마움이 남아서 그런지.. 심지어 9시 뉴스로 마무리된 덕질대상일지라도, 그 사람의 향후 인생을 저주하지는 않는다. 약간의 애증을 담아 '제발 잘 살아라' 하는 마음으로 바라본다. 결국 한 번 내 덕질 망태기 안에 들어오면, 나갈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고 보면 된다. 그저 좀 느슨해질 뿐, 그들에 대한 내 애정은 계속되는 셈이다.
뭔가 사고(?)를 쳐서 탈덕하지 않은 경우에는 더욱 애틋하다. 시간이 지나 자연스럽게 애정이 덜해져 한창 좋아할 때처럼 미친 듯이 소식을 수집하지는 않지만, 일상생활을 하다 (구)최애의 소식을 들으면 반가워한다. 그가 나오는 콘텐츠를 발견하면 챙겨보기도 하며, 하는 일이 뭐든 잘 되기를 응원한다. 제일 기분이 좋았을 때는 내가 당시 좋아하던 아이돌이 예전에 좋아했던 배우에게 시상식에서 상을 받았을 때였다ㅎㅎ (구)최애와 (현)최애의 만남에 나 혼자 마음이 들떠서 TV화면을 핸드폰으로 찍어댔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최애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쌓여만 간다.
사진: Unsplash의Jacqueline Munguía
(구)최애든 (현)최애든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내 덕질의 기본이다. 나는 이 '감정'이 덕질의 순기능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을 살아갈 때 나 같은 비관주의 인간은 긍정적인 생각 자체를 잘 안 한다. 불안과 우울이 높은 성향상 스스로의 삶에 대해서도,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생각할 때가 많다. '나는 왜 이 모양인가?' '저 사람은 왜 말을 저렇게밖에 못 하는가?' '이 회사는 왜 이렇게 거지 같은가?' 이런 생각이 평소 생각의 90%를 차지한다. 그런데 여기에 덕질이 들어오면 달라진다. 긍정적인 생각이 머릿속을 채우기 시작한다. '너무 귀여워' '어떻게 저렇게 사랑스럽지?' '내 최애 잘 되었으면 좋겠다' 등등.
누군가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긍정적인 감정 자체가 덕질의 좋은 점이다.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 찼던 머릿속에 예쁘고 고운 말들이 대신 담기며, 얼굴에는 절로 웃음이 지어진다. 내 일도 아닌 다른 사람의 성취에 순수히 기뻐할 수 있는 여유도 생긴다. 결국 덕질은 끝까지 내게 긍정적인 기운을 주고, 내가 긍정적인 기운을 발산하게 한다. 사실 이 글도 내 (구)최애의 결혼 소식을 듣고 쓰는 것이다ㅎㅎ 결혼 소식이 기사로 난 것을 보고 처음 든 생각이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였다. 이 얼마나 긍정적인가? 흐흐. 앞으로도 내 덕질대상들이 정말 잘 살았으면 좋겠다. 그게 내 인생에도 힘이 됨을 알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