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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것조차 영원하지는 않아

당장 절실하게 좋아해야 하는 이유


  어렸을 때 나는 해리포터 덕후? 매니아?였다. 첫 시리즈였던 '마법사의 돌'은 읽고 읽고 또 읽어서 문장을 외울 정도였다. 얼마나 달달 외웠냐면 1권에서 엑스트라로 단 한 장면 등장해서 해리에게 악수하며 '난 ㅇㅇ이라네'라고 말했던 사람이 나중에 한 5권쯤 다시 등장했을 때 알아볼 정도였다. 해리포터 시리즈는 물론이고 관련 책들(신비한 동물 사전, 퀴디치의 역사 등)도 다 사 모았고 그 안에 나오는 내용도 공부하듯이 읽었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는 번역본 나오는 걸 기다리지 못해 원서를 사서 쉬는 시간에 읽었다. 영어 실력이 좋은 건 아니라 한 장 읽을 때 사전을 대여섯 번 찾아봐야 했지만, 그걸 참고 시간을 들여 읽을 만큼 나는 해리포터를 사랑했다.



  

  그런 나에게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생긴 해리포터 존은 꿈과 희망의 나라 같은 존재였다. 호그와트 성을 볼 수 있다니! 버터맥주를 마실 수 있다니! 지팡이를 살 수 있다니! 생긴다는 뉴스가 나올 때부터 진행도를 체크했고, 오픈한 후에는 다녀온 블로거들의 글을 탐독하며 나도 조만간 가서 굿즈를 싹쓸이해 오리라 다짐했다. 해리포터 존이 있는 유니버셜은 LA에도 있지만 가까운 일본 오사카에도 있으니 언제든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아 맘만 먹으면, 다음 휴가 때 갈 수 있다고! 그런 마음으로 몇 년이 흘렀다.


  결국 나는 지금까지도 해리포터 존이 있는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가지 못했다. 영국에 있는 해리포터 스튜디오에도 가지 못했다.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니다. 유럽 여행 갈 때 무리해서라도 런던을 일정에 넣을 수도 있었고, 몇 년에 한 번씩 해외여행으로 여름 휴가 일정을 잡을 때 다른 나라, 다른 도시가 아닌 오사카를 목적지로 잡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왠지 늘 다른 선택지에 밀렸다. 파리에 더 가고 싶으니까, 미국은 너무 머니까, 후쿠오카가 더 가까우니까... 그렇게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늘 아슬아슬하게 목적지에서 벗어났다.


  그러는 사이 해리포터 책과 영화는 완결되었다. 물론 여전히 해리포터 관련 컨텐츠와 굿즈는 끊임없이 생산되고 있지만, 아무래도 예전 같은 폭발력은 갖지 못했다. 원작이 완결되었기 때문이다. 나도 더 이상 해리포터 관련 소식을 찾아보지 않게 되었다. 세상엔 늘 새롭고 재밌는 것들이 생겨나 그것들을 좋아하며 살기에 바빴기도 했고, 일하느라 학생 때처럼 열정적으로 해리포터를 좋아할 수 없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학생 때 재미있게 볼 때는 몰랐던 여러 가지 요소들(초챙의 이름에서 드러난 조앤 롤링의 동양사회에 대한 무지, 캐릭터의 죽음 관련 서술에 대한 아쉬움 등)이 나이 들어 다시 볼 때 보이기 시작하면서 나는 예전만큼 해리포터를 사랑한다고 자신할 수는 없게 되었다.  




  열렬히 해리포터를 사랑하지 않게 된 지금, 내가 가장 후회하는 것은 그렇게 사랑했을 때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가지 않았던 것이다. 여행 계획을 짜면서 유니버셜을 뒤로 미룰 때의 나는 내가 평생 죽을 때까지 해리포터를 엄청엄청 사랑할 줄 알았다. 그러니 이번이 아닌 다음에 가도 되겠지, 그때 가도 나는 매우 감동하면서 호그와트 성을, 버터맥주를 즐길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예전만큼 열정적으로 해리포터를 좋아하지 않게 된 지금의 나는 당장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가도 어린 시절의 나처럼 방방 뛰면서 굿즈를 쓸어담지는 않을 것이다. '아, 예전에 참 좋아했었는데' 정도로 감회에 젖어 기념할 만한 굿즈를 몇 개 정도 사지 않을까? 그 점이 참 슬프다. 


  이런 사고 과정을 거치면서 오히려 내가 깨닫게 된 것은, '좋아하는 것은 그때그때 최선을 다해 좋아하자'라는 것이다. 좋아하는 것조차 영원하지는 않다. 오늘 너무너무 사랑하던 책이, 영화가, 노래가 다음날에는 그저 평범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니 그때의 좋아하는 감정을 최대한 즐기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창작 욕구를 불러일으키려면, 그때그때 절실히 열심히 좋아하고 즐겨야 한다. 책을 사고, 감상문을 쓰고, 관련된 컨텐츠를 찾아보고.. 모두 좋아함의 에너지가 최고치에 달해 있을 때 더 즐겁고 힘 있게 할 수 있는 일들이다.


  코로나의 위험이 지나가고 해외여행을 자유롭게 갈 수 있는 날이 오면 해리포터 존이 있는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갈 생각이다. 지금은 열렬하게 좋아한다고까지는 말 못 하겠지만, 한 때 정말정말 사랑했던 해리포터가 있는 그곳에 가서 앞으로는 꼭 시간을 놓치지 않고 무언가를 좋아하겠노라고, 그렇게 다짐하고 올 것이다. (물론 예상과 달리 굿즈는 잔뜩 사서 돌아올 것 같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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