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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cegraphy Feb 02. 2020

[노팅힐 리뷰]아파도 괜찮아, 해피엔딩이라면

상처는 아물기 마련이다

1999년 개봉한 영화 노팅힐. 작년에 재개봉까지 한 명작이다. 제목은 많이 들어봤는데, 이제서야 봤다.  

어제 처음 본 영화를 오늘 또 봤다. 어쩌면 내 인생영화가 될지도 모르겠다.


#사랑에는 국경도 없다. 나이도, 신분도

톱스타 여배우와 평범한 서점주인이 사랑에 빠진다. 여행서적서점을 운영하는 주인공 테커(휴 그랜트). 어느 평범한 수요일, 평범한 그에게 특별한 일이 일어난다. 그의 서점에 특별한 손님이 찾아온 것. 유명한 미국 여배우 안나(줄리아 로버츠)가 그의 눈 앞에 나타난다.


#운명, "비현실적이지만 좋아"

설레는 첫만남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둘은 다시 만난다. 테커는 길에서 우연히 다시 만난 안나의 옷에 실수로 커피를 쏟는다. 이를 계기로 테커의 집을 방문하게 된다. 사랑에는 운명적인 요소가 따른다. 연속되는 우연은 인연을 굳게 다져준다.

테커의 집에서 옷을 갈아입은 안나. 둘은 잠깐의 시간을 함께 한다. 집을 나서기 전 둘은 첫키스를 나눈다. 남자의 태도는 저돌적이지 않다. 절제한다. 스킨쉽보다 대화를 시도한다. 유명배우인 상대방을 배려한 행동이다. 하지만 테커의 마음에 씨앗을 심고 간 그녀는 연락이 없다.


#온세상이 그녀

사랑에 빠진 후로는 온통 그녀만 보인다. 친구가 보자고 한 영화의 주인공이 그녀다. 지나가는 버스 광고판은 그녀의 얼굴로 채워져있다. 사랑에 빠지면 온세상이 그녀로 채워진다.


#기다림과 재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기다림 뿐이다. 혹시 온 전화가 없을까. 친구에게 묻는다. 친구는 뒤늦게 전화 메시지를 전한다. 안나가 머무는 호텔로 초대받은 테커. 기자인척 인터뷰 기회를 얻는다.

둘에게 허락된 시간은 5분 뿐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은 안그래도 빨리 간다. 5분은 눈깜빡하면 지나갈 시간이다.

그나마 매니저가 지켜보고 있어 하고 싶은 말들을 나눌 수 없던 둘. 테커는 이상한 말들만 늘어놓는다. 바보가 따로 없다.


#밀어내고 당기고

안나는 자신의 충동적인 키스를 사과하며 테커를 밀어낸다. 그는 용기를 낸다. 꿈이었다면 용기를 내 키스했을거라며 그날 밤 데이트를 제안한다. 여자는 일정이 있다며 완곡히 거절한다.

주어진 5분이 지났지만 남자는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한다. 미련이 남아서다. 기자를 사칭했던 그는 졸지에 전문 인터뷰어가 된다. 다른 배우들과 릴레이 인터뷰를 하며 그녀의 주변을 맴돈다. 어떻게든 그녀와의 관계를 이어가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전략은 성공한다. "오늘밤 일정이 취소됐어요". 다시 한 번 만날 기회를 얻는다.


#특별한 공간, 특별한 데이트

하필 그날은 테커 여동생의 생일이다. 친구들과 홈파티가 예정돼 있었다. '여배우' 안나는 파티에 참석하겠다고 한다. 평범하지 않은 동생과 친구들. 안나는 처음에 다소 당황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내 적응한다. 둘은 마음을 열고 가까워진다.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파티 후 특별한 데이트가 남았다. 그만 아는 특별한 공간, 정원에서 둘만의 시간을 보낸다. 남들의 시선을 걱정할 필요없는, 비현실적인 공간이다. 둘은 뜨거운 키스를 나눈다.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든다. 둘만의 아름다운 공간에서 씨앗은 새싹이 된다.

또 한 번의 데이트. 테커는 우스꽝스런 고글을 끼고 영화를 보며 안나에게 작은 웃음을 선사한다. 시덥잖더라도 웃음을 주고 싶은 마음이 사랑이다.


#좌절, 한발자국 물러나기

둘의 분위기가, 사랑이 무르익는다. 안나는 자신의 방으로 테커를 초대한다. 방에 올라갔지만 변수가 생긴다. "미국에서 애인이 왔어요".

그와중에 테커는 또 한 번 안나를 배려한다. 룸서비스를 자처한다. 그는 그녀에게 애인이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결국 쓰레기통을 들고 퇴장하는 테커. 참 속도 없다. 사랑하니까 모든걸 견딜 수 있다. 초인적인 이해심이 나온다. 하지만 그 자신은 깊은 시련, 실연의 골에 빠진다.


#그 남자의 시간

떠나버린 그녀. 홀로 남겨진 남자. 아픔을 견뎌야 한다. 여전히 버스에 프린트된 그의 얼굴이 그를 쳐다본다. 극장에선 그녀가 주인공인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그는 혼자다. 주변의 연인들과 대조를 이룬다.

"마약을 못 구해 금단증상을 겪는 중독자가 된 기분이야".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다. 친구의 조언은 역시나 쓸데없다. 남자는 그저 자신의 생각을 어딘가에 털어놨다는 데 의미가 있다. 다른 친구들도 그를 위로한다. 둘은 처음부터 어울리지 않았다고. 여자가 별로라며 친구의 편을 든다.

친구들의 위로는 물론 도움이 된다. 약으로 치면 진통제 정도. 고통을 덜 느끼게 할 순 있다. 하지만 상처를 완벽히 치료할 순 없다.


#새로운 여자

그의 친구들은 다른 여자들을 소개시켜준다. 새로운 사랑을 만나 떠나간 사랑을 잊으라는 의도다. 테커의 눈에 들어올리가 없다. 누가 봐도 매력적인 사람이, 아무리 아름다운 사람이 나타나도 그의 마음은 쉽게 움직일 수 없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날 사랑할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될거란 마음이 들게 된 이상 그 마음을 멈출 수 없다. "30년 후에도 혼자 여기 앉아있을걸". '중증' 판정을 받으면 시간도 해결할 수 없다.


#다시 찾아온 그녀

몇달이 지난 어느날, 갑자기. 처음 만난날처럼 그녀가 다시 찾아온다. 무명시절 찍은 사진이 포르노 영화로 둔갑한 위기에 처해서다. 기자들이 그녀를 쫓는 상황이다.

연락조차 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힘든 순간 생각난건 테커였다. 자신의 힘든 얘기를 쏟아내며 눈물을 보인다. 남자는 다 잘될거라며 위로한다. 진심어린 위로다. 어떻게든 그녀의 기분을 풀어줄 방법을 찾는다.

마음의 안정을 찾은 안나는 몇 달 전 그 사건을 이야기한다. 전 애인과 이별했다는 사실도 테커에게 전한다. 그러면서 보고싶었다는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다.

남자는 여전히 과하지 않다. 처음에 과하지 않았던 이유가 배려였다면 이 때 이유는 두려움이다. 또 다시 상처받을까 두려운 것이다.

이번에는 그저 그녀를 도울 뿐이다. 영화대사를 연습할 상대가 돼주며 잔잔한 시간을 함께 보낸다. 둘만 있는 공간에서도 태연히 신문을 읽는다. 다가가고 싶고, 안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겠지만 드러내지 않는다. 시덥잖은 우스갯소리만 하며 그녀를 달랜다.

같은 집, 다른 방에서 그녀가 자고 있다. 당연히 남자는 잠을 이루지 못한다. 인기척이 느껴져 설렜지만 친구였다. 잠시 후 그녀가 직접 그의 방을 찾아왔다. '비현실적이지만 좋은 일'이 다시 일어났다. 둘은 드디어 사랑을 나눈다.


#행복한 꿈은 빨리 깨기 마련

"남자들은 꿈을 쫓을 뿐 현실을 직시하는건 원치 않는다"

'첫날밤' 다음날. 둘은 행복한 아침의 여유를 즐긴다. 오래가지 않을거란걸 인지하지 못한채로.

초인종이 울린다. 속옷차림으로 문을 연 테커와 안나의 사진이 찍혔다. 기자들이 테커의 집에 들이닥쳤다. 둘의 '행복한 꿈'은 여기까지다.

안나는 테커에게 날을 세운다. 격앙된 목소리로 아프고 심한 말을 쏟아낸다. 테커의 위로는 소용없다. 들리지 않는다.

"난 오늘 일을 영원히 후회할 거에요". "난 너와 정반대야. 네가 날 찾아온 걸 항상 기쁘게 생각할거야"

결국 그녀는 다시 그를 떠났다.


#다시 또 혼자

홀로 남겨진 그는 자신의 생활공간, 노팅힐을 걷는다. 전과 다를 것 없는 일상이지만 그에겐 전혀 다른 세상이다. No thing hill이 돼버렸다.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해가 뜨고 맑은 날에도 그는 웃을 수 없다. 어떤 재미난 일을 해도 즐겁지 않다. 그리워하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예전처럼 그녀가 다시 돌아와주길 기다릴 뿐이다.

또다시 6개월이 흐른다. 친구들에게 우울했지만 극복했다고 말한다. 행복하게 살겠다고. 안나를 완전히 잊었다고 말한다.

친구는 안나가 영국에 와있다는 뉴스가 담긴 신문을 테커에게 전한다. 그는 그녀를 잊을 수 없다. 다음날 곧바로 안나의 촬영장으로 달려간다.


#재회와 오해

둘은 촬영장에서 6개월만에 다시 만났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안나. 테커 역시 그녀를 잊지 못해 그곳을 찾았다. 하지만 역시나 바쁜 그녀. 차를 마시며 기다려달라고 한다.

오해가 있었다. 안나는 촬영장에서 동료 배우와 대화를 나눈다. 동료가 테커가 누구냐고 묻는다. "아무도 아니야. 그냥 아는 사람. 어색해 죽겠는데 왜 찾아왔는지 모르겠어". 그 내용을 헤드폰으로 듣고 있던 테커는 쓸쓸히 발을 옮긴다.


#그때는 아니었지만 지금은 가능한 것들

다음날. 안나가 테커의 서점에 방문한다. 하려던 말을 하기 위해서다. "당신을 생각했다"며 선물을 건넨다. 의미있는, 주고 싶던 선물이다. 연락할 용기가 없었다고 고백한다. "당신이 날 다시 좋아해줄까 궁금했어"

둘은 오해를 푼다. 배우들 사이에 사생활을 얘기하지 않으려고 둘러댔다는 해명이다.

오해가 풀렸지만 테커는 쉽게 그녀의 마음을 받지 못한다. "없었던 일로 하자". 그동안 받은 상처들이 그를 겁쟁이로 만들었다. 그는 또 다시 버려질 게 두렵다. 다시 극복할 자신이 없다. 그녀가 유명하다는 게 무섭다.

"유명함은 허상이야. 나는 그저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사랑을 구하는 소녀일 뿐이야". 사랑을 가로막는 건 결국 허상인 경우가 많다.

어떤 길을 가도, 가지 않아도 후회는 남는다. 사랑도 지나면 그만이라지만 동의하지 않는다. 마음이 이끄는대로 했을 때 확실한 게 있다. 잊을 수 없는 깊은 추억이 남는다.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아물기 마련이다.


#해피엔딩. 아프지 않아, 사랑하니까

다시 친구들과의 긴급회의가 소집됐다. 친구들은 저번처럼 테커의 편이다. 그녀가 별로라며 한목소리를 낸다. 다른 의견이 나오기 시작한다. 친구들과 대화하며 그녀가 한 말을 곱씹는다. 그리고 자신의 진심을 깨닫는다.

기자회견장을 찾아간 테커. 손을 들고 발언권을 얻어 그녀의 마음을 확인한다. 영국에 얼마나 머물거냐는 질문을 유도한 그녀의 대답은 "indefinitely".

둘의 사이를 눈치챈 기자들은 카메라 세례를 쏟아붓는다. 그녀의 표정이 클로즈업된다. 이 영화에서 안나의 표정이 가장 밝은 순간이다. 대중 앞에서, 숨겨왔던 연인의 손을 당당히 잡는다.

해피엔딩. 비현실적이지만 좋다. 비현실적인 일은 현실에서도 가끔 일어난다.

아무리 많은 상처를 받더라도 상관없다. 해피엔딩만 있다면 견딜 수 있다. 상처받고 만신창이가 되면서까지 주변을 맴돌며 희망을 버리지 않는 이유는 이런 해피엔딩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용서와 인내, 이해. 운명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샤갈의 신부

"사랑을 제대로 정의한 그림". 검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신부가 돋보인다. 신랑은 신부를 감싸며 신부만 본다. 염소는 바이올린을 연주한다.

"염소가 바이올린을 연주하기 전에는 제대로 된 행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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