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상대적이다. 지겹거나 하기 싫은 일을 할 때,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는 엉금엉금 기어간다. 반면 즐겁고 행복할 때, 시간의 속도는 빛의 속도다. 휴가나 연휴는 금방 끝나버린다. 직장인이라면 주말은 아마 1~2초 정도로 느껴질 것이다.
수명이라는 절대적 시간은 개인별로 다르지만, 각자에게 주어진 그 시간을 어떻게 쓰는지는 상대적이다. 영화 '어바웃타임'은 제목처럼 시간에 대한, 그리고 인생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특별한 능력
남자 주인공 팀-영화 초반엔 못생겨보이다가 중반, 후반이 될수록 잘생겨보인다는 평을 받는-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자신이 원하는 순간과 장소로 시간을 돌릴 수 있는 능력이다. 같은 능력을 가진 그의 아버지는 스무살이 된 팀에게 그 능력을 알려주며 조언한다.
"정말 바라는 인생을 위해서만 사용하는 게 좋아"
테스트를 거쳐 자신의 능력을 확인한 팀은 그 능력을 어떻게 쓸 지 고민한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사랑이었다.
"내겐 항상 사랑이 가장 중요했다"
나도 그랬다. 연애를 쉴틈없이 항상 한건 아니지만, 어릴때부터 사랑이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여겼다. 조건이든 뭐든 사랑이면 극복할 수 있고,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만큼 사랑이라 여길 수 있는 기준이 높아졌다. 그러면서 쉽게 사랑을 찾지 못하는 부작용도 생겼다.
#블라인드레스토랑
첫사랑의 실패를 겪은 남자는 런던으로 떠난다. 그곳에서 우연히 운명의 여자, 메리를 만난다. 장소는 블라인드레스토랑. 남자는 친구와, 여자도 친구와 식당을 찾았다. 하필 그 때, 그 장소에서 그들은 한 테이블에 나란히 앉게 됐다. 암흑 속, 서툴고 어색한 대화가 시작된다. 서로의 얼굴을 모르는 둘은 편견없이 대화에 집중한다. 썰렁한 장난도 치며 사소한 얘기가 오간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가까워진다. 식사를 마친 후 식당 밖에서 드디어 만난 두 사람. 사랑스러운 여자의 모습(레이첼 맥아담스의 전성기...)에, 남자는 한눈에 반해버린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사랑'을 만난 순간이다.
#공감
첫만남후 집으로 돌아온 남자는 룸메이트인 해리(아버지의 친구이자 극작가)를 돕기 위해 시간을 돌리는 능력을 사용한다. 그날밤 해리가 연출한 연극에서 주인공이 실수로 대사를 잊어버려 엉망이 된 상황을 돌리기 위해서다. 팀은 몇시간 전으로 돌아가 연극 배우들이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돕고, 연극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그의 휴대폰에는 메리의 전화번호가 저장돼 있지 않았다. 과거가 달라지면서 나비효과가 일어났고, 팀과 메리의 첫만남도 사라졌다. 하지만 팀은 포기하지 않는다. 메리와의 대화에서 얻은 단서를 이용해 메리를 만나는데 성공한다. 또다시 그녀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메리에겐 그 사이 새 남자친구가 생겼지만 팀은 개의치 않는다. 다시 시간을 돌리면 되니까. 메리의 관심사를 알고 과거로 돌아간 팀은 공감대를 형성한다. 다시 메리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한다.
시간을 되돌려도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 사랑의 여러 정의 중 하나다. 여기서 중요한 건 공감이다. 관심사와 취향, 감정을 공유하면서 마음이 시작된다. 호감있는 사람과 공감까지 이뤄진다면. 그야말로 더할나위없는 상황이다. 특히 미래를 바라보는 사이라면 공감은 필수다.
둘은 결국 연인이 된다. 사랑이라는 확신이 생겼다면 절대적 시간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남자가 여자에게, 빠르고 담백하게, 청혼하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행복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건 사랑. 연인과의 사랑에서 범위를 확장하자면 가족과 친구도 사랑의 대상이다. 팀에게는 아버지가 특별한 존재다. 아버지는 시간여행이라는 비밀을 공유하는 친구이자, 먼저 경험했던 스승이다. 아버지는 시간을 돌릴 수 있는 능력이 있더라도, 시간이 흘러 소멸이 다가오는걸 막을순 없었다. 과거로 돌아가 담배를 끊었더라면 폐암에 걸리지 않았겠지만, 그러면 아들을 잃어야 했다. 그는 죽음을 기다리기로 스스로 선택했다. 그는 떠나기 전 행복할 수 있는법을 아들에게 알려준다.
"거의 똑같은 하루를 다시 살아봐, 수정하지 말고"
팀은 아버지의 조언을 받아들여 똑같은 하루를 살아본다. 자신의 행동은 바꾸지 않는다. 달라진건 마음가짐이다. 두 번째 같은 하루를 살면서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 첫 하루에선 긴장과 걱정 때문에 볼 수 없던 아름다움이다.
마치 살아본것처럼, 여유로운 마음으로 하루를 살면 조금 더 행복하지 않을까. 지하철 옆자리 손님 이어폰에서 나오는 시끄러운 음악도, 나를 괴롭히는 상사의 히스테리도 웃어 넘길 수 있다.
팀은 이후 시간여행을 하지 않는다. 행복해지는 방법을 알게 되면서다. 단 한번의 주어진 시간을 완벽하게 즐길 분이다. '한번의 현재'에 집중하고 실수를 줄인다면 굳이 과거로 돌아갈 필요도 없다.
#시간의상대성
다시 한 번, 시간은 상대적이다. 즐거운 시간은 빨리 흘러간다.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시간을 함께 한다면 너무 빨리 소멸돼버릴지도 모른다.
지루해서 시간이 멈춰버린듯한 삶을 오래오래 사는 것보다 놓치고 싶지 않아 아쉬운 시간을 하루라도 사는 게 낫다.
그래도 좋다. 좀 더 빨리 늙어도 좋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도, 사라지더라도 행복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