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골프장의 품격
흐린 가을 하늘 아래, 춘천의 들판은 고요했다. 비가 올 듯 말 듯한 공기 속에서 골프백을 싣고 휘슬링락CC에 도착했다.
입구부터 느껴지는 차분한 기운, 그리고 미묘한 고급스러움. 이곳은 단순한 골프장이 아니라, ‘손님을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가’를 아는 곳이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자마자 발렛 직원이 다가왔다. 보스턴백을 챙겨 락커까지 옮겨준다. 작은 행동 하나에도 이곳의 ‘결’이 느껴졌다.
리무진카트에 올라 코스로 향하는 길, 산자락에 걸린 안개가 천천히 걷혔다. 바람은 선선했고, 공기는 맑았다. 전날 밤새 내린 비가 그쳤지만, 공기 속엔 수분이 머물러 있었다.
캐디는 섬세했다. 티샷을 마치자 티에 묻은 흙까지 닦아주겠다고 했다. 그런 세심함은 처음이었다. 코스 설명도 명확했다. 골퍼의 리듬에 자연스럽게 호흡을 맞췄다. 말이 필요 없는 공감능력이었다.
캐디피는 17만원, 다른 곳보다 2만원 더 비쌌지만 그 2만원의 차이는 ‘서비스’가 아니라 ‘태도’의 차이로 다가왔다.
코스는 양잔디다. 요즘 변덕스런 날씨 탓에 관리가 어려워 컨디션이 들쭉날쭉한 곳이 많은데, 휘슬링락의 페어웨이는 곱고 정갈했다.
아이언으로 정확히 다운블로우가 들어가면 뗏장이 크고 묵직하게 날아갔다. 그 찰나의 소리와 손끝의 진동은 골퍼가 느낄 수 있는 쾌감이다.
그린은 적당히 빨랐다. 공이 살아 움직였다. 볼이 홀컵을 향해 가는 궤적이 유려했다.
다만, 전날 내린 비로 벙커는 무거웠다. 스윙이 조금만 짧아도 모래가 공을 잡아삼켰다. 반대로 공을 직격해서 멀리 날아가버리면서 두 홀 연속 트리플을 하기도 했지만 전혀 짜증나지 않았다. 그마저도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여지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라운드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창밖으로 잔잔한 물안개가 피어올랐다. 휘슬링락CC는 단순히 ‘좋은 골프장’이 아니라, ‘좋은 기억’을 만들어주는 장소였다.
이곳에서의 하루는 완벽하지 않아도 완전했다. 고급스러움이란 결국, 사람의 손길이 얼마나 따뜻하냐는 걸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준 라운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