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내 사랑"

깐순이네민박, 16개월의 추억

by peacegraphy


마당에서 본 집.jpg

"안녕, 내 사랑".

마지막 이삿짐을 트럭에 실었다. 텅빈 거실을 돌아보며 아버지는 이 말을 남겼다. 미소 속에 진한 아쉬움이 묻어났다.


깐순이네민박은 전원주택을 수십채 지어본 아버지의 '인생작품'이다. 수십년 묵은 소나무 기둥과 유명브랜드 창문들, 각종 원목을 아끼지 않고 원없이 자재를 썼다. 세상에 둘은 없는 특별한 공간이다. 아버지는 일이라기보단 취미로, 자아실현의 한 방법으로 이 집을 지었다.


하지만 지어놓고 보니 용도가 마땅찮았다. 원목가구를 만드는 공방으로 쓰려는 생각으로 지었지만 계획을 철회하고 보니 이 멋진집이 애물단지가 됐다. 예쁘지만 속을 썩이는 골칫거리였다.


부동산에 매물로 내놨지만 가끔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은 있어도 사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강원도 산골보다 더한 시골. 우리 동네가 그렇다. 투자가치가 높지 않다. 별장 아니면 살 이유가 없는데, 별장으로 쓰기엔 구조가 너무 독특했다. 사실상 방치된 채 1년 정도가 흘렀다.


그래서 낸 아이디어가 숙박공유였다. 처음엔 앞날이 불투명했다. 내세울만한 주변 관광지가 없다. 인근에 펜션도 없다. 숙박업을 하기엔 말그대로 불모지였다. 그런 곳을 열심히 꾸몄다. 내가 직접 찍은 사진들도 전시해뒀다. 자연스런 사진 전시회를 기대했다. 가구를 들여놓고 손님을 맞이할만한 곳으로 준비하는 데 한 달이 걸렸다.


2018년 7월. 첫 예약을 받았다. 작은 교회에서 수련회를 온다고 했다. 사전답사까지 왔다. 손님들은 이런 공간을 이런 가격에 빌릴 수 있다는 데 감동했다. 이 손님은 1년 뒤에 다시 방문하기도 했다. 첫단추를 잘 뀄다. 16개월 운영하는동안 나름대로 기대 이상의 성과를 얻었다.


깐순이네민박은 2019년 11월까지 우리 가족의 든든한 공간이었다. 매일 아침 알을 낳아주는 닭처럼 고마운 존재였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부모님과 떨어져 지냈다. 한두달에 한 번쯤 시골집을 방문하는 게 고작이었다. 민박을 운영하면서는 집에 가는 빈도가 늘었다. 신기하게도 시골집에 있으면 예약 전화가 더 많이 걸려왔다. 언제 예약이 잡혔다는 기쁜 소식을 직접 전할 수 있었다.


16개월 간 이 공간을 이용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어림짐작으로 2000명 정도 될 것 같다. 매주 토요일 예약이 찼다. 금요일과 공휴일에도 예약이 있었다.


모임의 종류는 다양했다. 친구들 모임부터 가족 또는 연인 동반 모임, 대학시절 통기타 동아리 모임까지. 할머니 생신파티, 할로윈 파티 등 사연도 여러가지였다. 대부분의 게스트는 긍정적인 후기를 남겼다. 평점도 5점 만점에 4.7점으로 만족스러웠다. 손님들은 매너도 좋았다. '처음 모습 그대로'라는 원칙을 지켜줬다. 나는 깐순이를 데리고 가 밤이나 곶감을 게스트들에게 선물로 주기도 했다.


평일에는 침방으로 공간을 내줬다. 한의학을 배우는 공부모임이다. 침방모임으로 깐순이네민박을 찾은 손님들도 꽤 많다.


2000명이 아버지의 인생작품을, 나의 사진전을 즐긴 셈이다. 아버지는 그 자체로 행복하다고 했다. 아무리 멋진 집이라도 '주인'이 있다면 그 집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은 한정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집을 공유했다. 덕분에 2000명 넘는 사람들이 이 집의 아름다움을 느꼈다. 성과물에 감탄하기도 했다. 아무리 가치있는 것이라도 누군가가 봐주지 않고 알아주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깐순이네민박을 인수한 분이 계속해서 운영을 한다고 한다. 다행스런 일이다. 아버지의 작품을 감상할 사람들이 더 많아진다는 것은 뿌듯한 일이다. 잠시 영업을 중단한 사이, 예약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이번 달은 새 주인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 예약을 받는 게 아직은 남의 일 같지가 않아 열심히 응대하고 있다.


안녕 내사랑. 깐순이네민박-시즌1이 마무리됐다. 부모님은 '공유의 즐거움'을 깨달았다. 그리고 '시즌2'를 준비중이다. 아마도 이름은 '몽실이네민박'이 되지 않을까. 새로운 시작이 기대되는 요즘이다.

1층 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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