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울림 Jul 21. 2017

영화 아버지의 전쟁

'김훈 중위 사건'과 국방부의 민낯, 그리고 영화제작 이야기

좋은 아침입니다. 여러분.
다들 출근 준비 잘 하고 계신가요?


오늘은 현재 제작중인 영화이지만 개봉이 불투명한 작품과 그 작품의 기반이 된 실화 사건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바로 영화 <아버지의 전쟁>과 군의문사 사건으로 유명한 '김훈 중위 사건'인데요. 이번 시간에는 '김훈 중위 사건'에 대한 소개와 영화 관련 이야기를 나누며 이 사건이 왜 유명한지, 영화화가 결정된 배경은 무엇인지, 그리고 최근 논란이 된 영화의 제작중단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시작해볼게요.

1. 김훈 중위 사건

1) 사건 경위

'김훈 중위 사건'은 1998년에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한국의 김훈 중위가 사망한 채 발견된 사건입니다. 사실은 한국의 군대에는 600개가 넘는 의문사가 있지만 유독 이 사건이 크게 알려진 것은 김훈 중위의 아버지 김척씨가 육군 중장의 신분으로 군의 수사과정에 의문사항을 많이 지적하여 언론에 알려진 덕분입니다. 이 과정에서 육군의 수사과정 내 수많은 잘못과 조작 등이 발견되어 군에 대한 신뢰가 바닥에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사건이 발생한 당일인 1998년 2월 24일에 판문점 JSA는 미군 장성 진급자의 방문 계획이 잡혀 평소와 달리 바쁜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부대의 소대장이었던 김훈 중위 역시 이들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레 일정이 취소되자  소대원들을 귀대 조치시킨 후 정찰을 위해 소대장실을 나갔습니다. 이후 부대 상황실에 들른 것을 마지막으로 다음 날 GP 지하벙커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습니다. 김훈 중위의 시신이 있던 현장에서는 베레타 권총이 떨어져 있었고 그의 오른쪽 머리에는 총알이 관통한 총상이 있었습니다.

2) 국방부의 수사발표 

군에서는 최초의 수사발표 이후 98년에서 99년에 이르기까지 총 3차에 걸친 재수사가 진행되었으나 사망원인은 줄곧 자살로 발표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결과에는 수상한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3) 의문점

i. 군의 사전결론 및 증거조작 정황

김훈 중위가 사망했을 당시 왼쪽 손목에 차고 있던 손목시계가 파손된 상태였고 사망현장의 벙커 근처에 있던 스위치 박스가 훼손되어 있는 등 몸싸움의 흔적이 분명히 존재하였는데 군은 증거 확보 및 현장 사진 촬영 등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군은 권총자살이라 발표하였는데 오른손잡이인 김훈 중위의 왼쪽 손바닥에서만 총의 화약흔이 발견되었고 총 자체에서는 김훈 중위의 지문 대신 제3자의 지문이 발견되었습니다. 또한 권총자살일 경우 관자놀이에 총을 갖다댄 상태에서의 밀착사격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김훈 중위의 경우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근접사로 인해 살해당한 것으로 부검의 조사 결과 드러났습니다.

군이 사건이 발생했던 1998년 대규모 특별조사단을 통해 재조사하던 과정에서 사망 원인을 예단하고 수사한 흔적들이(군 내부에서 최초 현장감식 2시간 전에 이미 김훈 중위의 '자살'로 보고가 이루어진 정황) 발견되었고 김훈 중위의 업무수첩, 무전기 등을 물증으로 확보하지 않고 소대원의 진술을 강요한 상황 등의 정황과 사건 당시 시간대별 상황 보고서를 일찌감치 폐기하는 등의 의심스러운 행동을 한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이후 국회, 대법원, 군의문사규명위, 국민권익위원회의 대대적인 조사로 인해 자살로 인한 사망 단정 불가라는 결과라는 나왔음에도 군은 김훈 중위는 여전히 자살이라는 입장을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사건 재현을 위해 국방부에서 실시한 실험결과가 타살의 가능성을 제기하자 비공개 처리하는 등 의심을 받을 행동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ii. 수상한 미군

조사 결과 최초로 김훈 중위의 시체를 확인한 미 육군 군의관이 현장보존이나 검사가 시행되기 전에 시체를 닦는 등 증거인멸로 의심될 수 있는 행동을 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김훈 중위의 혈흔이 제거되었고 군은 병사들을 동원하여 사건 현장인 벙커 내부의 혈흔을 세척하는 등 초기 사건 현장에 대한 훼손이 상당부분 이루어졌습니다.

또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는데 김훈 중위가 죽은 지점에서 미군은 사망 후 보존 조치가 되어야 할 현장을 청소하고 미국 범죄수사대의 허락 하에 사건현장을 페인트로 도색, 초동 수사 당시 사건 현장에 있던 방탄모 등 물품들을 임의로 치우는 등 사건을 은폐하려는 듯한 행동들을 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김훈 중위의 시체감식단의 단원으로 감식 결과 자살로 발표하였던 스펜서 박사는 훗날 비윤리적 부검으로 인해 의사자격이 박탈되는 등 이 사건과 관련된 미군 측 인원들은 여러가지로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4) 진전

군의 부실한 사건조사에 대한 항의가 빗발치자 당해 재조사가 진행되는데 이 때 재미 법의학자 노여수 박사가 등장함으로 수사는 새 국면을 맞이하게 됩니다. 노여수 박사는 김훈 중위의 시신에 대한 부검 끝에 총 11가지의 타살 증거를 과학적으로 제시하였고 이에 대해 국방부는 침묵으로 일관합니다. 

객관성을 더하기 위해 미국 최고감정기관인 미국 군수사연구소에 사건을 의뢰하였는데 이 기관에 따르면 '근접사이며 스스로 쏘지않았다'는 감정결과를 보내왔습니다. 미국 총기전문가도 김훈 중위의 왼손손바닥은 방어자세의 현상이고 직접 총을 격발하였다면 손에 피가 묻었어야하나 혈흔이 일체 없었다는 것을 근거로 타살일 가능성이 높다고 의견을 제출하였습니다.

결국 대법원 소송으로까지 진행된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김훈 중위의 사인을 자살로 단정하고 부실수사한 군의 잘못된 대응으로 타살여부를 확인할 단서를 훼손한 과실을 인정합니다. 이에 김훈 중위의 유가족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과정에서 초동수사 부실로 인한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게 됩니다.

허나 군은 초동수사 부실로 인해 사망원인 규명이 불가능한 김 중위를 순직 처리하지 않고 시간을 끌었으나 2015년 권익위의 훈령 개정으로 순직처리가 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자살, 타살 규명은 진상규명 불능으로 결정된 상태여서 이 사건의 진정한 해결은 아직 요원해보입니다.

2. 아버지 '김척'의 전쟁

김훈 중위의 아버지인 김척 씨는 아들의 죽음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무려 19년에 걸친 국방부와의 전쟁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세 차례의 진상조사가 실패로 끝나자 직접 군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내고 법의학을 공부하고 수사과정의 오류도 직접 연구하여 자살의 근거를 무너뜨릴 정도로 준비하였습니다. 이러한 근거자료를 가지고 직접 군의문사진상조사위원회에 제보하였으니 진상규명 불능이라는 결과를 받고 크게 분노하여 민사소송까지 진행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놀랍게도 김척 씨는 육군 예비역 중장 출신인데 군에서 무려 36년을 군복무하였고 월남전 파병도 3년이나 다녀올 정도로 철저한 군인입니다. 김훈 중위는 아버지를 본받고 싶어 군에 입대했지마 부모님 내외는 김훈 중위가 군에 복무하는 것을 반대하고 일반대학교를 졸업하여 국제변호사가 되기를 바랬을 정도로 자식은 다른 삶을 살길 원했다고 합니다. 허나 김훈 중위 본인의 강력한 희망으로 군에 입대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아들을 둔 부모에게 군에서는 한사코 자살이라고 말하니 과연 수긍할 수 있었을까요?

자신이 평생을 바쳐 봉사한 군대에서 목숨보다 귀한 자식이 죽은 것에 분노한 아버지 김척 씨는 돕는 사람 하나 없이 직접 진실을 찾기 위해 움직였다고 합니다. 군의문사 유족으로서 가장 힘든 것은 군 접근이 안된다는 점이었고 이 점 때문에 발품팔이를 하며 부대원들, 김훈 중위 동기들, 선후배, 전문가들을 찾아다니며 도움을 호소하였다고 합니다.

김척 씨는 아들의 사망에 의심쩍은 부분이 있는 것을 사망시간과 현장을 보고 확신하였다고 합니다. 점심시간에 적지않은 부대원들이 멀지않은 곳에서 자살한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전 11시 50분까지 사무실에 있다가 12시에 벙커에서 자살했다는 정황은 확실히 쉽게 이해되진 않지요.

또한 권총자살일 경우 머리에 총을 대고 쐈다면 머릿속에 화약가스가 남아야하는데 부검결과 전혀 없었다는 점, 사건 이후 부대 병사들에게 행한 군의 조치와 부실한 조사, 부대원들이 군지휘부에 의해 말을 맞춘 것을 보고 아들의 죽음에 누군가의 손이 개입된 것을 확신을 하게됩니다.

김척 씨는 군이 한사코 진실규명을 가로막는 이유는 사건 발생시 지휘관이 책임을 지게 되기 때문에 은폐한 것으로 이야기합니다. 본래 군내 사건/사고에 대한 수사는 헌병, 기무, 감찰, 작전, 군수 등 5부의 합동조사가 원칙인데 초동 수사 때 헌병 혼자만 와서 조사하고 조작하였다는 것을 근거로 이야기합니다. 

김척 씨의 말에 따르면 적어도 이 사건에 대해 육군참모총장, 합참의장, 국방부장관 모두 거짓말로 일관하고 있다고 합니다. 심지어 대법원의 판결마저 교묘히 왜곡하여 자살로 조작하여 언론에 배포할 정도로 군은 조직적으로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려 하였습니다. (이 대법원 판결의 주심은 '김영란 법'으로 유명한 김영란 당시 대법관이고 김황식 전총리와 안대희 전 대법관도 배석한 재판이었습니다.)

김척씨는 국방부 장관에게 공개토론을 요구하고 증거조작에 대한 내용증명서도 발송하였으나 국방부에서는 이에 응하지 않고 당사자들의 전역 등을 이유로 처벌불가 입장만 밝히며 뒷집을 지고 있습니다.

3. 영화 관련 이야기

영화 <아버지의 전쟁>은 임성찬 감독이 6년에 걸쳐 준비하여 제작중인 작품입니다. 앞서 의문사를 소재로 만들어진 전작들인 <이태원 살인사건>, <재심>에 이은 진상규명을 위한 영화로 배우 한석규가 캐스팅되어 큰 기대를 모았지만 현재 제작이 중단된 상태입니다. 감독과 투자사에서 하는 이야기가 다르긴 한데 이들의 의견을 합쳐보면 각각 배우와 스탭에 대한 출연료 미지급과 유족의 반대를 들고 있습니다. 

영화의 제작을 중단한 투자사의 말에 의하면 유족인 김척 씨는 처음에는 영화 제작에 동의하였으나 이후 영화 각본을 본후 내용에 중대한 하자가 있어서 중단을 요청하고 내용증명서까지 보낸 상태라고 합니다. 감독으로부터 영화의 시나리오를 보고 유족 측이 주장하는 사실과 거리가 먼, 20년간 유족이 진실과 싸워온 과정이 아닌 완전한 창작이라는 것이 김척씨 쪽의 설명입니다. 인터뷰에 따르면 아버지 캐릭터는 졸속 진상조사 이후 군 출신 경력을 이용해 육군참모총장을 만나고 의문사 해결을 하는듯한 뉘앙스의 플롯이 있는데 자신은 결코 자신의 인맥을 동원하지 않고 철저히 개인으로서 진상규명에 매진했다고 합니다. 또한 실제 군이 잘못한 것 외에 사실이 아닌 사항을 삽입하여 군을 매도하는 내용이 있다고 말하며 군에 대한 비판은 어디까지나 사실에 근거하여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한석규, 백성현, 류현경, 장광, 조재윤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배우들이 출연하여 화제가 되었으나 투자사가 바뀌고 3번의 제작중단을 겪으면서 작품 제작이 1년이상 미뤄진 상태입니다.  교체된 투자사와 협의하여 본래 계획된 예산의 1/3 규모로 진행하는 것으로 결정하고 올 2월부터 촬영을 진행하다 4월에 차자사의 통보로 제작이 중단된 이후 현재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임금 지급이 미뤄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김훈 중위 사건이 일어난지 올해로 20년이 다 되어 갑니다. 타살이 사실이라면 가해자는 누구이고 군은 누굴 지키고 무엇을 은폐하려는 것인인지, 용의자는 누구인지, 군은 왜 그 용의자를 지키려고 하는 것인지 많은 상상과 억측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아버지 김척씨는 군이 지키려는 것은 진상조사 때 수상한 행동을 한 미군이 아닌 군의 상급자 중 일부 세력일 것으로 의심하고 있습니다. 과연 사건의 명쾌한 진상은 언제 밝혀질지, 영화 <아버지의 전쟁>의 제작은 계속될지 지켜봐야 될 것 같습니다.

내 머리에 총을 대서 실험해주기 바란다. 나는 내 몸을 내 자식한테 바친다.
- 故김훈 중위 어머니

* 영화를 같이 볼 모임을 찾으신다면 소모임 어플에서 '영화'를 검색해주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 100미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