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과 졸음은 종이 한 장 차이. 졸지 마, 이 자식아
『마음이 힘들다.
사건 사고는 없었다.
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왜 갑자기 삶이 허무하고 슬프고 무기력한 것인지를...
무형의 존재와 부딪혀 크게 깨진 듯했다.
무엇이라도 붙잡고 하소연하고 싶었다.
별것 아닐 수 있는 것들에 휘둘려 마음이 크게 휩쓸렸고, 곧 생채기가 났다.
왜인지 동요된 마음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고, 열일곱의 나처럼 자꾸만 슬퍼졌다.
그러자 삶이 슬퍼졌다.
이제는 슬퍼진 것이 아니라 서글프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는 나이가 되었다.
그 또한 내 안의 슬픔을 가중시켰다.』
그것이 독일 여행을 갔다 온 다음인 10월 중순의 상황이었다. 재해가 휩쓴 뒤 남은 잿빛의 잿더미가 수북이 앉아있는 심장을 달고 하루하루 살았다. 사는 것인지,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는 채로. 그때 문득 명상센터 생각이 났다.
‘그곳에 가면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나를 대면할 것이다.
내가 내면 깊숙이 감춰놓은 것이 무엇인지 찾으러 가자.’
팟캐스트 <지대넓얕>의 멤버인 김도인이 하는 명상센터 <리프레쉬 마인드>. 내 머릿속에 선명히 기억되던 그 풍경. 작은 숲을 이루는 나무들이 내려다 보이는 통유리 창을 가진 공간에는 새하얀 좌식 의자들이 그 유리 속 세상을 내려다보고 앉아 있었다. 마치 도인들처럼. 그곳이 명상센터였다. 그냥 가서 앉아만 있다가 와도 치유될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바로 전화를 걸었지만 11월의 명상은 모두 마감되었다. 한 달을 기다리는 연락을 받았다. 기다릴 시간이 없는데… 자꾸만 가시 같은 어떤 것이 가슴을 쿡쿡 찌르고 있는데 응급실은 환자로 꽉 찼다며 나를 차가운 복도로 안내했다. <한 달만 기다리세요>라는 번호표와 함께.
그렇게 12월이 되었고 집에서 한 시간 반이 걸리는 선릉역 명상센터 수업을 일요일 오전 10시로 신청했다. 깨끗한 일요일을 살고 싶었기에. 습관처럼 주말에 술 취해 잠을 청하던 삶을 청산하려고. 목욕재계하는 마음으로 토요일 밤 이른 잠을 청한 뒤 교회를 다니듯, 일요일 오전 예배를 드리듯, 겸허한 마음가짐으로 명상을 듣으려고.
그러다 어느 순간 감기가 지나갔다. 나 12월에 명상센터 등록했다고 주변에 말하는 시점에 나는 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와 있었다. 나무가 되었다 주문이 풀려 다시 사람이 된 이들이 ‘방금까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라고 의아해하는 그 시점, 그때로 돌아와 있었다. 절실하게 필요할 때는 기다리라는 말만 하더니, 정작 의사 선생님의 진찰 시간이 되자 아픈 것이 나아서 그에게 어떤 말을 전해야 할지 모르겠는 상황이 되었다. 그렇게 12월 명상 수업이 시작되었다.
“다들 김도인 보러 가는 거 아냐?”
“맞아요. 거기에 저도 포함이요.”
사람에 대한 궁금증과 도인인 그녀에게 배우고 싶었다.
주먹을 손바닥으로 감싸며 머리를 숙이며 마음속으로 건넨다.
<한 수 가르쳐 주십시오>
그녀는 생각보다 키가 컸고 늘씬한 것을 넘어 말랐다. 타고난 뽀얀 얼굴 때문인지 그녀는 ‘맑아’ 보였다. 수업 듣자고 꼬셔서 같이 수강 신청한 제롬이 말했다. “때 안 탄 사람처럼 보이죠? 얼굴에 찌듦이 없네. 도 닦으면 저래 되나?” 나만 그렇게 느낀 것이 아니구나. 아이의 얼굴에는 찌듦이 없다. 맘고생이 스미지 않고 그저 지나간다. 투과한다고나 할까. 마치 그런 인상이다. ‘저 나이 때의 사람에게 저런 얼굴이 나올 수가 있구나’ 그건 둘 중에 하나다. 마음이 열반의 경지에 올랐거나, 포커페이스가 열반의 경지에 올랐거나.
애니어그램 9번 타입인 평화주의자는 지구 상에 나와 김도인만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나 보다. 그와 나는 어떠한 공통점으로 묶여 있어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나 보다. 수업을 들으며 깨달았다. 그것이 망상이라는 것을. 나는 전혀 명상 수업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의 선배는 내게 종종 말한다. “하아.. 정말 너 너무 착한 것 같아(등신같이)” 괄호 속의 진실의 소리가 들리듯 김도인의 수업에도 숨은 의도가 들리는 듯했다. ‘자기 자신을 마주하고 내면의 상처를 마주하여 무엇에 휘둘리는지를 깨닫고 그것에 대한 대처 기제를 하나가 아닌 몇 가지로 만들어 인생을 풍요롭게 하자’인 것 같은데 자꾸만 ‘호구 정책을 끊는 방법을 원하잖아. 내가 그것을 알려줄게’라고 들렸다. 지대넓얕을 추천했던 나의 구선배에게 이 얘길 하자 “보통 내성적인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을까. 남에게 싫은 소리 하느니 그냥 꾹 참는 마음 약한 사람들이 답답한 마음에 찾지 않을까.” 그런가. 하지만 내가 찾던 것은 저것이 아니다. 방어책을 세워달라는 말이 아니었다. 나를 컨트롤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줘. 내가내 안에서 마음이 요동칠 때 “울지 마. 뚝”이라고 말하는 것 말고 왜 우는지 알고 싶단 말이야.
“살면서 행복했던 순간들로 떠나봅니다. 사건 순으로 봐도 되고 시간의 흐름대로 봐도 돼요. 떠오르는 대로 보세요. 그것은 어떤 방식으로 명상을 떠나게 되는지 자신의 스타일입니다.”
댕-댕-
시간여행의 종이 두 번 울린다.
어릴 적부터 떠오르는 대로 짚어본다. 4살이나 어린 동생의 고사리 손을 붙잡고 엄마 대신 유아원에서 데리러 나왔던 것, 밤늦게 들어오는 부모님을 자는 척하다가 깜짝 놀래켜주던 것부터 중학교 때 교실 창가에 앉아서 커튼이 흩날리던 교실을 바라보던 5교시 선선한 공기와 점심 먹으러 급식실로 뛰어가던 눈 쌓인 교정, 만원 버스를 기다리며 깔깔거리던 여고생 시절, 시작한지도 모르게 시작된 불꽃같은 감정의 첫사랑 등을 마주하자니 콧등이 시큰거린다. 쳇, 이게 뭐라고. 한참을 빠져있었는데 아직 본식은 시작도 안 했잖아. 이제 스무 살로 왔다. 찬란하게 방탕했던 대학시절을 지나 사회에 나와 한 달에 한 번씩 찾아오는 불지옥 마감과 그 스트레스를 푸는 술자리가 연이어진다. 아직도 이십대잖아. 놀랐다. 생각보다 나 오래 살았네. 아직도 들여다볼게 더 남았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리고 소복하게 쌓인 행복의 추억들에도.
내 안에 있음에도 들여다보지 않아 없어진 줄 알았다. 없어진 것들은 그것이 아니라 마주할 시간이었다. 나라는 사람이 느끼는 행복은 딱 하나의 큰 사건보다 먼지 같은 일상의 소소함들이 많이 보인다. 소소한 부분에서 행복감을 많이 느끼나 보다. 그리고 같이 시간을 보냈던 사람들이 꼭 등장하는 걸 보면 내 주변 사람들을 애틋하게 생각하나 보다.
<명상이란 나를 관찰하러 가는 것이에요>
다음 주는 2018년 해보고 싶은 것을 정해서 오세요. 로드맵 짜는 시간입니다.
몸살로 결석했다. 실은 마음 속까지 들어오지 않는 수업에 대한 반감도 작용해 그럴듯한 변명으로 몸살을 택한 것도 있다.
수업을 함께 듣는 제롬은 이날 수업을 들은 후 기분이 좋지 않아 기분전환으로 영화관을 찾았다가 망작으로 소문난 <스타워즈>를 보고 기분이 더 안 좋아져서 소주를 사서 집으로 갔다고 한다. 안 좋은 일이 겹겹이 그를 방문했다. 아마도 슬픈 기억들을 소환했다가 미처 다 털어내지 못한 감정의 뽀시래기가 주변의 것들을 데려왔나 보다. 슬픔이란 조금만 있어도 막강하니까.
김도인은 명상 수업을 진행하면서 자꾸만 질문이 있는지 확인한다. 자신이 잘하고 있는 건지, 말하지 않으면 확인할 수 있는 길이 없으니 궁금한 것이 있으면 바로바로 물어보란다. 그래서 방금 경험한 신기한 체험에 대해 물었다.
“저는 눈을 감고 명상을 하다가 다른 생각으로 빠져서 다시 원래의 토픽으로 돌아와 보면 몸이 앞쪽으로 쏠려 있어요. 눈을 뜨지 않은 채로 다시 자세를 세우고 다시 딴생각에서 돌아와 보면 몸이 또 앞쪽으로 쏠려 있어요.”
“네, 선생님. 그것은 명상을 하신 게 아니라 졸았던 거예요.” 아하. 네. 선생님.
평온한 마음과 신체를 함께 사용하기에 명상과 수면은 교집합처럼 맞닿아 있어 쉽게 그럴 수 있단다.
다시 말해 조금이라도 피곤한 상태나 수면이 부족한 상태로 가면 100% 졸다가 수업이 끝난다는 말이다. 세 번째 시간이 그랬다. 보통 하루 3시간의 명상 수업은 1차 이론 수업을 듣고 2차로 실제 명상을 하는데 1차 수업도 졸고, 2차 명상 때는 수면을 했다.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 수업을 몽땅 날려먹었다. 방실방실 웃으며 크리스마스이브의 소중한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하는 김도인의 낯을 볼 낯이 없었다. 점점 명상과 나는 안 맞는 게 아닐까, 란 생각이 든다. 그래. 처음 마음먹었던 대로 일요일 오전에 일찍 깨어있는 것만으로도 명상이라고 생각하자. 아멘.
<사랑의 첫 장면을 찾으세요. 처음으로 그에게 호감이 생겼던 부분, 말이나 태도, 행동적인 부분들이 있었을 겁니다. 처음 주고받은 교감도요. 분명 받고 싶은 게 있었을 거예요. 누군가에게 받았던 부분을 찾아보세요. 그것이 없어지면 사랑의 끝맺음을 하게 됩니다. 무엇이 없어졌는지 들여다봅니다>
댕-댕-
시간 여행의 종이 울린다. 너무 오래되어 까마득한 것부터 파헤쳐 본다. 너무도 오래되어 한참을 뒤로, 뒤로, 뒤로 가다가….
댕-댕-(끝)
… 음..?
… 또..?
수업에서는 책 <주역>이 첨부된다. 사용된다기보다는 뜻풀이가 마치 할머니가 들려주는 전래동화급이라 점점 주역에 대한 흥미가 커진다. 길고 짧은 막대기들의 모양에 따라 점을 보던 유교 경전 중 하나인데, 꿈보다 해몽이라고 예를 들어 ‘기쁠 태’에서 <기쁜 일이 거듭된다. 조화를 잃지 말아야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유주얼 서스펙트급.
1) 쾌적함을 선사하는 이 하얀 의자의 정체는 무엇일까. 사고 싶다.
2) 중간에 쉬는 시간이나 수업이 종료되면 김도인에게서 떠나지 않는 한 무리들이 있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카운슬링이 시작된다. 누군가는 눈물을 흘린다. 고해성사가 시작된다. “그것 때문에 수업 신청하는 거 아니야?”란 누군가의 반문에 동의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여기에 안 온다는 김도인의 말에도 동의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여기에 안 오거나 누군가가 너 거기 가보라고 해서 오거나, 둘 중에 하나라고. 과연 저 사람들은 그녀에게 무슨 도움을 요청하는 것일까.
3) 저 크고 아름다운 가습기는 무선인가, 유선인가
수업이 끝나고 나서 남아있는 사람들은 과연 무엇을 물어보는지 궁금해서 나도 남아보았다. 전부 카운슬링 일 줄 알았는데 수업과 관련된 질문이었다. ‘질문 있으세요?’라고 물어볼 때 했어도 되는 것들이잖아,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김도인에게 질문을 하면서도 남아있는 사람들을 스윽, 둘러본다. 조용한 정적을 깨서 주목받고 싶지 않거나 ‘뭐 그런 걸 물어보냐’는식의 눈빛이 무서웠던 것은 아닐까. 괜한 질문으로 피해를 주거나 주목받거나를 피하고 싶었던 것 같았다. 첫 번째 사람이 물러나고 두 번째 사람이 질문을 한다. 명상할 때나 평상시에 긴장이 쉽사리 풀리지 않는다는 고민에 김도인은 자신의 긴장 상태가 어떠한지 자신이 알아야 한다고 말하며 긴장하면 어떻게 되냐고 되묻는다. 그녀는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겠고 땀이 나며 심하면 눈물이 나면서 상황이 통제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눈물을 보였다. 북받치는 감정 때문인지 갑자기 물어보는 질문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그 상황을 보면서 ‘저 상황은 공황 장애 쪽인 거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극히 내성적이라 주변의 눈빛이 힘들고 나를 어떻게 바라볼지 신경 쓰이고 거절을 못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 ‘타인보다 민감한 사람들'에 대한 팟캐스트를 김도인이 했을 때 얼마나 많은 위안을 받았을까. 그들의 말 못 한 고민과 고통을 상담하러 이곳에 올 수밖에 없는 것이 한편으로는 안타까워 보이기도 했다. 내 질문은 그냥 수업시간에 하자, 싶어서 일어섰다. 이미 2시 수업을 듣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들어오고 있었기에.
같이 수업 듣는 메이트인 제롬이 요즘 수업에 흥미를 잃은 듯 보였다. 첫 수업 때는 미친 듯이 질문해대더니 요즘은 실전 명상만 하면 코 고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뜬구름 잡는 얘기만 하는 것 같아요. 뭔가 사기꾼 같달까.”
“두루뭉술하게 얘기해준다고 느끼니까 더 질문해야 되지 않을까. 그러면 A가 맞냐, B 쪽은 틀린 거냐. 계속 물어보면서 방향을 잡아가야 하지 않을까.”
“김도인이 말해준 대로 그대로 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녀가 살아온 환경과 성격과 나는 다른 거니까. 나한테 맞게 응용해야 하잖아요. 결국은 나 하기 달린 거잖아.”
맞음. 그의 말도 맞고 수업 중 김도인이 하는 말도 맞다. 다 맞는데, 수업을 괜히 같이 듣자고 한 건가 싶어 마음이 쓰이는 것도 맞다. 다 맞다.
명상의 시간, 김도인의 <리프레시 마인드>_②후반전에서 계속됩니다. 아직 수업이 끝나지 않았어요. 종강 후 나는 어떤 끝맺음을 하게 될까요.
명상명상의 시간, 김도인의 <리프레쉬 마인드>①_전반전 의 시간, 김도인의 <리프레쉬 마인드>①_전반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