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결국 혼자다

홀로 세상에 서다

by 고요의 향기

몇 년 전 가을이 한 걸음 물러나고 겨울이 고개를 들이밀 때쯤 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 향기님, 저기 향기님한테 크리스마스 선물이 왔대요. 누군지 모르겠어서 발신인 전화번호가 있어서 연락해 봤대요. 그러니까 글쎄, 여름에 거기 머물던 한 여인과 여자아이에게 보내는 선물이라는 거예요."

내 마음은 아득히 몇 개월을 훌쩍 건너서 무더위가 깊었던 8월의 어느 날로 달려갔다. 우여곡절 끝에 집을 나서야 했던 그때, 산속에서 보낸 14일이라는 시간의 추억이 고스란히 떠올랐다.


'우리 자연스럽게 살자, 이 집 무너지더라도 쓰레기로 남지 않는 그런 집에서.'

그런 마음으로 2009년 6월,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한 몇 부분을 제외하고는 손수 흙을 얹은 흙집을 지었다.

말이 태어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태어나면 서울로 보내라고들 하면서 대도시로 향할 때, 우리는 반대로 중소도시인 구미에서 농촌도시인 상주로 왔고 상주 중에서도 산 밑으로 들어왔다. 아파트에서는 살고 싶지 않아서 마당 있는 흙집에서 살아왔다. 손수 놓은 구들방 흙집에서 군불을 때며 살아온 지 십여 년, 우리가 그렇게 했던 이유는 자연과 마을공동체가 살아있는 곳으로 가겠다는 뜻이 있었다. 그렇게 산 아래에 터를 잡고 뜻이 맞는 사람들과 마을을 이루어 살아왔다.


그런데 결국 그 흙집 바닥을 시멘트로 바꾸는 공사를 진행하기로 마음먹었다. 습기와 곰팡이도 한 문제였지만 초대하지 않은 곤충들이 대낮에도 자유분방하게 다녔다. 눈으로 보기 힘든 곤충은 그래도 참을 수 있었지만 안전에 위협이 되는 곤충이 자유롭게 다닐 때는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어른은 그래도 큰 어려움이 없었지만 아이들이 힘들어했다. 그렇게 결정한 이번 공사는 바닥 시멘트 공사라 짐도 다 옮겨야 했고 사람도 기거할 수 없었다. 잘 곳이 마땅치 않았던 나는 이번이 세상을 혼자 마주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나는 늘 삶은 결국 혼자라고 생각했다.

가족도 결국 곁을 스쳐 갈 한 인연에 불과하다고. 스쳐갈 인연들이 다 사라진 곳에서 혼자 살아가더라도 자기 삶을 자기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던 때였다. 그런데 세 아이의 엄마이자 직장인으로서 혼자가 되는 시간을 갖기가 쉽지 않았다. 낮에는 직장에서 해야 할 일들이 가득했고 저녁이 되면 집안일과 가정에서 해야 할 일이 늘 넘쳐났다. 나는 일상적으로 해야 할 일을 순발력 있게 처리하면서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에 중심을 두려고 노력하면서 살아왔다. 칼 구스타프 융은 '인생의 목적이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모습일지는 내 삶의 중요한 화두였다. 그리고 이때 공사로 잘 곳이 없다는 것은 혼자 떠나는 여행의 좋은 핑곗거리가 되어주었다.


마침 방학인지라 막내딸은 경주에 있는 어느 사찰에서 진행하는 무술캠프에 참가하기로 했다. 직장도 최대한 미리 해야 할 일을 준비해 놓았고 때마침 휴가기간이었다. 어딘가 혼자서 조용히 지낼 장소를 물색하던 중에 같이 공부하는 지인과 연락이 되어 산속 암자에 들어가기로 했다. 막내딸을 캠프에 보내고 그 암자가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이 떨렸다. 그 산은 금방 보기에도 아득히 깎아지른 듯한 바위와 절벽들이, 그리고 깊은 계곡과 어우러진 풍광이 훤칠하고 시원했다. 40여분을 등산하고 나니 산길 옆으로 살짝 비켜난 곳에 작은 암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등산길 옆으로 난 길로 올라오면 보이는, 이웃집처럼 아늑해 보이는 낮은 지붕의 작은 암자였다.


그렇게 나의 홀로서기는 첫출발을 했다.

평소 알렉산더보다 더 자유로웠던 디오게네스의 삶을 나는 존경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왕보다 잠잘 수 있는 통 하나를 가진 디오게네스가 더 자유로웠던 것은 당연한 결과는 아니었으리라. 최소한의 필요, 통 하나만 가지고도 더 자유로워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 자신에게 물었던 그 질문을 삶으로 실행해 보는 때가 왔다. 행복은 소욕지족이라고 ‘북본열반경’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지금 가진 것 이상을 탐하지 않고, 얻는 것이 적어도 이대로 한탄하지 않고 만족할 줄 아는 마음, 그 마음에서 행복이 온다고.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사랑하며 그렇게 단순하게 살아가면서도 만족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삶의 조건에서가 아니라 욕심이 적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인터넷과 와이파이는 안되었으나 전화는 가능했다. 그러나 이렇게 혼자 지내기로 마음먹었는데 누구에게 먼저 전화할 일도 없었지만. 타다다닥 야밤의 고요를 깨는 마당 소리들이 들렸다. 가끔 멧돼지를 비롯해 짐승들이 나타나기도 하니 밤에는 가능한 다니지 않거나 플래시를 꼭 가지고 다니면서 주의하라고 지인이 말씀해 주신 대로 조심해야 했다. 옛날 창호지문 같은 오래된 문이 두 개 있었고 나무 문이라 이미 비틀어진 나무 사이로 달빛이 환히 비치고 있었다. 방문 틈 사이로 들어오는 배 고픈 모기와 싸워야 하는 일도 한 고역이기도 했고 깊은 산중이라 습기도 꽤 있어서 내가 머무는 아주 작은 방은 장작불을 지피지 않으면 자기 힘든 구들방이었지만 그래도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을 가진다는 것 자체로 좋았다. 이 산속에서의 깊은 밤, 화장실도 저만치 멀리 있어 플래시로 한참을 걸어내려가야 해서 미리 볼일을 보고 난 뒤 밤을 맞이해야 했던 단촐한 밤, 내게 해야 할 그 무엇은 아무것도 없이 그냥 있기만 하면 되었다.


그렇게 홀로 된 첫날 밤은 특별히 기억에 남아 있다. 어둠이 깔릴수록 고요해지기는커녕 더욱 커지던, 계곡을 휘돌아 감으며 달려오는 바람소리는 마치 사나운 짐승의 야성이 외치는 소리였다. 그 우람한 바람소리에 따라 산 구석구석의 나무들이 다 같이 합창을 하는 듯한 소리도 유난히 사나웠다. 마치 세상에 태어나 이렇게 대자연 앞에서 혼자 있는 순간이 처음인 듯이 편히 잠들지 못하게 하는 어떤, 스스로를 보호하는 동물의 본성이 눈을 확 뜨는 것을 느꼈다. 이 세상 모든 것을 홀로 마주하는 생명들이 감당해야 할 자기 보호의 감각은 눈동자를 마구 굴려가면서 끝내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게 했다. 어쩌면 세상에 온전히 혼자라고 생각했기에 작은 소리도 더 크게 느꼈는지도 모른다.


낯선 산속에서의 깜깜하고 긴 밤을 그렇게 보내고 다음 날 아침을 혼자 맞이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누가 금방 달려올 수도 없는 이 깊은 산 중에서 혼자서 자신과 자신의 삶을 보살피는 주인이 되어 보는 일은 설레는 일이기도 했고 두려운 일이기도 했다. 최소한의 필요로 만족해 보는 단순한 삶, 그러나 오로지 나 자신의 존재 그 자체에 집중해 보는 삶! 그 출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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