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 서랍장

사물과 사람

by 고요의 향기

시집 와서는

십여 년 우리 가족과 동거동락한 그녀


청춘 같은 몸일 때는

반짝반짝 이쁘기도 했으련만

이제는 맨드리하게 닳은 손발

기우뚱하게 부서진 한 쪽 다리

받침이 부서져 내려앉은 서랍들


제 몸 다 허물어지도록 주고서도

뭘 더 줄까 고민하다

이제는 아프다 소리는 못하는

다 낡은


그러나 눈빛만은 그윽한




가끔 혼자만의 빈 공간에 앉아 있다 보면 그제서야 사물들이 보인다.

아무 말없이 제 역할 다 해주고서도 묵묵히 그냥 있는 사물들을 보노라면

나도 저렇게 살아야 겠구나 하고 생각하기도 하고

다 쓰고 난 뒤에 쓸모가 없어지면 버려야 하는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그 동안 사물들에게 사랑 받고 살았다는 생각에 고마워지기도 한다.

세탁기도, 밥솥도, 서랍장도, 왠만하면 버리지 않고 오래 오래 쓰는 걸 사물을 쓰는 사람의 소명으로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요즘같은 기후위기의 시대에는 더 속속들이 사물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물들도 하나 하나 자연의 귀한 선물이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