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도 행복할 수 있을까

홀로 세상에 서다

by 고요의 향기

산속에서의 홀로 생활을 시작한 후 이튿날 밤은 상당히 이상한 날이었다.

잠도 잘 못 잔 데다가 온몸이 아프기까지 했다. 몸살이려니 했는데 그다음 날도 계속 편치 않았다. 사흘째 되던 날, 도저히 혼자 지내기 힘들어,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혼자서 밥을 해먹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 되었다. 혼자된다는 것은 이렇게 스스로 자신의 고통까지도 책임지는 일이리라. 아는 지인에게 걷네 받은 감기약과 코로나 자가진단키트로 검사해 보니 예상치도 못하게 검사는 희미한 두 줄로 나왔고 나는 그렇게 혼자서 코로나에 걸려버렸다.

아무도, 지금까지 만난 그 누구도, 같이 밥 먹고 잠을 자던 누구도 코로나에 걸린 사람은 없는데 이게 무슨 일인지 당황스러웠다. 그때는 지금처럼 코로나가 당연하지 않은 시절이었기에 더 움츠러졌다. 나는 그렇게 코로나를 산속에서 홀로 맞이하게 되었다.


자, 이제 혼자만의 여행을 그만둘 것인가, 스스로 결정해야 할 때가 왔다. 그리고 나는 좀 더 견뎌보기로 했다. 아프다고 달려가 나를 돌봐달라고 할 가족도 없었다. 엄마란 이름으로 살아온 사람들이 그렇듯이 어디 가서도 나는 누군가를 돌봐줄 사람이었지 나를 돌봐줄 사람은 나 자신 뿐이었다. 물론 우리 가족들이 사이가 안 좋은 것은 아니지만 흙집 공사를 손수 담당하고 있어 모두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차라리 혼자 견디는 것이 더 사정이 나았다. 혼자 견뎌보기로 마음먹었다. 코로나가 낯설고 무서운 그때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어떤 소망이든 다만 원하는 것으로 남아 있을 때에는 간절하지만 그리웠던 그것이 일상의 현실이 되면 눈에 씐 콩깍지가 한 꺼풀 벗겨지고 부풀림이 한결 꺼지면서 그냥 살아가야 할 과제로 놓이게 된다는 것을 느끼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혼자서 삶을 마주한다는 것은 어쩌면 건강하고 젊을 때에는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아프기까지 한 상황이 되면 그때도 쉽게 혼자 살아갈 수 있을까 스스로 물어졌다. 물론 건강하게 살다가 돌아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99세까지 88 하게 살다가 23일 아프다 죽으면 좋겠다고 9988234라는 말이 나이 든 이들의 소원으로 떠돌고 있을 만큼 그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에서 우에노 치즈코는 1인 가구의 행복지수가 2인 이상 가구의 그것보다 훨씬 더 높다는 것을 여러 자료를 통해 검증하고 있다. 무조건 1인 가구가 더 행복하다는 주장이기보다는 1인 가구라고 해서 고독사의 공포를 조장하는 일방적인 사회 이야기에 대한 다른 차원의 주장으로, 꼭 자녀나 누군가와 함께 살아야만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신선한 생각 전환의 제안으로 보인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회 복지 정책의 다각적 실현이 필요할 것이다. 고통과 질병이라는 위기를 사회가 제도적으로 보장해 줄 수 있거나, 혹은 이웃이나 마을공동체, 지역공동체가 위기를 함께 보장해 줄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우리가 추구하고자 하는 행복은 외부적 조건의 충족이나 다른 사람의 유무에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혼자이든 같이이든, 기본적인 삶의 요건이 충분하다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것이 행복이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만으로 온전히 충만한 존재감을 누리지 못하고 살아왔다. 기본적인 생존 조건이 충족되는 상황이라면 혼자여도 행복하고 같이여도 행복한 삶이 그 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굳이 혼자일 필요도 없고 굳이 같이일 필요도 없다. 그러나 상황에 관계없이 충분히 행복한 삶의 필요조건은 바로 그 자신만으로도 온전히 행복할 수 있는 마음이다.


사실 그 자신만으로도 온전히 행복하기를 방해하는 것은 경제적이나 상황적 여건이 아니라 정서적 의존과 심리적 두려움일 수 있다. 그래서 반려동물이 필요하다. 그러나 반려동물과의 깊은 교감은 역시 결별해야 할 때 더 깊은 외로움과 우울증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이유로 다시 한 발 물러서기도 한다. 반려동물 역시 한 생명으로서 온전히 존중받아야 할 존재들이지 우리의 친밀감과 허기를 채우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혼자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고 결국 마지막 죽음 앞에서는 혼자 걸어야 할 존재들이다. 그 자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의 태도 하에서 함께 하는 이들을 마주할 때 함께 살아가는 일은 자유로운 선택이 될 것이다.


며칠의 통증 속에서 일상이 무너지는 듯했지만 그 와중에도 혼자 고통을 겪어내고 나니 이름 모를 당당함이 올라왔다. 뭍생명들이 겪어야 할 아픔과 그냥 받아들이는 수용의 마음도 이런 마음이겠구나, 조금은 이해가 갔다. 혼자이든 함께이든 관계없이 우리네 가슴속에 이미 있는 가장 고고한 영혼의 마음상태는 언제나 우리가 길어 올려야 할 가장 위대한 것이다. 고통 속에서 그 마음은 우리의 고통을 향해 스스로가 스스로를 보듬는 손길이 된다. 그것은 자연과 함께할 때 잘 발견할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인간의 품성이다. 그 마음으로 라면 홀로이든, 함께이든 우리는 있는 그대로 충만할 것이다. 누가 곁에 있든 없든 관계없이 오직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 이대로 온전히, 그렇게 우리의 고통을 스스로 마주할 수 있다면 죽음 앞에서도 더 고요히 침묵하며 그 새로운 차원의 문을 열 수 있다. 그때엔 지나온 삶을 혼자 정리하는, 더 성스러운 침묵의 은밀한 순간이 더 소중해질 것이다. 혼자서도 행복해야 같이 여도 행복할 수 있다고 감히 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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