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세상에 서다
그렇게 혼자 코로나를 앓으며 산속 암자에서 오일차를 넘어가던 날, 설상가상으로 막내딸의 캠프에서 연락이 왔다. 막내와 방을 같이 쓰던 아이가 코로나에 걸려서 막내는 격리상태라고 했고 데리고 갈지 말지를 결정하라는 문자였다. 남편은 공사 진행 중인 데다가 식사도 변변치 않게 해 먹고 있는 상태라 막내를 데리고 갈 수는 없다고 했다. 나는 이 산속에서 혼자 코로나에 걸려 딸을 데리고 오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 그때까지도 아직 몸이 편치 않은 데다가 코로나도 완치되지 않은 상태에서 막내를 데리고 온다면 막내에게 전염도 될 수 있고 식사를 비롯하여 어떻게 해줄지 막막하기만 했지만 데려갈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5일째 되는 날, 막내를 데리러 산을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며칠 제대로 먹지도 못한 비틀비틀한 몸으로 산을 내려가서 한쪽 구석에 세워둔 차를 타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한 상태로 새벽 운전을 1시간 이상 달려서 딸에게로 갔다.
그렇게 만난 막내는 부쩍 컸다는 느낌이 들었다.
막내는 하루 이상을 격리상태로 보냈다고 했다. 활도 쏘고 말도 타고 싶어 캠프에 참여했던 막내는 같은 방 언니의 코로나로 인한 격리로 아무것도 해보지도 못하고 그렇게 하루 이상을 혼자 격리실에서 지냈다고 했다. 어려운 책이 몇 권 있기는 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때 그 방에 혼자 있으면서 가족에 대한 소중함을 가슴 가득 느꼈다고 했다. 차소리만 나면 아빠차가 온 건 아닐까, 우리 집인 동그란 흙집이 계속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는 것이다.
그동안 가족과 함께 했던 그 시간들이 얼마나 행복한 시간들이었는지, 혼자서 있으면서 절절이 느꼈다고 했다. 비록 원하는 활동을 맘껏 하지는 못하고 그 대신 혼자 있을 수밖에 없는 고통 속에 있었지만 그 경험이 준 대가는 사람의 소중함, 가족의 소중함을 진정으로 느낀 성장이었기에, 캠프에 제대로 참여시키지 않고 격리시킨 주최 측에 화가 난 마음을 입다물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어쩌면 너무나 소중한 것을 함께 하고 있으면서도 그 소중함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잃고 나면 그것이 자신에게 너무 소중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그 잃음이라는 불편은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그 소중한 것을 다시 귀하게 만나게 한다.
우리가 가진 것들 중에서 가장 본질적인 것은 바로, 가장 평범한 것이다. 중세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선장이 부르면 언제든 달려갈 수 있도록 배에서 너무 멀리 떠나 있지 말라, 선장이 부르면 이 모든 것을 버리고 뒤돌아보지 않고 달려가야 한다'는 말을 통해서 삶의 본질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말라고 조언을 했다. 그 본질이란 것은 바로 평범한 마음이다. 우리는 가장 평범한 이 마음이라는 배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이것저것을 구하고 찾는다. 그것으로 상심하고 나서야 다시 이미 본래 가진 이 평범한 마음, 궁극의 본질로 돌아와 소중함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인생이란 이 평범한 마음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그 과정에서 겪는 상처와 고통은 우리에게 이미 있었던 이것이 가장 소중한 보물이었음을 알려주는 안내자가 된다.
그렇게 막내와 간 곳은 우리 집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오전이 다 지나가서야 함께 내가 머물던 암자로 돌아왔다. 12살이던 막내는 힘이 없어 비틀거리는 나를 대신해 일주일여 이상을 머물, 자기 키보다 더 큰 배낭을 혼자 지고 올라왔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얼굴엔 그보다 더 행복할 수 없는 듯한 웃음을 머금고 올라왔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이 힘든 산을 등반하는데 아이에게 저렇게 무거운 짐을 지게 하다니 상당히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사정이 어떻다는 말을 할 기력도 없는 나는 등산길을 다시 올라오는 것 자체가 어려워서 길목의 나무들을 붙잡고 계곡물에 발을 담그기도 하면서 슬금슬금 몸을 끌면서 올라왔다.
그렇게 그 깊은 산속 암자에서의 어린 딸과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올라오면서 막내에게 산속 생활을 안내하려고 늠름한 바위와 절벽, 시원한 폭포, 밤이면 계곡을 휘감아 돌아오던 바람소리 등을 들려주었다. 그러나 자연 속에서 야생을 혼자 마주하는 경험은 혼자서 세상을 마주해야만 느낄 수 있는 신비로운 것이었다. 참 이상한 일은, 막내가 암자에 들어서자마자 그 야생성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사람이란 참 묘한 존재다.
어느 순간 막내가 '엄마, 엄마가 밤에 들린다는 그 소리들이 왜 들리지 않는 거지?' 하고 의아해했고 그때서야 나 또한 이제는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온전히 혼자 감각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졌다는 것을 느꼈다. 사람은 서로 의존하면서 어떤 것을 잃기도 하고 또 얻기도 한다는 것을 이때 선명히 느끼게 되었다.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야생의 감각을 더 생생히 느끼는 대신 서로 의지하는 편안함을 얻었다. 딸과 함께 있는 순간은 할 일은 더 늘어났지만 혼자 감당해야 할 마음의 무게감이 훨씬 줄었다. 어쩌면 이래서 사람들은 같이 사는지도 모른다.
산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딸아이에게 무구한 관심과 애정을 보내주었다. 폭포 아래서 같이 다이빙을 하기도 하고 물놀이도 같이 해주었다. 간식이 있으면 꼭 나눠주었다. 폭포에서 노는 관광객들은 으스름한 저녁이 되면 산속이라 서둘러 내려가기 바빴는데 아무 채비도 하지 않고 계속 노는 우리들을 보고 어디서 지내길래 아직 안 내려가는지 물었다. 그때는 마치 우리가 산에 사는 신선이 된 것인 양 기분이 좋았다.
의외로 딸은 아이여서인지, 어쩔 수 없어서인지 불편한 생활을 잘 받아들였다. 하기사 본래 살던 우리 집이 산밑에 있는 흙집이니 불편을 늘 경험하고 살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낮에는 계곡에서 물놀이하고 밤에는 방에 불 떼고 산에서 나오는 물을 받아 씻고 먹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기본적인 생활을 위한 일 외에 아무것도 안 하고 노는 것은 막내에게도 특별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매일 계단을 올라 어느 조선시대 화백이 비경이라고 그렸다던 정자에서 산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시간이 지나는 줄도 모르고 훅 지나갔다. 그렇게 막내와 폭포에서 여름 한 철을 시원하게 보냈다.
산속에서 폭포수 아래에 앉아있을 때는 폭포수가 되고 따끈한 햇살이 달군 바위에 누워있을 때는 바위가 되었다. 나무 아래에 앉아있을 때는 나무가 되고 바람 한 자락 불어올 때는 바람이 되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그렇게 자연으로 존재했던 그 시간들이 참 행복했다. 비록 혼자만의 가출이 오일 천하로 멈추었고 홀로 감당해야 했던 두려움을 더 오래 마주하지는 못했지만 딸과 함께 했던 산속 생활은 그 자체로 나를 본래의 그것, 궁극의 자연으로 돌아가게 해주는 무위의 선물이 되어주었다. 내가 한 존재로서 길어 올릴 수 있는 최선의 마음이 내 안에 흐르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시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