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가 다른 부부가 같이 사는 법

서로 달라도 함께

by 고요의 향기

크리스마스이브 저녁, 해 저무는 붉은 기운이 아름다운 퇴근길 차 안에서, 우리 부부는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알 수 없는 성가를 함께 부르기 시작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차 안에서 울려 퍼지는 노래로 마음이 걸어 들어간 듯 노래밖에 남아있지 않은 그런 밤이었다. 부부가 같이 노래하면서 귀가하는 게 뭐 그렇게 특별한 밤이라고, 라며 물을 사람이 많겠지만 우리 부부에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기독교 집안 분위기에서 교회를 다니던 어른과 형제들이 함께 있는 집에서 나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 시절, 동네 골목 말고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받아주는 곳이 교회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중학교까지 교회를 다녔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그런데 대학에 들어오면서 내 생각은 교회에서 말하는 길 잃은 어린양처럼 교회 밖을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교회에만 길이 있다는 기독교의 고집을 먼저 만난 것은 그만큼 나의 고집 또한 만만치 않았던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결국 교회 밖에서 신부님도 만나고 스님도 만나고 다른 종교인들도 만나게 되었다. 그러다가 신뢰할 만한 길을 만났고 나는 지금 불자로 살아가고 있다. 내가 만난 부처님은 내 길만이 옳으니 이 길을 따라라 하지 않고 네가 생각해 보고 좋다고 생각하는, 자신을 등불 삼아 스스로의 길을 가라고 했다. 어떤 길도 그 길이 아니라고 내치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그렇게 불자가 된 나에게 가장 오랜 친구가 될, 기독교인 남편은 어떻게 만나게 되었을까,는 교회에 다니는 지인들이 늘 묻는 물음이다. 같은 정치적 성향을 가지고 있으면서 소모임에서 만난 남편은 이미 교회에 다니는 여인들을 만나서 결혼 상대를 찾아본 상황이었는데 '자기 삶을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설계해 가는 모습이 남다르게 여겨져서 나를 선택했다'라고 말해주었다. 알고 보면 그도 그렇게 삶의 중심에 있는 종교를 넘어설 정도로 스스로 개척해가는 삶에 대한 동경과 지지하는 마음이 컸을 것이다. 기독교인과는 결혼을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내 말에 '평생 종교로 강요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말해주어서 지극히 자유로운 정신과 행동의 소유자였던 나에게 흥미가 생기고 동요가 일어났었다. 특히 아버지, 가부장적이던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자유를 보장해 주는 남편과 사는 것이 이득이라는 계산도 있었다.


그때는 정식으로 불자는 아니었고 공부를 시작하고 있었던 때였다. 그러나 정작 우리 부부를 방해한 것은 종교가 아니라 미성숙한 성품이었다. 결혼 초기, 서로 다른 삶을 살아왔던 데다가 미성숙하던 우리는 수없이 싸웠다. 결국 상담사에게 온라인상담까지 하게 되었는데 그때 해준 명답이 아직도 내 안에서 웃고 있다. "종교가 달라 싸우는 것이 맞나요? 예수님은 사랑을, 부처님은 자비를 말씀하시는데 당신들이 정말 그들을 믿고 신뢰하며 살아간다면 사랑과 자비가 함께 할 텐데 어떻게 싸우게 되지요? " 이런 식의 응답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 아하, 겉모양이 다르다고 싸울 필요는 없지, 싸움은 그 안의 본질이 미흡하다는 뜻일 거야 하고 알았다.


그렇게 자유를 존중받았다고 생각했지만 남편이 아니라 남편의 교회 사람들에게까지 존중받기는 쉽지 않았다.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까지 '남편 눈에 피눈물 나기를 바라지 않으면 얼른 교회에 가라'는 식의 주관적 피드백을 내놓았는데 어느 정도 신뢰로운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할 때면 혹하는 마음이 생겨서 내가 정말 잘못하고 있나 하는 두려운 마음이 일어나기도 했다. 어떤 날은 서로 화가 나서 '부처님이 그렇게 살라고 하더냐'라고 공격을 하고 '하나님 앞에 갔다 와도 변한 게 없더냐'라고 막말을 해대며 싸웠던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선택을 존중하며 포기하지 않고 꿋꿋이 살아온 자신과 동반자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런 시절을 다 지났기에 함께 살게 된 지 25년이 된 우리 부부의 퇴근길 성가의 추억은 그렇게 아름다운 노래로 내 안에 흐르고 있다. 부처님 말씀이 가슴으로 익어가는 세월을 보내고 있는 나와 하나님의 사랑을 삶으로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남편이 함께 한 가족 공동체에서 이렇게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는 것은 기적과도 같이 아름다운 일이다. 지금 우리는 서로의 겉모습이나 드러난 말에서 그 속뜻을 들을 귀가 열려 있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길을 존중하되 그 길이 하나로 통하는 길이라는 걸 서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서로를 존중하는 문화에서 자란 우리 아이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스스로 자신의 종교를 선택할 권리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 것인지 선택할 기회가 주어지게 되었다. 어쩌면 우리 집이 세계의 모든 종교가 함께 살아가는 곳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안에 평화가 흐를 것을 알고 있다. 타인을 비난하는 것은 그가 자신의 그림자에 자신을 잃었기 때문이다. 혹자가 누군가를 비방하는 모습으로 살아간다면 그것은 그가 자신을 잃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겉모습이나 이름으로 살아가게 되든지 간에 자신을 잃은 이에게 삶은 고통과 갈등일 것이요, 동시에 자신 속에서 살아가는 이에게는 하나로 통하는 평화와 사랑의 길일 것이다. 그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든 그 본질이 아름답고 평화롭다면 그를 내 모습과 같은 모습으로 바꾸려고 하는 일은 부질없는 일이다.


세상에 홀로 서는 일은 스스로와 주변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이요, 그 안에 흐르는 마음이 사랑과 평화일 수 있도록 거듭 자신을 일깨우는 과정이다. 그 과정 속에서 그 누군가와 함께 하든,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는 마음만으로도 이미 스스로는 충족될 것이다. 그 마음은 그 누군가에게 달려있지 않고 나에게 달려있음을 다시 확인하면서 '자기 삶을 스스로 개척해 가는 힘'을 나에게서 본 남편의 사람 보는 눈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나이기도 했을 것이지만 스스로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목소리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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