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비밀
한 주 사이에 있는 공짜 휴일이었던 지난 크리스마스에 두 아이와 시내 한가운데, 시민들이 자주 들르는 남산 둘레길을 걸었다. 좀 추웠지만 대화와 함께 두런두런, 슬렁슬렁 걷는 길이 편안하고 좋았다.
대화의 주제는 '요즘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 요즘 누리는 재미'였다. 두 아이는 두세 번까지 돌아갈 때까지는 이런저런 이야기가 술술 나오더니 그 후론 말이 끊어졌다. 그러나 내 속에서는 이런 상황에서 소소한 행복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곤 한다.
누군가 해준 한 마디가 내내 가슴을 따뜻하게 느끼게 한다는 것, 이렇게 이야기 나누며 걷는 것 자체가 행복이라는 것, 상쾌한 공기의 고마움, 공짜휴일을 누리는 재미, 글 쓰는 것, 책 읽는 것 등에서부터 마지막까지 가면 그냥 이렇게 존재하는 것 자체가 행복이라는 데까지 가기 마련이다. 그런 자리에서 내 행복의 거리들은 남보다 크다고는 할 수 없는 소소한 행복거리이지만 줄줄이 사탕처럼 끝도 없이 나오는 것을 느끼며 지난 세월이 반추되었다.
처음엔 이렇게 행복의 기준선이 낮지 않았다. 남들도 다 하는 것으로는 행복하지 않았고 남보다 부족한 것으로는 만족이 되지 않아 불평불만이 마음을 떠날 때가 없었다. 그런 내가 행복의 기준선이 행복을 좌우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심리명상 수련 프로그램 (동사섭 행복마을)에 참여했을 때부터였다. 자기 속에 이 정도면 행복하다는 기준선이 있고, 그 기준선에 의해 행복이 좌우된다는 것을, 그 기준선이 높으면 행복할 일이 기준선 정도로 높아야 하니 많을 수 없고, 낮으면 사소한 일로도 충분히 행복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행복의 기준선이 제로인 사람은 성자들로 그들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는 것 자체의 평상심으로 늘 행복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라는 말은 <행복의 기원>에서 기원한 말로 많은 심리학자들에게서 연구된 결과다. 큰 행복을 추구하기보다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더 자주 느낄수록 더 행복해진다는 것도 충분히 연구결과로 나와 있다는 것을 이후에 알게 되었다.
아주 거창하게 많은 것을 이룬 사람과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고 여겨지는 사람을 제외하면, 우리는 대부분 비등비등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까 자기가 원하는 것을 다 이룬 사람은 없고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사람도 없는 그 사이를 살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 사이에서 결국 행복을 결정짓는 것은 어떤 마음 자세로 살아가느냐이다. 행복한 사람들은 자신이 이미 이룬 것을 충만하게 누리면서 더 행복한 쪽으로나아가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없는 것만 바라보고 생각하면서 불행을 살기 마련이다. (동사섭 프로그램의 op100의 원리 중)
모든 것을 다 가진 알렉산더 왕이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다만 자신이 잘 수 있는 통 하나만 가지고 다니던 디오게네스에게 가서 '누가 정말 더 행복한지'를 겨루는 장면은 이미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일화다. 알렉산더 왕이 디오게네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주겠다'는 것 자체가 디오게네스를 떠보려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고 스스로 자신의 행복에 떳떳하지 못했으며 물질적인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이 물질적인 우월감은 열등감이란 친구도 같이 갖게 됨과 동시에 끝없는 갈망의 쳇바퀴에 올라타게 한다. 그것은 만족을 모르는 끊임없는 결핍을 생산하며 끝내 타오르는 갈망과 공허함만 남는다. 디오게네스는 아무것 가지지 않은 상태로 이미 충분한 만족감을 누리고 살고 있었기에 '그 햇볕이나 가리지 말고 좀 비켜 주시오' 했다는 것은 그 타오르는 갈망에서 자유로운 이의 대답으로 통쾌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우리 시대에, 자본이 없으면 하루하루 살아가기 힘든 시대에 그런 일이 가능할까 혹자는 묻겠지만 자신이 어떤 상태이든지 관계없이, 지금 상황에 만족할 수 있는 마음이면 된다. 이왕이면 지금 가지고 있는 그 무엇에 만족하기보다는 이미 본래 그렇게 태어난 자체로 만족하다면 더 온전하다.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한다고 하면 '더 가지면 더 행복할 것 아니냐'라고 생각하는 마음이 깔려있을 수 있기 때문에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더 갖고 싶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혹자는 결핍과 열등감이 그를 성장시키는 기제가 된다는 말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결핍과 열등감이 준 성장이 아니라 그 결핍과 열등감으로 인한 상처를 극복함으로써 얻은 결과라 할 수 있다. 어릴 적에 몸이 약한 사람이 건강에 대해 노력하다가 본래 건강한 사람보다 더 건강하게 사는 사례나, 어릴 적에 맞고 살던 사람이 그 약점을 보완하다가 누구보다 당당해진 사람이 된 예가 바로 그러한 예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결핍과 열등감이 그 노력으로 인해서 사라지게 된 것이 관건이지 본래 그런 결핍과 열등감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그가 본래 실현하려고 했던 쪽으로 충분히 행복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것은 그가 결핍과 열등감이 동력이 되어 극복하게 된 사례이기는 하나 결국은 그가 결핍과 열등감을 채웠기에 가능한 행복이 아니었던가. 내가 말하는 포인트는 행동 차원이 아니라 기본 마음 자세를 말하는 것이다. 보다 건강하고 행복해지는 쪽으로 살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결핍과 열등감을 어떤 식으로든 벗어나야 행복하고 어떻게 벗어나느냐가 관건이라는 것이다.
가장 지고한 행복은 언제 어디서든 누릴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것을 누리는 것이다. 남들도 다 가진 걸 뭘 어떻게 그렇게 행복해하느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것을 행복하게 느끼는 정도는 충분히 다르다. 디오게네스가 말한 햇볕은 누구나에게 아주 공평하게 주어져 있지만 그것을 소중하게 행복하게 누리는 마음만은 공평하게 주어져 있지 않다. 그것을 누릴 줄 아는 존재에게, 그 누리는 만큼의 행복이 주어질 수밖에 없다. 행복도 그것을 누리는 자에게 주어지는 습관이다.
가장 보편적이고 근원적인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은 세월이 지날수록 더 깊어질 수는 있지만 사라질 수는 없는 행복이다. 햇볕뿐만 아니라 하늘, 공기, 물, 바람, 불, 온도, 흙 그리고 존재로서 늘 가지고 있는 이 마음, 이 몸 등 가장 보편적이고 근원적인 것일수록 가장 신비롭고 신성한 것임을 다시 한번 느낀다. 물론 이 모든 것 역시 우리 존재가 세상을 떠나 본래 자리로 돌아갈 때 벗고 갈 옷들이다. 그때는 여지없이 홀가분하게 훌훌 벗고 떠날 수 있으면 좋겠다. 충분히 맛있게 누리다 보면 그 충만함으로 더 가볍게 떠날 수 있을 것이다. 더 누리겠다는, 제대로 못 누려봤다는 마음이 없이, 낙엽이 떨어지듯이, 왔으면 가는 게 순리인 듯이.
ps. 위 배경 사진은 사진작가 유소림 선생님의 허락을 얻고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