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할수록 행복하다

행복의 비밀

by 고요의 향기

이미 있는 본래의 것으로 행복하라는 말을 지난번 글에서 했다.

누구나 이미 가지고 있는, 언제 어디서나 마주할 수 있는 보편적인 것으로 행복할 수 있다면 그 행복은 누리는 자의 것이고 누리는 만큼 행복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더 말하고 싶은 행복의 비밀은 행복은 경험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 경험을 재차 곱씹는데서 행복이 커진다는 것이다. 곱씹다는 것은 다시 떠올리고 말하고 쓰는 것이다. 심지어 내가 이미 참여한 그 프로그램에서는 그것을 떠올리면 미소 지어지는 그 행복거리를 열 가지 정도 마음속에 늘 마련하고 살아가라고 한다.

이 곱씹는 일에 대해서는 나중에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의 이야기로 충분히 동의가 되었다.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경험하는 자기(experiencing self)와 기억하는 자기(remembering self)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우리에게는 현재 순간을 경험하는 자기와 나중에 그 경험을 기억하고 회상하면서 새롭게 재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자기가 있다. 이렇게 두 가지 자기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에도 두 가지가 있다고 주장한다. 하나는 경험하는 자기를 위한 행복이고, 다른 하나는 기억하는 자기를 위한 행복이다. 경험하는 자기를 위한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은 지금 현재의 만족과 기분을 추구한다는 것이고, 기억하는 자기를 위한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은 삶 전체의 의미와 가치를 추구한다는 뜻이다. ('굿 라이프' 중)


뇌과학자들은 인간이 지구에서 가장 힘을 가진 이유가 이야기에 그 근원이 있다고 한다. 이야기한다는 것은 어떤 경험을 의미화하고 공유한다는 것이다. 대니얼이 말하는 기억하는 자아와 관련된 의미 추구를 말한다. 종교도 결국 그런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결국 행복을 이야기할수록 행복하다는 것이다. 이야기한다는 것은 결국 스스로 떠올리면서 다시 행복을 경험하고 떠올린 그것을 쓰고 말하면서 거듭 이차적인 행복을 배가시킨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행복에너지가 뇌 속에, 인간의 마음속에 장착이 된다.


말하고 쓰는 두 가지 이야기 방법 중에 쓰기를 권하는 이유는 말은 그 순간이 지나면 변화하고 사라지지만 글은 계속 남아서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고 계속 이야기를 걸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안 좋은 점도 마찬가지다. 안 좋은 에너지가 계속 남아서 영향을 주고 있으니 쓰는 사람이 신중하게 써야 하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행복에 대해서 써라. 보다 보편적인 행복에 대해서 써라. 그것이 행복의 비밀 2번째 이야기다. 그 이야기 누가 읽을까 하고 되물을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요즘 시대에, 자극적인 글들이 사람을 유혹하고 끌어당기는 시대에 이런 맹물 같은 글이 과연 읽힐까 하는 물음은 어쩌면 당연한 질문이겠다. 그러나 결국 모든 존재는 자신의 근원이 되는 쪽으로 정신이 맑아지는 쪽으로 향하게 되어 있다.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말할 수 없는 행복감에 젖는다. 그냥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이렇게 태평한 평화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누리는 이가 얼마나 될까라는 것까지 생각하면 참 귀한 경험이다. 아무것 없어도 좋고 아무것 하지 않아도 좋다. 그냥 이대로 참 좋다. 물론 어디 아프지 않으니까 그렇겠지, 가진 것이 충분하니까 그렇겠지, 주변에 슬픈 일이 없어서 그렇겠지, 하고 묻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이미 앞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사람 욕심이 어디 그렇던가. 아프지 않아도, 슬픈 일이 없어도, 먹을 것이 있어도 걱정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던가, 걱정할 거리는 마치 마음속에 비워둔 공간처럼 자동으로 채워진다. 내가 그 누군가와 엄청난 차이가 날 만큼의 건강이, 돈이, 무탈함이 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다르게 생각한다면 충분히 행복하지 않은 쪽의 삶을 살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나는 이 존재 자체로 충분해서 더 구할 것도 없고 더 바라는 것도 없다. 햇볕 바라기하는 디오게네스만큼은 아니겠지만 그냥 이대로 이 순간 이 자체로 존재함을 누리는 것만큼은 누구에 뒤지지 않을 수 있다고 자신한다.


존재함의 행복, 이 순수하고 단순한 행복감을 누리고 산다는 것은 참으로 지극한 행복이다. 언제 어디서나 조건에 관계없는 행복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충만하고 누군가에게 행복을 구걸하거나 얻으려고 다투지 않을 수 있는 길이다. 의존하지 않기에 휘둘리지도 않을 수 있고 스스로 채울 수 있기에 당당하고 넉넉한 품도 가능하다. 사람으로 태어나 누릴 수 있는 가장 지극한 행복이고 자연스러운 행복이라고 감히 말한다.


혹자는 아픔과 상처가 없다면 좋은 글을 쓰기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픔과 상처가 글을 쓰기에 좋은 주제가 될 수 있고 그 상처를 아문 흔적이 누군가에게 격려와 위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혼란스러운 세상에 아프지 않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전쟁이 끊이지 않고 분열과 분노가 끊이지 않는 세상에서 과연 행복을 말한다는 것이 도리어 자연스럽지 않은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시대일수록 행복을 이야기하자. 인간의 탐욕으로 일어난 무수한 일에 대해서는 만족과 충만이 그 어떤 치료제보다 나은 치료제가 될 것이다.


ps. 위 사진은 사진작가 유소림 선생님의 사진입니다. 허락을 얻고 함께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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