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과 비난에도 흔들림없는

본마음에 기대기

by 고요의 향기

아무리 낯선 사람에게서라도 예상치 못한 부정 피드백을 받으면 난감하고 당황스럽기 마련이다. 잘 아는 사람에게 받는다면 그 부정감은 더 커질 수 있다.

모든 행복과 불행은 상황 자체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대하는 태도에서 기인한다.

또한 그 태도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잘 아는 사람은 아니지만 ' 엉터리 공부꾼'이라는 말을 전해 들었다. 그때 문득 내 마음을 들여다보니 그러지, 하는 궁금함보다는 '어떻게 한 두 시간 만난, 잘 모르는 사람에게 엉터리라는 말을 할 수가 있지?' 하는 의아함이 올라왔다. 사실은 그 의아함은 내 마음을 살피는 것이 아니라 바깥의 상대에게로 향한 불편한 공격이다. 이 공격은 정작 자신의 마음을 외면하는 방어기제다.


그다음으로 올라온 마음은 '그 사람에게 내가 어떤 점수를 받든 지 무슨 상관이지'하는 마음이었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점수를 받는데 에너지를 쓸 필요는 없으니까. 들은귀를 그 순간 씻어내면 그만이라고 툭 잊어버리기도 한다. 이것은 적어도 불편함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듯 하지만 궁극에는 자신의 마음로부터 거리를 두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저 사람이 '엉터리'라고 하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어쩌면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상에 적합한 모습을 보이고자 했을 수 있다. 정말 엉터리로 안 비치려면 적어도 속이 상한 마음을 들키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가장 합리적인 대책을 간구하는 척하는 마음이었을 수도 있다.

진짜 엉터리는 울그락 불그락 거리는 감정의 출렁임이 아니라 그 감정의 출렁임을 외면하거나 회피하는 마음, 혹은 좋은 이미지를 내비치고자 하는 미숙한 포장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일어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껴주면 아무 일 없듯이 그렇게 스쳐 지나갈 것에 이런 방어기제와 자아상의 성을 쌓는 것은 미숙한 어른의 방어법이다.


성자는 욕을 들어도 받지 않으면 자신의 것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화살을 쏘아도 꽃으로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도 기억이 난다.


누군가의 부정피드백에 관심이 얼마나 가는지, 그 부정 피드백을 성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 그 부정 피드백을 자신의 아상을 알아차리는, 그리하여 그 아상을 내려놓는 계기로 만드는 것이 성숙한 사람의 자세일 것이다.


더불어 그 사람이 '엉터리'라고, 아니 그보다 더 심각한 말을 했다고 해서 그것이 내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자신의 본질은 그대로 온전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에 걸리는 마음이 있었다면 그것은 '나는 이런 사람인데~'하는 자신에 대한 아상이거나 이미지에 걸리는 수치심일 수 있다. 만약 수치심에서 걸리고 있다면, 그것은 이미 묻혀있던 마음을 직면하고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깨닫고 나면 모든 존재가 부처로 보인다는 부처님의 말씀도 그렇지만 이미 모든 존재가 이대로 온전한 본질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아는 한, 누군가의 부정적인 말이 우리의 본질을 규정할 수는 없는 법이다. 아니, 어떤 규정이나 말에도 한계지을 수 없는 흔들리지 않는 본마음이 늘 그렇게 항존함을 알게 된다.


다만 우리 모두가 성장과정에 있으니 상대의 부정피드백에 대해 스스로 돌아보고 성찰하며 소통할 필요가 있다면 소통하는 일이 있을 뿐이리라. 부정피드백은 적어도 그를 불편하게 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적어도 말 자체가 아니라 속뜻을 보는 것이 관계에서 가장 필요한 일일 것이다.


어떤 부정적인 피드백은 영혼에 치유제가 될 수 있고 성장에 좋은 거름이 될 수 있다. 치유제나 거름이 되느냐, 저항과 트라우마가 되느냐는 그 무엇에도 달려있지 않고 다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스스로의 태도에 달려있다.


칭찬과 비난에 흔들리지 않고 다만 칭찬하고 비난하는 이의 마음을 본다면, 그를 보듬으며 자기를 좀 더 온전히 다듬는 길이 될 것이다. 더불어 칭찬과 비난에 흔들리는 자신의 마음 속 그 흔들림을 그대로 마주하여 느껴주면 무상하게 사라질 것이다. 아무 것 없는 그 마음의 빈 터에서 본래 흔들리지 않는 자신의 마음을, 이미 온전한 스스로의 본질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엉터리라고 부른다면, 엉터리가 되어도 좋고 아니어도 좋다. 어떤 이름으로 불린다 하더라도 그 본질은 이미 온전할 테니까. 아무 이름 없는 기쁨, 아무 이름 없는 평화가 우리의 본질일 테니까. 어떤 화살이 날아오더라도 꽃향기로 변화시킬 수 있는 내면의 힘은 그 본질을 얼마나 알아차리며 살아가고 있는지에 따라 나오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어깨 통증에서 배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