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스스로 알아주고 보듬어주기

누구에게 바랄 것 없이

by 고요의 향기

어제 친정 쪽 형제자매들과 부모님의 모임이 있었다. 다섯 명 중 넷째, 그것도 여자아이였던 나는 어린 시절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사진으로 기억을 찾을 수밖에 없다. 언젠가 어린 시절의 기억을 찾아 사진을 보다가 보니 몇 장의 사진이 내 어린 시절의 퍼즐 조각을 맞춰 주었다. 그 사진을 함께 들여다보던 사람들이 있었다.


" 여기 가장 어린아이가 선생님이네요? 그런데 다 큰 남자아이는 이렇게 꼭 껴안고 사랑해 주면서 왜 가장 어린 선생님 손을 잡아준 어른은 아무도 없지요? "


정말 그랬다. 그것이 그때의 우리 시대문화였고 우리 집이었다. 아마도 그래서 내 어린 시절은 기억조차 아득히 멀어진 어둠 속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 엄마, 왜 다른 형제들 돌사진은 다 있는데 내 돌사진은 없어? 아. 둘째 언니 돌사진도 없긴 하네. 그래, 우리는 그때 돌이 되더라도 굳이 기념할 일이 아니어서 돌사진도 없는 거지?"


엄마, 아버지는 아무 기억도 나지 않는다는 듯 멋쩍게 웃으셨다.


"그냥 살기만도 바빠서 그런 생각조차 못하고 살았다...... 아무리 잘한다고 해줘도 나중에는 다른 소리를 듣는구나."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그냥 살지 않았으면 살아내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세상이었을 것이다. 배 고픔을 면하기만도 버거운 세상이기도 했을 것이고 눈을 뜨기만 하면 할 일이 태산처럼 있었던 날이었을 것이다.


집에 돌아오고 난 뒤에 다시 생각해 보니 그때 그런 시대 문화 속에서도 그런 나를 대학까지 공부시켜 주고 건강하게 키워주셨으니 그것만 해도 대단한 일 아닌가. 다른 친구들은 공장으로 간 친구들도 있었고 대학을 가는 친구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은 시대였다. 그래서 친구들은 우리 집을, 특히 우리 부모님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이쯤이면 별 쓸데없는 걸 가지고 트집 잡고 그러냐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시대문화를 탓할 일도 없고 그 시대를 최선을 다해 살아내느라 애쓴 부모를 탓할 일도 없다는 것도 잘 안다. 감사하려면 감사의 이유도 끝이 없이 줄줄 이어질 것이고 비난하려고 하면 비난거리도 끝이 없을 것임을 잘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섭섭한 마음 그 또한 외면할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그 섭섭함을 달래고 위로받으랴. 다른 누군가에게뿐만 아니라 당사자인 부모님들께 위로나 격려를 받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네들 역시 할 말이 많아 위로받고 격려받아야 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누가 누구에게 위로와 격려를 해줄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 받으려면 쉽지 않은 그 일을 내가 스스로에게 혹은 그 누군가에게 해주려면 그래도 가능한 일이 된다.


우리 집 사진을 보면서 우리 아이들이 아무 말이 없을 수 있을까? '엄마, 그때 왜 그랬어요' 하는 것이 정말 아무것 없을 수 있을까.


우리 아이들이 다 자라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면 나는 뭐라고 답해줘야 할까.


사실 얼마 전에 막내딸이 나에게 다가와 이런 말을 하곤 했다.


" 엄마, 어릴 때 왜 청결 의식을 제대로 심어주지 않으셨어요? 그리고 옷차림을 좀 더 멋스럽게 입혀주지 않으셨어요? 난 어릴 적 사진을 보면 그게 좀 아쉬워요."


"그랬구나. 우리 막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걸 엄마가 놓쳐서 미안하네. 엄마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깨끗하게 살면서 도리어 질병 면역력이 낮아지는 것이 안타까워서 좀 덜 씻고도 잘 지낼 수 있다고 생각했지. 그리고 지나치게 옷차림에 신경 쓰면서 옷을 함부로 하는 걸 보고 환경에 도움 되는 생활을 하려고 다른 언니들 옷을 받아 너희들한테 입혔단다. 새 옷에 묻은 화학물질의 피해도 몸에 좋지 않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했는데. 우리 막내가 생각하는 조화롭고 멋진 옷을 엄마가 생각하지 못했구나. 미안하다. 그때는 엄마 몫이었으니까 그렇게 했고 이제는 우리 막내가 입고 싶은 조화로운 옷을 잘 챙겨 입기를 바라."


이렇게 자세히 말해주었으면 좋았으련만 나 역시 얼버무리며 그때 사정이 어땠음을 핑계라도 대는 듯 말하고 넘어갔었다. 아무리 열심히 살면서 최선을 다하더라도 돌아오는 것은 아쉬움과 안타까움일 수 있음을 고개 끄덕이며 인정한다.

우리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때 그 시절에 어떤 아쉬움이 있더라도 우리가 모두 최선을 다해 살아왔음을 알아주고 격려해 주는 일, 그리고 혹여 그 가운데 누군가의 섭섭함과 아쉬움이 있다면 그대로 받아주고 공감해 주는 일 말고는 할 일이 없을 것 같다. 그것이 자기 자신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다른 형제들은 돌 사진이 다 있는데 위 언니와 너만 돌 사진이 없어서 섭섭했지? 어린 시절 사진이라고 있는데 그 사진에서 오빠는 꼭 껴안고, 어린 너의 손을 잡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서 서운했지? 토닥토닥. 이쁜 우리 딸, 그 마음 충분히 이해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건강하고 씩씩하게 살아온 네가 멋져. 그때는 그때로 보내주고 이제는 네 삶을 더 아름답고 행복하게 일궈가길 바라."

내가 쏜 화살은 다시 내게 돌아온다. 내가 쏜 사랑도 다시 내게 돌아온다. 그것은 모두 내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