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몸에 깃든 하나의 영혼, 우정

하늘이 준 선물

by 고요의 향기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가을비라고 하기에는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며칠 내내 내리는 비는 빗소리와 비 바라보기를 좋아하는 그도 조금은 지치게 만들었다. 창밖으로 비치는 저 나뭇잎들이 단풍으로 물들기 전에 다 떨어져 내리는 것은 아닐까, 걱정도 되었다.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복도를 걸어 복도 끝에 있는 영어실 문을 슬그머니 열고 빼꼼히 말을 걸었다.

"Joe, Can you play yoga today?"

대각선 반대편 구석에 앉아 있던 죠가 웃으며 반긴다.

" Of course! “


죠와 그는 일반 교실 두 배쯤 되는 영어실에서 바닥에 요가 매트를 깔아놓고 요가를 한 지 5~6달쯤 되었다. 미국에 가족이 살고 있지만 죠는 한국의 초등학교에서 근무한 지 몇 년쯤 된 영어 강사다. 나이는 20대 후반쯤 되어 보이지만 키는 교실 천정에 닿을 정도로 크다. 한국에서 그는 죠처럼 젊은 청년이 요가와 명상에 관심이 있는 경우를 많이 보지 못했다. 그는 요가를 비롯하여 명상을 아주 좋아하기에 기회만 되면 누구든 함께 하고 싶어 했다. 그가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 외국인, 그것도 젊은 청년과 단둘이어도 말이다.


지난 4월 중순 즈음에 업무 창에 영어강사 담당 선생님의 메시지가 올라왔다.

"죠와 요가를 하고 싶으신 선생님께서는 이번 화요일 3시 30분에 영어실로 와주세요. “


처음엔 몇 명은 있을 줄 알았다. 요가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꽤 있었지만 일단 학교가 너무 바쁘기도 했고 더 중요한 이유는 낯선 청년인 죠와 어색한 동작을 나누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그렇게 죠와의 요가는 매주 화, 목요일 30여 분 정도로 시작되었다. 죠는 그가 말하지 않아도 그의 신체 동작을 아주 정확하게 파악하고 바꿔야 하는 이유와 해야 할 동작을 섬세하게 알려주었다. 어떨 때는 죠의 섬세한 터치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할 때도 있었다. 깊은 관심이 아니고서는 알 수 없을 부자유스러운 동작을 말해주었고 그때 필요한 동작을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Excellent, good, no problem, that's okay, good job, great. " 등의 말을 쓰면서 그를 격려해 주곤 했다.


죠처럼 아이들을 가르친다면 어떨까. 마치 그는 죠의 가르침을 받는 아이가 된 듯 감동에 젖곤 했다. 물론 그의 말을 전해 들은, 죠와 실제로 함께 수업하는 선생님은 고개를 흔들기도 했다.

" 선생님, 죠하고 하는 수업 시간에 아이들 난리법석이에요. 차분하게 눌러주는 것도 필요하죠." 하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그에게 죠의 언행은 단지 말뿐인 느낌과는 달랐다.


죠는 그에게 웃음도 많이 주었다. 20대 후반이라고 하기에는 부드러웠고 친절했고 유머가 넘쳤다. 죠는 양말을 늘 짝짝이로 신고 다니곤 했다. 빨간 색조와 초록 톤으로. 그런 세트를 어디서 사느냐고 물으니 빨간 세트와 초록 세트를 따로 사서 섞어 신는다고 했다. 왜 그렇게 신고 다니냐는 눈짓에 죠는 웃으며 말했다.

"I just like it... and children like it"


요가 동작을 하는 중에도 죠는 진지함과 유머를 함께 써서 우스꽝스러운 표정과 차분한 안내를 번갈아 쓰곤 했다. 푸, 퍽, 헉, 윽... 그 모습을 보면 저절로 웃음이 나곤 했다. 어린아이들끼리 장난을 치는 모습 같은 순수한 느낌 말이다.


그의 나이가 50을 넘어선지라 청년들과 친구처럼 친해진 경우가 많지는 않았지만, 그중에서 몇몇 친해진 청년들은 해맑은 장난을 치면서 친해지곤 했다. 장난을 많이 걸고 아무 일도 아닌 이유로 같이 깔깔깔 웃곤 했다. 가끔 동료로 만난 젊은 선생님도 장난이 심해서 그를 당황스럽게 만들곤 했지만, 그는 그 모습이 좋았다. 장난칠 친구로 대해준다는 것 자체가 어떨 땐 고맙기도 했다.


그런데 죠는 유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성숙하고 부드러운 면까지 갖추었다. 요가를 마치고 마지막 사바사나, 시체 자세에서 죽은 듯이 있다 보면 죠와 그는 명상에 젖어 고요히 누워 있곤 했다. 죠의 안내를 듣다 보면 호흡도 깊어지고 가슴은 희열로 가득 차고 어느새 두 손에 열기가 올라와 있었다.


'아무 조건 없는 기쁨이란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느낌이 내면에서 올라와 온 가슴을 행복으로 가득 채우는 듯했다.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상관없이 이 마음만으로도 행복할 것처럼 그렇게 요가를 마치곤 했다.


'어떻게 이런 청년을 만나게 되었을까?'

그는 특별한 인연에 감동과 감사를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오늘은 긴 연휴 끝에 만나 지라 연휴에 무엇을 했는지 서로 나누고 요가를 시작했다. 죠는 신라의 도시, 경주가 너무 좋다고 했고 기름기 많은 중국 음식보다 담백한 우리나라 음식을 좋아했다.


사실 죠와 그가 같이 요가를 하게 된 것은 몇 년 전의 회식 자리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고깃집 회식 자리에서 죠와 마주 앉은 그는 고기를 먹지 않고 조용히 김치와 야채만 먹는 죠를 보았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죠는 채식주의자였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칼국수였고 급식도 채식 외에는 하지 않기 때문에 고기는 아예 입에 대지 않는다. 왜 고기를 먹지 않느냐고 어느 날은 물었다. 죠는 고기는 채소의 20배 에너지를 낭비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그는 그때 조금 놀랐다. 젊은 청년이 환경과 기후에 대한, 음식에 대한 의식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기에 채식 자체에도 놀랐지만, 그의 이유를 듣고 더 놀랐다. 죠에 대한 긍정감은 그때부터 갖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요가를 하면서 그에게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인지, 못 먹는 것인지에 관해 물은 적이 있다. 죠는 아주 어릴 때 고기를 먹고 온몸이 아프고 가슴이 막혀 죽을 고생 했다고 한다. 고기를 먹지 않으니 그런 일이 사라졌다고. 스님들이 그러시지만 죠는 몸도 깨끗할 것 같아서 그는 죠가 묘하게 존경스럽기도 했다.


영어와 너무 오래 담을 쌓고 살아서 전혀 하지 못하는 그에게 죠는 온몸으로 몸의 언어와 영어를 함께 섞어가며 안내해 준다. 그러다 가끔은 이렇게 묻곤 한다.

"desk 책상, table?"

"아. 식탁!"

" 시익 딱?"

"식탁"

그는 생각한다. '내 영어 실력이 이렇게 짧으니까 죠의 영어도 짧게 나오게 되는구나'하고. 그래도 는 한국어를 가르쳐주고 죠는 영어를 조금이나마 가르쳐주려고 조심스럽게 애쓰고 있다. 고맙게도.


사실 그는 아주 어릴 적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말 없는 소녀라고 여겨질 정도로 내성적인 아이였다. 한 달 전 몇십 년 만에 만난 그의 고등학교 유일한 단짝 친구가 '그에 대해 한마디로 말해 본다면 뭐라고 하겠냐?'라는 질문에 "4차원"이라고 답할 정도로 평범한 아이들과 좀 달랐다는 느낌이 있다고 했다.


그렇게 내성적인 아이였던 그가 지금은 그 누구를 만나도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어른이 되었으니 얼마나 장한지, 그것도 언어가 통하지 않는 외국인 청년과 매주 두 번씩 만나면서 요가도 하고 대화도 나누고 있다니 얼마나 대단한 성장인가 하고 흐뭇한 기쁨이 하얀 봄꽃처럼 가슴에 피어올랐다. 인생은 공평하다더니 말 없는 어린아이에게 이런 시절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오늘도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매트에 누워 고요히 있으니, 이보다 더한 행복은 없을 것 같다. 내년이면, 이 행복은 사라지겠지만 죠와의 소중한 인연이 거름이 되어서 또 다른 누군가와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을 것이다. 뭔가 배우고 싶어지는 마음이 올라오면 주변에 있는 누군가를 오래 쳐다볼 것 같다. 누가 그에게 귀한 가르침을 줄지는 알 수 없으니까.


그에게는 아주 오래전부터 꾸던 작은 꿈이 있었다. 나이도, 국적도, 성별도, 귀천도, 직업도, 그런 조건에 아무 관계없이 순수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고, 그런 친구를 가진다는 것은 하늘이 사람에게 준 가장 귀한 선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죠를 보며 드는 그런 행복한 날이다. 이 행복, 죠의 세상에 바치며 죠와, 그와 인연 된 모든 이들이 행복하기를 바라며 그는 요가로 따뜻해진 두 손을 모았다.


"우정은 두 몸에 깃든 하나의 영혼이다." (아리스토텔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