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집에
겨울에 출근하는 차 안에서 바라본 동네 입구의 빈 들녘은 서리가 하얗게 내려앉아있다. 춥디 추운 듯하고 아무 쓸모없는 듯한 저 빈 들녘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가만히 들여다보니 까치떼가 이리저리 날았다 앉았다 하는 모습이 보인다. 사람에게는 아무 쓸모없을 듯한 그곳은 하얀 서리를 날려주는 바람이 불고 그렇게 차갑지만은 않은 서리가 손에 닿이는 듯하고 까치떼와 간혹 까치떼의 배를 채워줄 될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소리도 들리고 흙냄새가 묻은 서리의 향이 코끝에 느껴지는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느낀 일이다.
사람에게 필요치 않은 듯한 어느 품이 다른 생명들에게는 꼭 필요한 품이 되는 것을.
맨발 걷기를 좋아하는 남편이 저녁에 늦게 퇴근하고 오면 뒷마당 맨발 걷기를 할 수 없다고 밤에 태양광등을 달았을 때도 그랬다. 밤은 온전히 뒷산 생명들의 시간이었기에 나는 그 등이 불손하게 느껴졌다.
온 가족이 새벽같이 뒷산을 달려오를 때도 혹여나 새들의 시간을 방해할까 봐 조심스러웠다.
하다못해 화장실에만 들어갔다 나와도, 아니 흙집인 우리 집 방이나 거실에도 밤이 되어 불이 꺼지면 그때부터는 작은 벌레들이 꿈틀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름도 모르는 벌레들도 꽤 있지만 다리가 긴 종류가 꽤 많았다. 습기가 있는 곳에선 노래기도 있고, 돈벌레라고 부르던 그리마, 지네도 한 번씩 나왔다. 그중에서 가장 신경이 쓰였던 것은 쥐였다. 밤만 되면 사그락 사그락 뭔가를 갉는 소리도 나고, 쪼르륵 달려가다가 어딘가에 부딪치거나 뭔가가 툭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걱정되는 것은 우리집에 사는 어린 아이들이 셋이나 된다는 것이었다.
흙집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맑아지는 대신, 그 많은 벌레들의 숨죽인 잔치를 받아들여야 했다.
그렇게 흙집은 우리 사람만의 집이 아니라 모두의 집이었다. 지구가 사람의 집만이 아닌 모든 생명의 집이듯.
쥐들이 부엌에서 놀다가 어느 날은 부엌문을 누가 열어두어서 집 안과 다락방까지 나돌아 다니기도 했다. 쥐들은 먹을 것을 거들내기도 했지만 정작 더 중요한 것은 파이프나 수도관 등 중요한 도구에 이빨을 가는 경우가 있어서 그것이 더 문제였다. 다행히도 우리 흙집에서는 흙이나 나무를 갉을 수 있어서인지 그런 것에는 이를 대지 않았지만.
어느 날은 흙집 쥐구멍으로 몰래 들어온 쥐들을 어떻게든 내쫓아보려고 쥐가 다니는 길을 탐구했다. 가만히 보니 쥐똥이 있었고 그 주변에 쥐구멍이 보였다. 밖에서 부엌으로 들어오는 쥐구멍 몇 개에 쥐를 막아준다는 밤까시를 가득 가져와 막아두었다. 그런데 다음 날 가보니 밤까시가 모두 다른 곳으로 치워져 있었다. 그 많은 밤까시를 하나하나 다 옮긴 정성이라니 정말 대단하구나, 놀랐다.
그다음엔 끈끈이를 가져다 쥐들이 다니는 통로에 두었다. 그것도 그냥 아무 데나 두지 않고 다니는 길에서는 금방 보이지 않으면서도 어느 순간 뛰어내리게 되다가 저절로 착지하게 되는 그런 곳에 두었다. 그때에도 어린 새끼는 쥐덫에 한 둘 잡히기도 했지만 어미쥐는 어지간히 잡히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쓴 방법은 끈끈이에다가 가운데 멸치, 그리고 멸치 위에다 쥐를 유혹하기 위한 참기름을 솔솔 뿌려 두었다. 다음 날 혹시나 하고 가봤더니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글쎄 멸치는 사라졌는데 쥐는 없는 것이다. 이게 무슨 일이지 자세히 살펴보니 끈끈이가 묻지 않은 주변 종이가 조금씩 뜯어져 있고 그 종이가 멸치가 있던 곳까지 이어져 있는 것이었다.
세상에나, 이렇게 똑똑한 쥐가 있다니. 이건 도저히 어찌할 수 없다고 다른 이웃들에게 말하니 허허 웃으며 이웃이 위로한답시고 하는 소리가 더 가관이다.
"그 집에 사는 쥐는 주인을 닮는다더니 아주 똑똑하구먼요"
한 동안 사람은 잡기를 연구하고, 그에 도망다니기를 연구하면서 반복하느라 점점 더 진화된 쥐와 같이 십여 년 이상을 살았던 것 같다. 결국 2022년 우리는 순수 흙집, 세상에 몇 없을 그런 흙집 바닥을 덜어내어 시멘트로 깔았다. 시멘트를 깐 뒤에는 쥐는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쥐와는 이별을 했으니 다행인지 불행인지. 결국 시멘트같은 폐기물이 쥐를 쫓아낸 것이다. 이젠 쥐가 싫어하는 곳이 된 것인지도 모른다.
쥐든 벌레든 우리 흙집은 생명이 살고 싶은 곳이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밤에는 잠만 잔다. 깨더라도 아주 조용히 움직인다. 우리 집도 밤에는 다른 존재가 사는 곳이란 생각에서, 밤은 또 다른 존재의 공간이라는 생각에서 말이다.
사실 아파트와 흙집에 같은 음식을 두면 흙집 음식이 신기하게도 안 상하고 오래간다는 것을 종종 느낀 차였다. 음식도 그렇게 오래 건강하게 해 주는데 우리 사람인들 자연인데 그렇게 덜 상하지 않겠는가 싶어서 벌레와 쥐들이 웅성거려도 참을 만했던 이유이다.
흙집은 집안인데도 마치 바깥에 있는 듯한 점은 있지만 그래서 밖과 교감이 되고 숨이 쉬어지는 곳이기에 자고 일어난 느낌도 좋고 그냥 있을 때의 느낌도 좋았다. 그 좋음이 우리 사람에게만 그랬을 리는 없다. 벌레 먹은 과일이 가장 좋은 과일이라는 것은 이미 벌레가 증명했다는 말이 있듯이 벌레가 살 수 있는 곳은 그만큼 생명이 살만한 곳이라는 증거다.
그리고 흙집은 그 속에 살던 사람이 사라지고 난 뒤에 환경에 유해한 폐기물 쓰레기가 많이 남지 않는다는 것도 장점이다. 사람들은 이미 환경에 유해한 폐기물 쓰레기와 함께 살고 있다. 환경에 유해하다는 것은 사람의 몸에도 좋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사람이 사는 것 자체가 지구나 다른 생명들에게는 상처이자 쓰레기를 남기는 일이라고들 한다. 한 사람이 태어나기 전보다 태어난 것이 세상에 더 이로운 삶이 되는 일이 가능할까?그것이 가능해야 그 존재가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사는 곳을 자기만의 터전으로 만들어가기 보다 모든 생명들에게 너그럽게 그 존재를 허락하는 일은 또한 가능할까?
가장 번성한 종은 가장 먼저 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 생명의 원칙인 이유는 그 종이 모든 생명의 터전을 자기만의 공간으로 오해하고 생명 전체와의 연결성을 끊었기 때문이다. 다른 생명을 도외시하는 문화로는 인류의 미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