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노동일지

<임계장 이야기>를 읽고

by 고요의 향기

장 프랑수아 밀레의 '이삭 줍기'를 보여주면서 화백이 말씀하셨다.


" 여러분의 삶은 누군가의 노동으로부터 살려지고 있습니다. 가까이는 바로 여러분들 부모의 노동일 것이고 멀리는 또 다른 누군가의 노동일 것입니다."

밀레의 이삭 줍기에서는 그 당시 최하층민의 이삭을 줍는 모습이 숭고하게 그려지고 있다. 그때, 내 나이 20대 중반. 사회에 대한 시선을 넓혀가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나를 살려온 누군가의 노동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임계장은 '임시 계약직 노인장'이라는 말의 준말이며 다른 말로 '고다자'라고 불리기도 한다. 고르기도 쉽고 다루기도 쉬우며 자르기도 쉽다고 해서 붙은 말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그동안 무심하게 사물처럼 스쳐 지나던 모르는 사람들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우리 집은 주택이지만 친척이나 지인들의 아파트에 갈 때마다 보이는 경비원에 대해서, 버스터미널에서 물건을 실어주는 등의 역할을 하는 버스 회사 일꾼들에 대해서, 빌딩 경비원에 대해서 전에는 정말 아무 관심도 없이 사물을 본 듯이 스쳐 지나갔다면 이번 기회로 다시 한번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다.


지난번에 읽던 택배노동자 이야기인 <까대기>에서 택배기사의 삶과 노동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었듯이. 그렇다고 내가 그들에 대해 당장 어떤 특별한 대책을 마련해 줄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들 편에 서야 할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 뜻있는 의사표현을 해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료들과 무심히 대화 나눌 때 누군가의 한 마디가 대화의 방향을 얼마나 잘 바꿔줄 수 있는지, 그 의미를 잘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또한 일상 속에서 무감각적으로 살아지는 순간에 그들을 바라보는 눈빛이 조금이라도 부드러워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임계장이야기의 저자는 38년간 공기업에서 정규직으로 일하다 60세의 나이로 퇴직한 뒤 길지 않은 기간 동안 네 곳의 일터를 전전하고 나서 결국 남은 것은 신체의 질병과 장애뿐인 현실을 말해주고 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부분은 어느 직장에서나 회장이라는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밉보이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 여실히 알려주었다. 그렇게 우리 사회에서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과 낮은 자리에서 일하는 사람의 차이가 극하게 난다는 것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더 생생하고 여실히 경험하게 되었다.


어렵고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된다, 저런 힘든 일을 해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당당하게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는 리 나라 교육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가 여실히 보여지면서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저자는 아파트 경비일을 하면서 줄곧 힘들어하고 있었는데 그때 선배란 사람이 해준 말로 어떤 해방구를 느꼈다고 하는데 나는 그 글을 읽으며 가슴이 아팠다.


" 자네는 경비원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그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네...... 자네가 사람으로 대접받을 생각으로 이 아파트에 왔다면, 내일이라도 떠나게. 아파트 경비원이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경비원은 할 수가 없어."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저자는 정직하고 성실하게 자기 몫을 책임져간다. 뿐만 아니라 35도가 넘는 더위에, 유모차에 빈 소주병을 숨겨 가는 엄마의 처지와 심경을 이해하고 끝까지 지켜주었다.


그리고 꽃잎이 떨어지면 그 일도 버거운 일이 되기에 꽃봉오리가 피어나기 전, 이른 새벽에 꽃봉오리를 다 떨어뜨려버린 선배 경비원에게 한 말도 뭉클한 감동이 되었다.


" 선배님, 세월호 참사가 가슴 아팠던 건 미처 피지 못한 꽃들이 봉오리인 채 져 버렸기 때문이 아닐까요? 어찌 보면 꽃잎을 머금은 봉오리가 활짝 핀 꽃송이보다 더 값지지 않겠어요? 우리 몸이 고단하더라도 꽃잎이 싫다고 봉오리를 쳐내서야 되겠어요?"


오죽했으면 꽃봉오리를 쳐낼 생각을 하고 실행을 했을까 싶기도 하고 그래도 꽃봉오리를 치는 것은 아니지 않나 하고 용기 있게 말하는 모습도 내게는 깨우침이 되었다.


저자는 또한 미화원 할머니 한 분이 지하실 계단에서 손자를 잘 돌보기 위해 중학교 검정고시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고 도움이 되려고 손을 내민다. 그렇게 여섯 달을, 점심을 거르면서까지 빠지지 않고 한 것이 그에게는 도리어 가장 큰 행복이었다니, 사람이란 참 대단한 존재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에서도 말하고 있지만 사람이란 자신의 의미를 찾아가고 가치를 찾아가는 존재 것이 수긍이 간다.


이 책이 사회에 나올 수 있게 해 준 동료가 많은 이들이 읽더라도 가족에게 읽히지는 말라는 말이 찡하게 들려온다.


힘들게 일하고 있는 그도 누군가의 사랑하는 아버지요 엄마이며 자녀요 형제자매일 것이다. 적어도 그를 내 가족으로 여겨줄 수 있다면, 그런 사회문화가 조금이라도 정착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창밖을 내다본다.


우리가 편안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누군가는 고되고 힘든 일을 해주고 있고 그 노동에 의해 우리가 살려지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