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다물기 딱 좋은 기회

<맡겨진 소녀>를 읽고

by 고요의 향기

참 신기하게도 이 책과는 특별한 인연이 있다. 독서모임 책으로 가볍게 읽을 만하다고 추천받아서 늘 그러듯이 도서관을 먼저 찾았다. 도서관에는 인기 소설이어서 그런지 두세 권의 책이 다 대출되고 없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서 보니 떡하니 책상 위에 이 책이 있는 것이다. 책을 열어보면서 그 비밀은 밝혀졌다.


"착하고 사랑스러운 OO! 그 고운 마음을 오래오래 간직하길 바란다..... "

막내의 선생님이 마니또 선물로 막내에게 주신 책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 책은 늘 그 자리에 있었지만 내가 보고자 찾을 때만 보였을 뿐이다. 더구나 막내가 친구들과의 독서모임에 추천한 책이어서 함께 이야기 나눌 기회가 될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두 번째 인연이라고 느낀 것은 책을 다 읽고 나서였다. 나는 이 책의 주인공처럼 누군가 돌봐줄 손이 없이, 이름과 존재감 없이 컸다는, 물론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는가마는 내가 느끼기에 그랬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리 밑에서 주어왔다'는 말을 듣고 실제로 동네 어귀에 있는 다리 밑에 가서 나를 버리고 간 부모를 찾아본 적이 있었다. 이 책의 주인공도 다섯째 중 넷째, 그것도 여자아이, 엄마는 집안일과 육아, 밭일 들일로 지쳐있고 아빠는 아이에게 무심해서 따뜻한 부모의 돌봄 경험 없이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그 시절을 보낸 나 자신을 떠올리게 되고 소녀에게 감정이입이 잘 되었다. 이 책이 2022년에 '말없는 소녀'라는 영화로 만들어졌다고 했다는 것도, 실제로 주인공이 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는 아이였다는 것도 그 시절 나 역시 오랜 시간을 '말없이 사는' 아이였기 때문에 쉽게 이해가 갔다.


이 소설의 저자인 클레어 키건은 '우물, 양동이, 물에 비친 소녀의 모습'이라는 한 이미지에서 이 소설을 구상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주머니의 눈을 통해서 자신의 옷차림을 살피는 내용이 나오고 우물에 빠지는 일이 있었긴 하지만 과연 어떻게 그 이미지에서 한 소설이 나올 수 있었을까 궁금하고 신기하다.


이 이야기는 1981년 아일랜드 시골 지역을 배경으로 어머니의 다섯째 아이인 동생 출산을 앞두고 여름 몇 달을 먼 친척 집에 맡겨지는 어린 소녀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무심하고 거칠기도 하며 카드게임으로 소를 잃기도 하고 소녀를 맡기고 돌아갈 때에도 소녀의 짐을 무심코 다시 가져가 버렸던 아버지, 다섯째 아이를 임신한 채 육아와 집안일, 밭일 등에 지친 어머니, 경제적으로도 넉넉지 않은 형편으로 관심과 보살핌을 받지 못하던 주인공이 낯선 부부에게 처음으로 애정 어린 보살핌을 받는 내용이 나온다.


첫날밤 침대에 오줌을 싸도 모르는 척 도리어 미안하다고 말하는 아주머니, 바깥일을 끝내고 돌아와 자연스럽게 식사 준비를 같이 하면서 아이에게 매일 우편함까지 달리기 시간을 재어 주는 아저씨, 그 살뜰한 보살핌 속에서 따뜻한 계절을 보내고 돌아왔다.


그러나 그 부부의 집에 있던 남자애 옷만 입고 있다가 처음으로 시내에 나가서 멋진 옷을 사준 날, 아이는 동네 초상집에 따라갔다가 부부에게 비밀스러운 아픔이 있었다는 것을 듣게 된다.


남동생이 태어났다는 소리를 듣게 되고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할 것을 알게 된 즈음에 아주머니를 위해 차 마실 물을 우물에서 뜨려고 하다가 우물 속에 빠져 버린다. 결국 오한이 든 아이를 예정보다 며칠 지난 뒤에 데려다주게 되었다.


하지만 돌아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는 엄마에게 '아무 일도 없었어요'라고 말한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 만큼 충분히 배웠고, 충분히 자랐으며 입을 다물기 딱 좋은 기회라고 되새긴다.


입을 다물기 딱 좋은 기회는 이 아이를 친아빠처럼 돌봐준 아저씨에게서 나온 말이다. 물론 아이가 우물에 빠진 일에 대해서 입을 다물라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저씨와의 일화를 통해 소녀는 스스로 알게 된다. 말 한마디로 누군가를 상처 입게 하여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실수를 멈출 기회를.


"넌 아무 말도 할 필요 없다."

"절대 할 필요 없는 일이라는 걸 꼭 기억해 두렴. 입 다물기 딱 좋은 기회를 놓쳐서 많은 것을 잃는 사람이 너무 많아."


이 책에서는 말에 대한 메시지가 몇 번이고 연거푸 반복된다. 말로 서로를 상처 주고 잃지 않아도 되는 것을 잃기도 한다고. 이 책에서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 이웃이 자신들에게 잠시 맡겨진 아이에게 아들을 잃은 말 못 할 상처를 함부로 말한 것에 대해서 슬퍼하는 가운데 위 대사가 나온다.


마지막에 아이가 우물에 빠져서 안 좋을 일이 생길 수 있었던 일을 부모에게 말하지 않고 소설은 끝난다. 그 순간이 입을 다물기 딱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면서.


어느 놀이강사가 아이들이 마음껏 해야 할 3가지를 말한 것이 떠오른다. 아이들이 어릴 때 마음껏 해야 할 것은 마음껏 말하기, 마음껏 울기, 마지막으로 마음껏 놀기였던 것 같다. 그 세 가지는 모두 마음껏 들어줄 이가 있어야 하고 돌봐줄 이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아이는 잠시 맡겨진 부부에게서 말하는 법과 말을 멈추는 법을 모두 배운다. 말을 멈추는 법은 결국 누군가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마음이 있을 때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우리와 함께 한 이들을 통해 상대에게 상처 주는 말은 멈추고 필요한 말을 하는 법과 누군가의 슬픔을 격려하고 위로하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 같다.


마지막 부분에 책은 절정에 이른다. 아이를 제 집에 데려다주고 돌아서는 순간에 아이는 자신을 정성껏 돌봐준 부부를 향해 달려가 아저씨 품에 안긴다. 그리고 아주머니의 눈물을 보듬어주고 싶어 한다. 마지막 문구에서 아빠를 두 번 부르는 부분은 독자에게 애매하지만 여러 가지 깊은 메시지를 준다.


아저씨에게 "아빠"가 등뒤로 오고 있어요, 하고 경고하기도 하고 아이를 잃은 아저씨의 마음을 위로하면서 자신이 지난 시간 동안 참으로 따뜻한 시간을 보냈음을 전하는 마음으로 "아빠"하고 부르는 것으로.


나는 손을 놓으면 물에 빠지기라도 할 것처럼 아저씨를 꼭 붙든 채 아주머니가 목구멍 속으로 흐느끼다가 울다가를 반복하는 소리를 듣는다. 꼭 한 명이 아니라 두 명 때문에 우는 것 같다..... 아저씨의 품에서 내려가서 나를 자상하게 보살펴 준 아주머니에게 절대로 절대로 말하지 않겠다고 얘기하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지만, 더욱 심오한 무언가 때문에 나는 아저씨의 품에 안긴 채 꼭 잡고 놓지 않는다.

"아빠." 내가 그에게 경고한다. 그를 부른다. "아빠."


부모란 다만 혈육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마음으로 결정된다. 아무리 혈육으로 연결된 아빠라도 아빠의 마음이 아닐 때 과연 아빠라고 할 수 있을까. 아무리 혈육이 아니더라도 아빠의 마음으로 돌봄을 받을 때 그를 아빠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부모들에게도 위로받을 상처가 있고 늘 누군가를 돌볼 여유가 없을 수 있음은 인정할 수밖에 없기에 언제나 부모됨의 자세여야 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진실하게 부모 됨의 마음으로 돌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비결은 실제로 아이들이 느낀 것, 그것이 실체라 할 수 있다. 아무리 잘한다고 하더라도 후회와 아쉬움, 원망이 남을 수 있는 것이 부모역할이라지만 "should, must 가 아니라 feel"을 살펴라는 말은 부모로서 살아가는 과정에서 유념해야 할 것을 잘 알려준다. 아이에게 어떻게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정서, 느낌을 살펴서 해주는 것이 진정한 돌봄이라는 뜻이다.


자신을 진정으로 대해준 부부에게 건네는 위로의 말, 아빠. 슬픔을 있는 그대로 느껴본 적이 언제였을까 생각해 보지만 잘 기억나지 않는다.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슬픔을 느껴보고 마주한 만큼 타인의 슬픔을 진정성 있게 느낄 수 있을 것이고 그 자체가 위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외람되지만 슬픔도 공부라고 하지 않던가. 슬픔을 느껴본 지 오래된 만큼 위로해 본 지도 꽤 오래되었다는 걸 느낀다.


어떤 슬픔은 말로 다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느끼기조차 버거운 슬픔도 있다. 슬픔을 마주하고 느끼는 일은 그야말로 애도의 시간이다. 애도의 시간을 갖지 못한 슬픔은 마음속 무덤에 갇혀 언제 어디서든 위로받을 기회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이를 잃고 하룻밤에 머리가 새하얗게 세어버린 부부는 어린 주인공에게서 위로받으며 그제야 멈추지 않는 눈물을 흘린다. 순수한 마음은 대상에 관계없이 위로를 주고받을 수 있다.


이 책은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그려진 단편소설이어서 그런지 주인공의 이름도 좀처럼 찾기 힘들다. 세상에서 존재감 자체를 찾기 힘든 아이였음을 그렇게 드러냈을까 싶을 정도로. 소설 속 주인공처럼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따뜻한 돌봄을 받지 못했다고 느끼던 이들에게 위로를 주는 책이다.


더불어 어른이라면 아이를 어떻게 바라보는 것이 좋은지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가 부모이든 아니든. 지친 부모 아래에서 힘겹게 보내고 있는 아이를 볼 때 어떻게 해줘야 하는지도. 무조건 부모에게 모든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지쳤을 때 혹은 지치기 전에 우리 사회가 어떻게 함께 해줘야 할지에 대해서도.


짧은 글 속에서 은근히 따뜻함을 전하고 있는 <맡겨진 소녀>를 추천한다.


매거진의 이전글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노동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