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 자신에게
조용한 농촌마을 오래된 느티나무 하나가 마을을 지키는 할아버지처럼 마을이름이 써있는 비석과 함께 서 있다. 그 입구에서 조금만 들어가면 있는 작은 정원이 있는 예술가의 공간, 그곳에서 격주 토요일마다 자기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유리창으로 환히 빛이 들어오는 가운데 자기가 그린 색면들을 그 빛이 잘 드러나게 세워두고는 자리에 누웠다.
안내자는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서 우리가 경험한 생의 흔적들을 다시 떠올려보자고. 가장 어릴 때, 뱃속이나 갓 태어난 아기였을 때조차도 우리네 본성은 다 기억하고 있다고. 일단 유아기를 떠올려보라고 했다.
" 자, 여러분이 유아기에 어디에 있었는지 떠오르나요? 그때 여러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었나요?"
내 유아기에 나는 어디에 있었을까? 그냥 산 아래 고향 마을이 떠오르긴 하는데 내가 뭘 하고 있었는지 누구와 있었는지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그 순간 떠오른 것은 그 시간 내게 필요했던 것은 이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한 생각이었다.
그건 바로 '따뜻한 마음으로 내 이름을 불러주는 그 목소리'였다고 내 마음은 말하고 있었다.
과연 그때 내 이름을 그렇게 불러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그랬다고 하더라도 탓할 생각도 없다. 다만 내가 그렇게 느끼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니까 말이다.
그 순간 이후로 그 한 문장은 나에게 영향을 가장 많이 끼치는 키워드가 되었다.
내 유아기에 필요했던 한 마디, '따뜻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러주는 것'.
그 순간 이후로 나는 생각이 날 때마다 유아기의 나에게 그 순간 할 수 있는 가장 따뜻한 마음으로 이름을 불러주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단지 내 이름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이들의 이름을 그 마음으로 불러주는 것 자체가 나 자신에게도, 세상에도 도움이 됨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더욱이 나는 특히 이름을 많이 부르는 자리에 있었다. 가족들의 이름뿐만 아니라 우리 반 아이들의 이름과 주변 다른 반 아이들의 이름, 그리고 다른 동료들의 이름들을 그렇게 따뜻하게 불러주는 것이 이제 나의 한 즐거움이자 소명이 될 것 같다. 혼자서 시작하는 즐거운 수행이 될 것 같아 설레기까지 한다.
며칠 지나지 않았지만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함부로 말이 나갈 시점에도 따뜻한 마음으로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내 마음을 절제하고 전환하는 기회가 되어주고 있다.
아. 그렇구나. 그제야 알게 된 것은 내가 그렇게 따뜻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이들의 이름을 불러준 때가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고로 지금까지 나는 그 누군가의 이름을 그렇게 따뜻한 마음으로 불러본 기억이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조차 그렇게 하지 못했으니 다른 사람에게 그랬을 리는 만무하다 할 수 있었다.
무심하게 지나가는 돌멩이에 부딪쳐 나가는 소리 말고 마음을 가다듬고 따뜻한 마음으로 부르는 소리 말이다.
내가 들었다고 느껴본 적이 없었던 것이라 해보지도 못했던 것일까. 적어도 사실은 아닐 것이다. 다만 스스로 듣지 못했거나 들었다고 여기지 못했을 뿐.
하지만 나는 이제부터 그 누군가에게 바라지 않고 나 자신에게 그렇게 따뜻한 마음으로 내 이름을 불러주기로 했다. 세상에서 가장 나를 사랑하면서 가장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마음으로 다른 이들에게도 그렇게 해주기로 했다.
처음에는 막상 쉽지만은 않겠지만 습관적인 마음을 알아차리고 놓아가는 그 순간 자체로 스스로에게 습관으로부터의 자유를 얻고 관계에서 사랑을 수놓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