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고의 남자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함께 모은 돈도,
함께 쓰던 가재도구도,
심지어 함께 꾸던 꿈까지 다 사라졌다.
그와 함께 링고의 목소리도 사라져 버렸다.
모든 것을 잃은 링고는 사생아로 컸던,
그래서 상처가 많았던 고향으로,
유방산이 있는 산골 마을로 10년 만에 돌아온다.
‘아무르’ 술집 주인인 엄마와는 사이가 좋지 않다.
링고는 돈을 벌기 위해 <달팽이 식당>을 개업한다.
하루에 한 팀을 위해 최선을 다해
요리를 하기로 하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모든 것이 물거품처럼 사라진 상황.
몸속의 피 한 방울까지 다 빠져나가버린 것 같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은
절대 절망의 상황을 살아가면서
겪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링고처럼 그런 상황은
소리 소문 없이 갑자기 닥친다.
나 역시 그랬다.
괴로웠다.
시간이 흐른 후,
나는 인생이란 내 마음대로,
내 기대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비싼 수업료를 내고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리고, 인생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 외엔
다른 방법이 없다는 사실도.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고향에 돌아가
사이가 나쁜 엄마의 도움을 받고
장사를 시작하는 링고처럼 말이다.
다행히 어릴 때 다녔던 학교의
임시 직원이었던 ‘구마’씨의
강력한 조력으로 달팽이 식당은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사람들의 소원을 이뤄준다는
소문이 퍼져 링고의 달팽이 식당에는
여러 사람들이 다녀간다.
다양한 사연과 함께
그들의 삶을 보다 행복하게 가꿔주던 나날을 보내며
링고는 요리에 대한 자신의 재능을 한껏 펼친다.
다양한 사연에 걸맞은 창의적인 레시피가 책에 소개된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쥬 떼므’ 수프는
제철의 신선한 채소로 사랑에 빠진 마음을 표현한다.
그러던 중 링고는 자기 출생의 비밀과 함께,
사실은 엄마가 암에 걸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혼란에 빠진다.
엄마와 해묵은 감정을 풀고 싶지만,
끝내 그런 기회를 갖지 못한다.
엄마는 첫사랑 슈이치와 결혼한다.
링고는 그들의 피로연 음식을
엄마의 제안에 따라 엄마의 애완 돼지 엘베스를 잡아
최선을 다해 마련한다.
엄마가 죽은 후,
다시 모든 진이 빠져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링고는
어느 날 창문에 머리를 박고 죽은 산비둘기를
요리해 먹으면서 다시 기운을 차린다.
그리고 목소리를 회복한다.
모든 것이 꼬인,
절대로 풀릴 수 없을 것 같은 인생의 한 지점에서
정성스러운 음식을 먹고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혜원의 이야기,
영화 <리틀 포레스트>가 생각났다.
그리고 담백한 안도가 함께했다.
나중에 내 곁의 누구라도 힘들어할 때
아무 말 없이 소박한 밥 한 상 정성스럽게 차려 주면
될 것 같은 안도 말이다.
그리고 그 밥상 물릴 즈음,
마지막 숭늉과 함께
‘아무리 인생이 꼬일 대로 꼬여도 배부르게 먹고,
한숨 푹 자면 괜찮아질 거야’라는 쪽지를 끼운
이 책을 건넬 수 있을 것만 같다.
한때 나는 따뜻한 국밥 한 그릇
제대로 끓여내는 식당을 하고 싶었다.
당시 나는 요리를 잘하지도,
경험이 있지도,
손익분기점 등 이해타산도
전혀 백지상태여서 정말 정말 뜬금없는 생각이었다.
그 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너무나 비현실적이었던 식당에 대한
염원은 당연히 사라졌다.
그러나 간혹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하는 의문은 가끔 떠올랐다.
그런데 이 책의 마지막을 덮는데 순간
머리를 스쳤다.‘아 그때였구나!’
내 인생이 꼬일 대로 꼬였다고,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망연자실했던 그즈음,
나는 뜨근하게 국밥을 끓여내고 싶었다.
정성스러운 밥상은 몸과 마음 둘 다를 살찌운다.
그 국밥은 내가 먹고 기운 차리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