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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온 Jul 18. 2022

대읽다 02-김영하의 '보다 읽다 말하다'

어떤 식견을 가질 것인가?

보통 사람을 두고, ‘식견(識見)’ 있다 

혹은 없다 라는 말을  때가 있다.

식견은 사람을 평가하는 가장 큰 테두리의 잣대다.

식견은 학식과 견문이 합해진 말로,

사물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일컫는다.


여기에서 말하는 사람이 

구체적인 무엇을 분별한 결과는 

그가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즉, 그의 세계관을 형성하는 벽돌 

하나하나에 해당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다 읽다 말하다 

여러 분야에 대해  

저자 김영하가 식견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어떠한지를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600쪽이 넘는다.

책 표지에 ‘김영하 인사이트 3부작’이라고 밝혔 듯,

 ‘보다’, ‘읽다’, ‘말하다’로 각 각 발행된 연작 산문집의 합본이다.


제목에서 직관적으로 알 수 있듯이 ‘보다’에서는

저자가 삶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명제를

부와 가난, 삶과 죽음, 운명과 예술,

미래에서 본 과거 등으로 

2가지씩 대비시켜 자신의 관점을 

이야기하듯 풀어나간다.


 ‘읽다에서도 자신의 관점을 이야기하듯 

풀어나가는 것은 마찬가지다.

저자의 직업이 작가이니 만큼 

독서와 뗄 수 없는 관계이므로 

그간의 독서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한다.

특히 독서라는 행위의 의미를 6부에 걸쳐

나선형으로 반복적으로 확장시키는 

전개가 인상적이다.


마지막 ‘말하다’는 조금 다른데,

이제까지 진행한 인터뷰나 강연을 정리해서 실었다.

형식은 앞의 ‘보다’, ‘읽다’와 다르지만,

내용에 있어서는 앞에서 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저자가 주장하고 싶은 것을 

보다 분명하게 하고 있어서 책의 전체 흐름 크게 

벗어난 듯 느껴지지는 않는다.


나는 이 책에서 낯설었던 점이 2가지였다.

첫째는 저자가 세상을 풍부하게 본다는 점이었다.

그는 공간적으로 다양한 집단의 관점을 포용하고,

시간적으로 과거에서부터 현재에 이르는 관점을 

아울러 보고 있었다.


 부러웠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책을 많이 읽었겠지 등등의

표면적으로 그럴듯한 답은 조금만 따져보면 

답이 아니었다.

그 누구도 원래 세상을 풍부하게 보도록 

태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 세상을 풍부하게 

볼 가능성이 있지만,

책을 많이 읽을 것으로 추정되는 직업군인 

교수들이나 작가들의 면면을 보면 

그렇지 않은 증거도 현실에서 

꽤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저자와 같은 대부분 50대 이상의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이나 세대의 관점을 

전문적이고, 현실적으로 견지한다.

그도 그럴 것이 50대쯤 되면 자기 분야에 입직한 지 20년이 넘어 전문성을 갖추게 되고,

집단 내에서는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다른 세대나 다른 집단과 어울릴 기회가 크게 없다.

당연히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과 

인식을 같이하게 된다.

그래서 전문적이고, 현실적인 동시에 

다소 편협하고 경직된 식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저자는 그렇지 않았다.

다른 동년배처럼 전문적이고 현실적이지만,

폭넓고 유연했다.


나는 여기에 대한 이유를 

두 번째 낯설었던 점에서 찾았다.

바로 소설을 읽는 이유의 차이였다.


저자는 <읽다>에서 줄곧 소설을 읽는 이유가

교훈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양한 사람의 경험으로 자신의 내면세계를

단단하게 구축하기 위해서라고 줄곧 이야기한다.

저자는 ‘사람이 곧 이야기’라고 까지 주장한다.


나는 이제까지 특별하게 소설을 읽는 이유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지 않았던 터라

저자의 이 이야기가 무척 낯설었다.


가만 보자. 내가 소설을 왜 읽지?

남는 시간을 메우거나 재미를 위해서?

변변치 않은 내 독서 목록만 살펴봐도

소설은 뒷전으로 밀려났던 사실이 금방 드러났다.


하지만, 저자는 소설을 읽는 순간

시, 공간을 초월해 인물이 사는 세계로 가서

인물의 내러티브를 경험할 수 있다고,

그러면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한 인간의 경험은

소설 속 인물의 삶의 영역까지 확장되고,

연결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나는 그동안 가졌던 

수수께끼 하나가 풀린 듯했다. 

아, 이제 알겠다.

몇 년 전 내가 <안나 카레니나>를 읽었을 때의 

이상한 느낌을.


너무나 길어서 몸을 뒤틀면서 읽긴 했지만,

무척 재미있었다.

내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고 점잖은 법률가의 젊고 아름다운 유부녀 안나가

젊고 잘생긴 군인 브론스키와 바람을 피우다

이혼이 되지 않는 상황에 괴로워하다 

자살하는 이야기다.


그런데 다 읽고 나서는 좀 당황스러웠다.

무슨 생각을 해야 할지 방향을 잡기 힘들었다.

‘자승자박이네. 결혼한 사람이 바람을 피우면 안 돼’,

혹은

‘아무리 힘들어도 자식이 있는데 

자살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이런 생각들이 들어야 할 것 같긴 한데

오히려 안나의 심정이 이해되었다.


"정말 괴로웠겠다."


단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러시아,

절대 살아볼 수 없는 19세기.

가공의 인물 안나와 주변 사람들.

현실적으로 단 한 톨의 접점도 없을 

그들의 이야기에서

나는 여러 인물들을 내 친구인 것처럼 

친밀하게 느꼈고,

그들이 사는 곳이 마치 우리 동네처럼 

익숙하게 다가왔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들이 각자의 상황에서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게 안나뿐 아니라

이혼을 해주지 않은 안나의 남편 카레닌의 심정도,

처음처럼 열정적으로 안나를 사랑해주지 않는

브론스키의 심정도 이해되었다.

마치 동네 어귀의 평상에 앉아

얼마 전 동네에서 일어난 유명한 가십을 

질펀하게 듣는 그런 느낌이었다.

 “에고 그래서 어쩌누...”로 맞장구치면서.


도덕적인 잣대로 인물을 판단하는 것,

작가가 꼭꼭 숨겨놓은 주제를 헤집어 파악하는 것,

시대적 상황에서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것 등등을 다 떠나서


그 인물들이 그때 느꼈던 느낌을

지금 내가 느낀 것.


바로 그게 내가 <안나 카레니나>를 읽으면서 

했던 일이다.

그래서 한 동안 내 마음이 촉촉해져 있었다.


이와 같이 인물의 말과 행동에서 마음을 

상상해 보는 것은 

초등학교 1~2학년 

국어과 읽기 성취기준 중의 하나다.

그렇게 하는 목표는

바로 창의적인 국어사용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다.


말은 곧 사고다.

사람은 생각한 것을 말로 하지 않을 순 있지만,

생각하지 않은 것을 말할 순 없다.

창의적으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그 사람의 사고가 창의적으로 바뀌는 일이다.

그것은 곧 더 넓고, 풍부한 식견을 갖는다는 

말과도 통한다.


우리는 서로 어울려 살아가기 위해

다양한 사람의 생각을 이해하고 포용해야 한다고

알고는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당장 

나와 가장 가까운 가족조차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고 포용하지 못해 

얼마나 많이 다투는가.


이렇게 가끔이라도 소설을 통해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볼 수 있다면,

다행히 그 책이 재미있어서 

내 내면에 내러티브로 자리 잡을 수 있다면 

그렇게 큰 노력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타인을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곧 말로 행동으로 드러나지 않을까.


책을 읽고 난 후,

나는 앞으로 다양한 소설을 읽어보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의 입장이 되어보기로 했다.


가능하다면 아이들의, 젊은이들의 내러티브가 있는 소설이면 좋겠다고,

또 나와 동시대를 살면서 다른 공간에서 사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내 경험에 비추어 그들을 보는,

그래서 나와 다른 그들의 모습을 보아주지 못하는,

인내심 없고 편협한 나를

요즘 자꾸 발견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재미있게 소설을 읽어 가다 보면

내 식견도 지금보다는 조금 더 풍부해지지 않을까.

기대한다.


새롭게 소설에 다가갈 수 있는 지평을 열어준

이 책 <보다, 읽다, 말하다>가 참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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