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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온 Jul 20. 2022

대읽다 03-손원평의 '아몬드'

우리가 선택적 알렉시티미아는 아닐까?

27년을 교사로 살아오면서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자고, 

교실에서 큰 소리로 욕을 하고, 

친구를 무자비하게 때리고, 

학교 기물을 마구잡이로 부수는 아이. 

그런 아이를 공감해 눈물을 흘린 적은 솔직히 없다. 


우리 반 아이건, 풍문에 실려 오는 어떤 아이건, 

현재 학교에서 그런 아이는 어쩔 수 없는 구제불능이다. 

이런 아이에 대해 대화를 나누게 되면 

나는 대부분의 경우 고개를 흔들었다. 

병원과 치료라는 말과 함께. 


그런데 처음으로 그런 아이 때문에 눈물을 흘렸다.


 바로 이 책 <아몬드> 때문이다. 



<아몬드>에는 두 명의 남학생이 나온다. 


소설의 화자이자 일렉시티미아(감정 표현 불능증)라는 정서적 장애를 갖고 있는 선윤재와 그의 친구 곤이, 혹은 윤이수. 먼저, 선윤재는 선천적으로 뇌의 편도체가 일반인보다 작다. 그래서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감정, 특히 공포를 잘 느끼지 못한다. 그런 그를 엄마와 외할머니는 지극 정성으로 기른다. 반면, 윤이수는 예술가를 해도 될 정도로 감정이 풍부하다. 하지만, 어릴 때 동물원에서 엄마를 잃어버려 제대로 된 사랑을 받아보지 못하고, 늘 어른들로부터 학대와 방임을 당하며 자란다. 


어느 눈 오는 크리스마스 이브 날, 윤재네는 윤재의 생일을 맞아 외식을 나갔다. 냉면을 먹고 나오다 외할머니와 엄마는 그야말로 ‘묻지 마 칼부림’을 당한다. 칼에 찔려 엄마는 식물인간이 되고, 할머니는 윤재가 식당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몸으로 막다가 칼에 찔려 죽는다. 이 끔찍한 사고에도 윤재는 아무렇지도 않다. 윤재가 평범하게 살아가기를 원한 엄마의 소원에 따라 고등학교에 진학한다. 거기에 윤이수 자칭 곤이가 전학 온다. 곤이는 한마디로 학교에서 감당되지 않는 불량학생이다. 


곤이는 윤재를 만날 때마다 못살게 괴롭히고, 심지어 크게 다칠 정도로 때린다. 사실 곤이가 윤재를 이렇게 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보육원과 몇 번의 파양을 겪은 곤이는 최근 친부모를 되찾았다. 그런데 곤이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아빠 윤교수는 죽음을 앞둔 엄마에게 곤이라고 속여 윤재를 만나게 했다. 곤이는 자신 대신 아들 노릇을 한 윤재가 기분 나빴다. 계속되는 곤이의 악행에도 윤재는 끄떡없었다. 결국 곤이는 무릎을 꿇고, 둘은 점점 친구가 되어 갔다. 


사랑을 많이 받은 윤재는 사랑을 느끼지 못했고, 원하지 않았지만 아빠 같은 심박사가 돌봐준다. 반면, 사랑을 받지 못한 곤이는 사랑에 민감했고, 특히 아빠의 사랑을 바랐지만, 윤교수는 자꾸만 외면한다. 이런 어긋남 속에 곤이는 학교에서 아이들 돈을 훔쳤다는 누명을 쓰게 된다. 친구인 윤재조차 곤이를 믿어주지 않는다. 막다른 골목에 내 몰린 곤이는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생각하는 대로 살아보려고” 학교를 떠나 자신이 알고 있는 최고로 나쁜 “철사”형을 찾아간다. 


한편 윤재는 여자 친구 도라를 통해 조금씩 사람을 좋아하는 감정을 알게 되고, 윤교수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이 곤이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깨닫는다. 바로 미안하다 였다. 그 말을 하기 위해 곤이를 찾아갔던 윤재는, 철사 형을 만난다. 그리고 그로부터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자기가 곤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 죽을 때까지 맞는다. 그 옆에서 곤이는 강한 척할 뿐인 약해 삐진 자신을 인정하며 울부짖는다. 아, 그렇게 소설은 몇 가지 후일담을 남겨두고 마무리된다. 



나는 책을 붙잡고 한 참 울었다. 


강한 척할 뿐인 약해 빠진 곤이가, 

사랑을 갈구했지만 받을 수 없었던 곤이가, 

아무도 자신을 믿어주지 않아 낙담했던 곤이가 

불쌍해서

너무 가슴 아팠다. 


그동안 나는 겉으로 보이는 말투가 불량스럽고, 

행동이 방정하지 못하고, 

학교의 규칙을 어기는 아이들이 안타까워 

바르게 지도하려 애썼다. 

그럴 때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라 

머리로 짐작하긴 했지만, 마음을 느끼진 못했다. 

곤이와 같은 아이들의 마음에 깊이 공감하지 못했었다. 


어쩌면 나는 선택적 일렉시티미아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소설의 힘이라니.

가상의 아이, 

모든 불량 학생의 특성을 

모조리 모은 듯한 곤이의 아픔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이제껏 내가 만난 아이들은 곤이만큼은 아니었으나 

부분 부분 곤이의 조각이 있었다. 


그랬듯이 앞으로 만날 아이들에게도 

곤이의 조각들이 있을 것이다. 

이해하기 어렵고, 공감하기 힘들 수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곤이를 불러내기로 했다. 

그리고 내가 눈물 흘렸던 곤이의 마음을 반추해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아이를 이해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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