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저기는 상수도 보호구역에 가까워서 자연환경을 잘 지켜야 될 것 같은 곳인데 농약을 친다. 왜 하필 여기 약을 치냐고 물어보면 아무도 책임 있는 답을 하지 않는다. 무슨 심각한 병충해가 있어서 급히 방제를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곳은 공원처럼 되어있어서 평소에도 어린이와 노인들도 많이 오가는 곳인데도 그렇다.
내친김에 시의 담당부처에 문의를 한다. 아무도 분명한 답을 하지 못한다. 누구도 책임감을 가지고 이 일의 앞이 어떻고 뒤가 어떻고 하며 설명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이성의 시대를 살고 있는가..
심지어 국정도 무슨 종교적 신념을 가진듯한 이들이 마음대로 주물럭 거리는 시기를 겪은 마당이다. 시 행정이든, 개인의 가정활동이든 거기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고 설명이 가능해야 하는 세상이 아닌가.
이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조차 마음 편하게 할 수 있는 시대는 사실 얼마 되지 않았다.
오랫동안 인류사회는 왜라는 질문을 하면 심지어 질문한 사람을 추방하거나 죽이기도 했다. 그렇게 보면 현대사회는 훨씬 자유롭고 안전하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렇게 되기까지 많은 이들의 희생이 있었다는 사실은 잘 눈에 띄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사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지를 묻기도 했고 영원한 삶이 있느냐하고 묻기도 했다. 현실의 고통을 없애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혹은 현실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의문을 가지는 이들에게 여러 종교가 답을 내려한 것 같다. 신기하게도 그 답의 상당 부분은 사람들에게 그 질문을 되돌려 주는 것이다.
과학은 그런 물음에 대해 아주 다른 방법으로 답을 한다. 수학에서 예를 들면 0으로 나누기 같은 문제는 아예 답을 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어떤 물음에는 답을 찾기 위해서 인간과 자연을 분석하고 계산을 하고 실험을 한다. 이런 방법을 쓰는 이유는 상황을 재현할 수 있어야 하고 그래야 다른 이들이 인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권위를 가지고 판결을 해버리는 것은 진리를 찾는 길이 아니다. 여러 사람이 같은 높이에 서서 동의를 해야 비로소 참된 것으로 인정하는 방법이 지금까지 인류가 발견한 세상의 진보를 위한 길 중 가장 나은 것이라고 여긴다. 가장 과학적인 방법은 어쩌면 가장 민주주의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어떤 답에 다수가 찬성한다고 해서 꼭 그것이 진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진리는 다수결이 아니다.)라는 사실 때문에 과학은 민주주의와 관계가 없다거나 과학은 소수의 천재들에 의해 발전한다는 편견이 널리 퍼져있긴 하다. 무언가 발견하는 것도 개인의 일이고 발명하는 것도 개인이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개인은 무인도에 떨어져 사는 고립된 인간이 아니라 사회에서 사회의 영향을 받은 사회적 존재이다.
문명에서 떨어져 자연상태에 동물들과 살다가 인간사회로 돌아온 아이의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렸던 때가 있었다. 이런 인간을 늑대 인간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비슷한 소재를 가지고 쓴 ‘정글북’ 같은 소설이 영화로도 되어 인기를 끌기도 했었다.
여기엔 아프리카나 아시아에 대해 얄팍한 우월감을 가졌던 유럽인들이 자신들이 경험하지 못한 세상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을 충족하려는 욕망이 투영되어 있기도 하지만 사회화되지 못한 인간이 어떤 삶을 겪게 되는지에 대한 성찰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그만큼 인간이 만든 사회는 뿌리가 깊다.
지금까지 알려진 ‘늑대인간’들 중 사회에 적응하여 성인으로 제대로 살아간 기록은 없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사회에서 고립되어 지낸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셈이다.
제대로 된 사회화가 인간에게 절실한 시대이다. 온갖 질문에 민주적으로 답을 할 수 있는 시스템도 사람도 필요하다. 그 모든 것이 결국 인간을 위한 것이다. 인류역사에서 이런 사실을 제대로 통찰하고 현실화시킨 지 얼마 되지 않는다.
저 상수도보호구역 옆에 농약을 친 사람도 누군가의 지시를 따랐을 것이다. 그 지시를 한 사람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실무자가 의문을 제기하지는 않았을까. 만일 그랬다면 어떤 답을 했을까.
이런 질문을 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 사회도 지구상에는 얼마든지 있다.
누구나 이 질문을 하기 전에 내가 사는 세상을 위해 아니 나의 생명과 내 이웃의 생명을 위해 무언가 의문을 제기하고 반문할 수 있는 권리가 누구에게든 인정되는 시대는 오고 있을까?
202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