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세상은 어떻게 나아지는가.

혹은 세상은 어떻게 진보하는가?

by 허훈

아마도 지금 20대 이상이라면 학창 시절 사회시간이나 체육시간에 퇴보와 전진이라는 단어를 배운 경험이 있는 이가 많을 것이다. 필자도 교사가 전진과 퇴보라고 하지 않고 꼭 퇴보와 전진이라고 썼던 기억이 있다. 발음하기가 편해서 그랬을 수도 있겠고 보통은 퇴보라는 현상을 멀리해야 한다는 뜻에서 먼저 쓴 것이기도 한 것 같다. 그냥 뒷걸음질과 앞으로 나아감이라고 해도 될 것을, 심지어 진보라는 단어는 훨씬 뒤에 들었던 것 같다.

과학에서 진보란 어떻게 일어나는가 아니 무엇을 진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당연히 과학계에서도 혁신이나 개혁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혁명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큰 변화가 종종 일어난다. 과학 기술 계통에서 일하는 이들이 실업의 두려움을 훨씬 느끼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 중 하나는 19세기말 물리학계에서 있었던 일이다. 뉴튼이 역학을 완성한 이후 이제 맥스웰이 전자기 방정식을 정리하면서 전자기학을 성립시키고 난 뒤 한 동안 이제 물리학에서는 연구할 만한 것은 다 연구되었고 남은 것은 세부내용을 채우는 것이라는 사조가 유행이었다고 한다. 하필이면 19세기가 거의 끝나가는 무렵 그러니까 세기말이었기 때문에 사회 한쪽에서 허무주의가 휩쓸고 있음을 생각하면 뭔가가 끝이 난다거나 이제 더 이상 할 것이 없다는 관념이 생겨나는 것은 어쩌면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이기도 하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과학 연구자들은 실업자가 될지도 모른다.. 고 많은 이들이 생각했다.

다행히 몇몇 선각자들이 이런 상황을 바꿀 수 있었다. 1900년 연말에는 요즘 AI나 코인 따위에 관심이 널리 퍼지면서 심심찮게 사람들이 입에 오르내리게 된 양자물리학이 탄생했다는 평가를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독일 과학계에서 있었던 한 학회에서 양자의 개념이 처음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을 발표한 학자는 꽤 오랫동안 학계에 있었던 기성세대였다. 막스 플랑크라는 흔한 이름을 가진 그는 어릴 때부터 착실한 모범생이었고 정직하고 보수적인 사람이었다. 성실하게 교단에서 학생을 가르쳤고 아주 성실하게 학문을 갈고닦는 선비 같은 사람이었는데 당시 열역학의 난제였던 흑체복사 문제에서 제기되던 자외선파탄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에너지 개념에 없던 에너지 양자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을 발견했고 망설임 끝에 학회에서 발표를 했던 것이다. 에너지는 연속적인 흐름 같은 양이 아니라 띄엄띄엄 나뉜 조각처럼 작용한다.

일부러 학문의 영역에서 혁명을 시도한 것도 아니고 달리 혁신을 부르짖었던 것도 아니었다. 단지 그는 자신들 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는데 과거에서 계속 쓰던 방식으로는 안되니 뭔가 다른 새로운 방법을 적용했던 것뿐이었다.

한 문제, 몇 개의 방정식, 한 번의 학회, 한 명의 과학자에서 시작된 과학혁명은 이제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중요한 것은 인류가 지금껏 생각해 온 에너지나 힘이나 물질에 관한 생각이 모두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가 쓰는 휴대폰, 컴퓨터, 미디어와 온갖 종류의 전자기 장치, 온갖 문명의 이기가 이 사람이 열어젖힌 과학혁명에 뿌리를 두고 있다.

종종 과학자들이나 그 분야 지식인들은 대개 두 가지 유혹을 받는다. 한 가지는 자신이 알게 된 지식이 완전하고 절대적일 거라는 그래서 자신이 진리의 영역에서 심판자가 된 것 같은 자만심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자신이 발견한 지식이나 정보가 현실에서 진실로 인정받지 못하지만 진리는 꼭 그 시대에 인정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대의 이단자가 된 듯한 일종의 선민의식을 느끼는 경우이다.

자신만이 진리를 알아내었다. 그러나 그 시대의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고층빌딩 펜트하우스에서 시내를 내려다보는 사람의 심리가 그럴지도 모른다. 자신의 발밑에 수많은 개미가 세상모르고 살아간다. 자신은 신과 같은 위치에 서 있다. 그는 의기양양해한다.

20세기 초 질소비료의 원료가 되는 암모니아 합성법을 발명한 프리츠 하버의 경우도 어쩌면 그런 것이다. 그는 독가스(독가스를 실제 전쟁에 쓸 수 있는 기술을)를 만들어내게 된다. 앞엣 것은 인류를 만성적인 식량부족에서 해방시키는 원동력이 되었지만 독가스를 발명한 이유는 나름의 애국심의 발로였다고 한다. 그는 자신을 어떻게 생각한 것일까.

19세기말 우리 땅에서 벌어진 갑오농민전쟁(혹은 동학혁명이라 불리는)에서 농민군은 일본군이 가진 맥심 기관총 앞에서 무력했고 몰살당했다. 이 무기는 맥심이라는 이름의 의사가 발명했는데 이유가 전쟁에서 라이플 같이 총알이 한 발 한 발 나가는 총기로 많은 이들이 죽어나가니 아예 한 번에 수 십 수 백 개의 총알이 나가는 총을 만들면, 그런 무기가 있으면 사람들이 그게 무서워 전쟁을 적게 하지 않을까 혹은 전쟁이 빨리 끝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나름 혁신이고 혁명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단자였고 심판자였다. 하버처럼.

보수적이고 성실한 학생이 나아가 세상을 근원에서부터 변화시켰지만 진보와 혁신을 꿈꾸던 이는 세상을 피로 물들이는 짓을 벌이고 만 것을 역사는 오늘도 우리에게 보여준다.

진보란 공상이나 짐작으로 뭔가 바꾸려는 몸부림이라기보다는 끊임없이 인류에게 다가오는 과제를 성실하게 대면하고 하나하나 풀어나가는 과정이 아닐까. 점프를 하면 빨리 목적지에 오를 수 있을 것 같지만 언제나 도중에 주저앉기 마련이다. 세상은 구호나 말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나아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리라.

2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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