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생명체는 환경에 맞춰서 산다. 당연하다. 처음 생명체가 탄생할 때 단지 환경과 생명체 사이에는 얇은 막이나 경계선이 있어서 안과 밖을 구분했을 것이다. 바깥은 여전히 자연환경이고 안은 그 생명체가 어떻게 생겨서 어떻게 유지하는 지를 결정하는 모든 것이 들어있다.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 삶과 죽음의 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가 아니라 그 종이보다 얇은 칸막이였을 것이다.
그러니 모든 생명에는 자연에서 온 요소들이 있기 마련이고 환경과 나는 모양과 작동방식을 다를지언정 본질에서는 다르지 않다. 심지어 자연에는 위험이나 두려움이란 단어도 어울리는 장면이 없다. 오랫동안 태양에서 오는 에너지를 이리저리 모으거나 나눠서 삶을 유지하는 생명체에서는 죽고 사는 것이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오직 인간만이 다른 삶을 산다.
이 글을 쓰기 몇 시간 전 오래된 노트북의 배터리를 갈았다가 낭패를 보았다. 노트북이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배터리는 한 번 교체하고 나면 이전에 쓰던 것을 다시 쓰기는 불가능하다. 배터리를 빼고 쓰면 되는 기종도 있다지만 필자가 쓰는 것은 그렇지 못하다. 결국 돈과 시간이 버려졌다. 요즘 한참 유행을 타고 있는 GPT를 비롯한 여러 인공지능 장치에 물어봐도 헛일이었다. 기계는 이런 (특이하거나 유일한) 현상을 이해하거나 상황을 해결할 수 없다.
90년대 말 대학과 연구소에만 있던 인터넷이 처음 실생활에 도입되었을 때 사람들은 낯설어했다. 하지만 곧 기업가들과 언론매체에서 미래 먹거리로 찬양받는 존재가 되었다. 수 십 년 만에 인터넷이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인공지능도 그럴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지금은 낯설지만 초창기 인터넷과 비슷한 길을 가고 있다.
그러나 실생활에서의 쓰임새도 그럴지는 두고 봐야 한다. 배터리 문제가 생겼을 때, 갈아 넣고 나서 더 큰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 인공지능은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다. 물어보면 두리뭉실한 답변을 할 뿐이다. 왜 그럴까..
지구상의 인간의 수를 약 80억이라고 하자. 이 사람들은 매 순간순간 다른 고민, 다른 문제에 직면하고 그것을 해결함으로써 인간이 무생물이나 다른 동물과도 아주 다른 존재임을 증명한다. 어느 인공지능(AI)이 있어서 이 인류를 흉내 내고자 한다면 이 ai는 매 순간 최소 80억 가지의 생각과 느낌, 추론과 감상, 말하고 듣고, 표현하고 동의를 구하고 하는 등의 인간이 하는 일을 해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80억 번의 연산이 아니다. 80억 가지의 사건이 수 십억 수 백억 시간의 찰나에 지나간다. 한 가지 한 가지가 다 인간이란 생명체가 지구 위에서 수 십억 년 동안 쌓이고 쌓인 생명을 발자취를 세포나 분자 수준에서 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ai도 수십 억년 진화과정을 다 알지 못하고 다 재현하지도 못한다. 그 세세한 이야기, 어느 날 하늘의 어느 지점을 지나던 공기 분자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갔는지는 인공지능 할아비라도 알 수는 없다.
작은 배터리 한 개에도 그 안에 무수히 많은 원자와 이온이 이리저리 움직인다. 수많은 반도체 칩과 온갖 부품들이 이들을 통제하기 위해 일하고 있다. 그 하나하나를 인간이 알 수는 없으니 과학이 동원된다. 그래서 인간은 이제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자연의 존재를 이제 어느 정도는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 수 있다.
한편에서는 늘 그랬듯 자연을 인간의 호주머니를 불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이들은 이런 과학을 자연이 아닌 인간을 통제하기 위해서 쓰려고도 한다.
어제오늘도 인간은 과학의 힘으로 자연을 파괴하고 인류 공동체를 망가뜨리며 아무 이해관계도 없는 이들에게 고통을 강요하는 장면을 본다. 자연에 반하는 인간은 생명과 죽음의 경계를 무너뜨려서 세상에 종이 같은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콘크리트와 아스팔트와 폭탄의 경계 쌓기를 예사롭게 하기도 한다. 귀찮고 비용도 들지만 노트북이나 배터리는 다시 사면 된다. 하지만 지구는 비용이나 귀찮음 때문에 교체할 수 없다.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유일하게 지구를 소비하는 존재니 그만큼 책임을 가져야 한다. 지구를 다 소모하고 나면 충전은 불가능하다.
202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