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GPU의 가치, 인간의 가치

by 허훈

온갖 모양의 구름 같은 물체가 있는 기괴한 사진이 쏟아져 나온다. 현대 과학의 첨단을 걷는 분야 중 천문학에서는 관측결과가 이런 모습으로 알려지는 경우가 많다. 현대인들에게는 경외감과 신비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현실 생활에 아무 도움도 안 되는 것 같은 이런 현상의 배경을 찾는 연구에 납세자들이 흔쾌히(?) 돈을 지불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이런 결과가 주는 매력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도 주로 여유 있는 선진국 혹은 부유한 국가들에서 일어나긴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과학이라고 하면 일단 돈이 안된다 혹은 돈벌이가 안된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보는 이가 대부분이다. 인간이 가지는 수많은 직업군중 과학자, 과학기술자라는 분야가 훨씬 나중에 정착된 이유이기도 하다. 고대에는 이런 지식과 경험을 지닌 이들이 군사기술이나 건축, 농업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으로 밥벌이를 하곤 했다는 흔적이 보인다. 과학이 현대에 와서 자리 잡은 배경에는 산업혁명으로 급격히 발달한 자본주의가 가진 힘이 있다는 점은 이 지면에서 몇 번 말한 적이 있다. 새로운 지식이 발견되거나 발명되면 그 사회에서 발언권이 있는 자들은 이것을 새로운 돈벌이 수단이나 전쟁 수단으로 응용하려고 온 정성을 기울인다. 그래야 이 지식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고대에나 지금이나 그 점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이전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교통, 통신이 발달된 지금은 그나마 인간이란 존재가 띄엄띄엄 떨어져 있더라도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넘어서 힘을 합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세상이 많이 좋아진 듯도 하다. 거의 모든 인류의 역량을 파괴에 쏟아붓는 어리석음에 대항하려면 필요한 것은 더 폭넓은 연대이기 때문이다.

AI의 시대가 온다. 적어도 언론매체에서는 그런 보도가 요즘 차고 넘친다. 주식과 코인의 시대를 지나 돈벌이에 더 많은 지식, 더 많은 에너지를 투입해야 하는 시대가 온다고 해도 될 것이다. 전문분야 사람들이나 말하던 gpu가 어떻고 엔비디아의 주가가 어떻고 하는 기사도 자주 나오는 것을 보면 그렇다.

그 모든 것들이 처음엔 아무 쓸모없어 보이는 일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사람들은 잘 기억하지 않는다는 것 아쉽다. 아쉬운 정도가 아니라 몹시 안타깝다.

우리와 상관없어 보이는 수 천 수 만년 전의 사건을 파헤치는 역사학자나 고고학자들의 일이 정말 지금 현대를 사는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을까. 단지 집 거실을 고대의 우아한 작품으로 장식하고 싶은 부자들의 취미를 위한 것일까.

주식의 이름이 아니라 현대 사회를 좌우하는 거대기술 기업들이 활약할 수 있는 바탕에는 돈 안 되는 과학과 수학의 기본 개념을 어떻게든 잊어버리지 않고 더 발전시키려고 애를 쓰는 수많은 지식노동자들의 땀이 있다.

히든 피겨스라는 영화에서 주인공 흑인여성은 아무래도 안 풀리던 우주선의 궤도에 관한 문제를 오일러라는 유럽 수학자가 수 백 년 전에 발견한 공식을 응용해서 푸는 장면이 나온다. 현대 문명의 바탕이 된 많은 과학기술 분야에 이 수학자가 발견한 지식이 얼마나 포함되어 있는지 일일이 쓰기도 힘들 정도이다.

그가 살던 시절인 18세기에 그의 노력이 수 백 년 뒤 우주선을 우주공간에 날려 보내는데 쓰일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었을까.

지금 당장에는 어디에 쓰일지 모르나 인간은 인간 본래의 본성이라고 부르는 호기심을 통해 지금 당장에는 아무 쓰임새가 없을 것 같은 작품을 만들어 낸다.

전쟁에 소모하고 타인을 괴롭히는 데 쓰고 자신들에게 거슬리는 누군가를 파괴하는데 들이는 에너지를 연구에 쓰고, 타인을 돕는데 소모시키고 자신들을 거슬리게 하더라도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들이는 시대를 꿈꾸기엔 우리의 상상력이 모자란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은 상식처럼 되어있는 지식이라도 당시에는 혁명이었다.

21세기가 20여 년이 지나는 지금도 인간은 자신이 사는 세상을 바꾸는 혁명을 계속해야 할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그리고 그것은 나와 타인이 다름을 인정하는 진정한 관용에서 출발한다. 모두가 똑같다면 그런 세상은 모든 인류가 사라지고 혼자 남은 끔찍한 SF영화 속의 세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20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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