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길을 걷다 보면 인도가 평평하지 않고 경사가 져있는 것을 본다. 인근의 자동차소유자가 차를 편하게 운전하도록 배려를 해놓은 것이다. 그런데 그 경사진 부분이 많으면 인도를 걷는 사람은 뒤뚱거리며 발목을 접질릴 수 있는 위험을 늘 안고 다녀야 한다. 멀쩡한 포석이 깔려있는 길이 불규칙하게 파도를 치고 있으니 보기에도 흉하기 짝이 없다. 경계석이 깨져서 시멘트로 덧칠해놓기도 한다. 이해하기 힘든 것은 다른 나라에서는 그런 모습이 별로 없는데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그렇다는 점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그렇게 걷는 사람보다 차를 타는 사람을 우대한다. 자전거도로를 많은 예산을 들여 시에서는 설치한다. 그런데 그렇게 많이 깔아놨다는 자전거 도로에 막상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중간중간에 끊겨 있어서 실용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지금은 자전거 도로는 차에 자전거를 싣고 가서 어느 지점에 차를 세워두고 자전거를 내려서 타야 한다. 그마저 직장에 출퇴근하거나 학교에 등교하기 위해 타기도 어렵다. 도도에 턱도 많고 차 운전자들이 쉽게 과속, 난폭 운전을 하기 때문이다.
차는 커야 하고, 자전거는 가난한 사람들이나 어린 학생들이 타는 운송수단일 뿐이라는 관념이 여전히 유령처럼 도시를 떠돌아다닌다.
이런데도 환경 타령을 한다. 디젤엔진을 단 커다란 suv를 몰면서 공기가 탁하다고 불평하고 교통신호가 길다고 짜증 내면서 조금이라도 한산한 도로에 들어서면 마음껏 액셀을 밟는 게 보통의 중산층 시민들의 일상이 아닌가.
미국이나 구 소련에서 로켓을 타고 우주를 나가본 사람들은 하늘에서 지구를 보면서 경외감을 느끼고 이 아름답고 한편으론 여린 지구를 잘 지켜야 한다고 언론 인터뷰 등에서 말하는 것을 종종 본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경험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에선 그럴 수 없다. 우리가 늘 볼 때 지구는 그냥 평평한 땅과 바다가 있을 뿐이고 지금 여기가 마음에 안 들면 다른 곳으로 옮기면 되지 하고 생각한다. 지상에서도 온전히 지구를 볼 수 있으면 현실이 지금보다 나을까.
과학의 여러 분야 중 지구나 환경, 생물등을 연구하는 분야의 학자들은 다른 분야보다 훨씬 전체로서의 세상을 보는 것 같다. 인간의 역사에 비하면 지구의 시간은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길다. 언젠가도 이 지면에서 말했지만 지구의 역사를 하루 24시간으로 압축해서 표현하면 인류는 거의 자정 5초 전에 지구에 나타나서 살아갈 뿐이다. 1947년 미국핵과학자회의 회보에 종말시계(혹은 운명의 날 시계)라는 개념의 가상적인 시계에서 유래한 것 같은 이 시간으로 인류가 지나온 길을 보면 자연에 비하면 인간이 여전히 보잘것없는 존재가 아닌가. 45억 년 정도 되는 지구의 역사에서 인류가 나타난 시간을 비율로 보면 0.1%도 안된다.
과학자들이 지금까지 밝혀낸 바에 따르면 인류가 지구에 나타난 것은 대략 2백만 년 정도 되지만 그 훨씬 전 1억 5천만 년을 공룡이 육상의 지배자였고 그 훨씬 이전엔 3억 년 동안 삼엽충이 바다의 지배자였다.
이처럼 자연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과는 척도 자체가 비교하기 힘들다.
시민들의 삶을 좌우하는 정책 담당자들이라도 이런 것을 알고 느낄 수 있으면 세상이 좀 더 달라지지 않을까. 내가 모는 승용차보다 고향 어귀에 있던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세상에 더 값어치가 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유튜브 쇼츠 보며 멍하니 보내는 시간에 한 권의 책을 읽는 것이 인간의 삶에 더 이롭다고 하지만 우리는 쉽게 유혹에 넘어간다.
얼마 전 멸종 위기의 황새를 복원해서 자연에 방사하는 것을 행사가 있었단다. 그런데 온갖 높은 사람들이 와서 축사니 기념사니 한다고 땡볕에 케이지에 갇힌 새를 방치하다 결국 폐사시키고 말았다. 정말 저렇게 바보 같은 짓을 왜 할까. 어릴 때는 뭔가 불합리한 점을 이야기하면 어른들은 원래 인간은 그렇다. 원래 사회는 그런 것이다라며 넘어가려 했다. 그래가지고는 미래는 없다. 인간은 어떻게든 답을 찾을 것이라는 어느 영화의 대사처럼 해답을 찾으려고 해야 한다. 과거나 현재나 문제가 있는 곳에는 문제를 풀려는 인간의 노력이 있기 마련이다. 보통의 경우 문제는 겉으로 보기에 복잡하고 어렵기 마련이고 문제를 풀려는 인간은 숫자가 적기도 하고 약하기도 하다. 똑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인류는 풀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희망을 가져본다. 기후위기에도 계절의 변화는 온다. 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겨울이 지나고 다음에 올여름은 좀 더 나은 계절이 되면 좋겠다는 상상을 한다. 상상만으로는 안 되겠지만 우주에서 본 작고 연약한 지구처럼 유일한 인간의 삶터인 이곳을 잘 지켜나가야겠다.
202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