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어디선가 가을바람은 불어온다.

by 허훈

날씨가 가을이 되면 거리에는 사람들의 옷차림새부터 바뀐다. 한여름보다 낮기온이 대략 10도쯤 낮아지면 그제서야 더위의 고통에서 벗어났다고 여기고 한숨 돌린다. 농촌에서는 이제 수확의 계절이기도 하다.

날씨는 지상에 사는 생명체들에게는 아주 중요하지만 따지고 보면 대기를 이루는 수많은 공기 분자들이 태양 에너지와 지구 자전의 영향으로 어디에서인가 불어와서 어디로 불어가는가 하는 무척 소소한 일일 뿐이다. 우리나라는 동서남북에 모두 다른 특징을 가진 공기 덩어리가 밀고 당기기를 하는 곳인데 이런 기후를 가진 지역은 그리 흔하지는 않다. 겨울에는 찬 공기가 북쪽에서 내려와서 따뜻한 공기를 남쪽으로 밀어내니 날씨가 추워진다. 당연히 여름엔 그 반대가 되고 봄과 가을엔 중국 대륙과 북태평양 양쪽에서 공기가 불어오고 불어나가며 날씨가 뒤바뀐다. 한반도에 사람이 정착해서 살아온 세월 동안 거의 변함없이 같은 모양이었으니 사계절이 뚜렷하다는 평가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비가 한 여름에 집중된다는 점과 여름과 겨울의 기온차가 섭씨 50도를 넘나들만큼 극단적이지 않다면 정말 좋은 기후대에 있다고 해도 되겠지만 바로 저 두 가지 점 때문에 우리나라는 기후로 따지면 그리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이 아니라는 평가도 만만치 않다.

지금처럼 현대과학이 발전하지 않았고 산업사회가 아니었던 시절엔 인간의 활동이 원인이 되어 기후가 변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빙하기 이후 최소 수 만년 동안 별 변함이 없던 기후가 지금은 ‘내년이 더 걱정이다’라는 말을 듣는다.

세계 초강대국 지위를 늘 뽐내는 미국의 대통령은 현재도 유엔에서 기후위기가 인류 최대 사기극이라고 질타한다. 이 사람은 또 나름의 생각은 있을 것이다. 석유도 1972년 로마 클럽의 발표에서 곧 고갈되리라는 예상을 했지만 그로부터 반세기가 넘도록 여전히 나온다. 그때보다 기술이 발전해서 그전에 뽑아 쓰지 못하던 석유를 찾아내기 때문이다. 기후나 과학에 대한 적절한 지식이 없는 이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0.03%밖에 안되는데 그게 0.02%가 된들 기후에 무슨 큰 영향이 끼칠 수 있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도처에 그런 주장은 넘친다. 지상의 자원이 아무리 고갈된들 바다가 있는데 거기에서 얼마든지 뽑아낼 수 있지 않냐는 사람들도 있다.

어설프게 알면 어설프게 살게 되지 않는가.

미국 대통령쯤 되면 저렇게 말해도 되겠지만 저 엉뚱한 말에 반박을 하고 시민들을 설득하려면 수많은 논문과 논증이 필요하다. 한마디로 시민은 귀찮다. 그래서 이 세상은 여전히 악령과 무당이 판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쉽게 고통을 잊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년에도 가을이 또 오게 하려면 올여름같이 살면 안 된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인류가 알아낸 것 중 하나는 자연은 늘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맞추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을 제외하면 다른 지구상의 동식물은 불을 사용하지 않는다. 유일하게 불을 사용한다는 점이 환경파괴의 출발점이 되었다. 불은 인류가 에너지를 사용하는 아주 편리하고 우수한 도구지만 아주 조금만 잘못하면 세상을 파괴하고 마는 두 얼굴을 가진 존재이다. 만약 조물주가 있다면 아마도 인간이 불을 사용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점을 깜빡하고 잊은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자연을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찍는 작가들의 철칙 중 하나는 아무리 안타깝거나 해도 자연의 과정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한다. 작은 행동 하나가 도미노처럼 자연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미 찍는 과정 자체가 자연을 어느 정도 파괴하고 개입하는 것이지만 그나마 최소화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

불을 사용하는 인류는 이미 자연의 변화에 깊이 개입하고 있다. 그러나 더 깊이 끼어들기엔 인간이 가진 지식도 예의도 너무나 불충분하다. 자연은 수 십억 년 동안의 사건 사고가 모이고 모여 만들어졌다. 생명체에는 실패와 성공의 기록이 유전자라는 저 밑바닥에 셀 수도 없이 쌓여있다. 길바닥에 발에 채이는 돌 한 조각은 수 만, 수백만 년 전에는 바다밑의 모래알이었는지도 모른다.

인간은 자연 앞에 겸허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 해에도 또 그 내년에도 늘 가을이 오기를 기다릴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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