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한 해, 두 해

by 허훈

한 해, 한 해 오고 가는 것은 어쩌면 인간에게나 의미 있는 일인지도 모른다. 달은 쉼 없이 지구 주위를 돌고 지구는 태양 주변을 돌고 태양은 행성들을 이끌고 우리 은하계를 열심히 돌아다닌다. 수 백 만년, 수 천 만년이란 시간 단위는 인간에겐 기겁할 정도로 길지만 우주에서는 길가의 돌멩이보다 흔해빠진 것이다. 공간과 시간의 단위가 이렇게 다르니 우주라든가 과학은 인간과는 아주 먼 존재인 것 같다. 지금같이 과학이 발달한 시대라도 인간은 여전히 어색하게 느낀다. 뭔가 실험실이나 연구실에서 천재들이나 괴짜들이 하는 일이 과학연구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복잡하고 알아듣기 힘든 용어나 수식을 쓰면서 보기에서 살벌한 기계, 기구를 다루는 사람들을 보면 나와는 다른 세상을 사는 사람들 같기도 하고. 그러나 가만 보면 그들도 우리와 같은 희로애락을 가진 인간이다. 음악이나 예술에 조예가 있는 이도 있으며 도박에 빠졌거나 바람을 피우던 이도, 재물에 대한 욕심으로 엉뚱한 짓을 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이 몇 안 되는 사람들에게 인류는 꽤나 도움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황금을 얻기 위해 연금술을 연마하던 이들 덕분에 근대 화학이 정립되었다든가 현대 문명의 바탕이 되는 물리과학의 발전 과정에서 온갖 우연과 실수가 흔하게 있었다는 이야기는 말 그대로 정말 흔하다. 그래서 과학은 이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별난 세상이 더 이상 아니고 또 아니어야 한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올 해가 보름쯤 남았다. 우리는 조만간 새해를 맞이할 것이다. 앞으로도 시간은 흐르고 인간은 살아갈 테지만 언제까지 인류가 생존할 수 있을까. 기후위기, 에너지, 빈부격차, 등등... 많은 문제가 있고 그다지 쉽게 풀리지 않을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문제가 풀기에 너무 힘이 부치면 외면하거나 문제를 자신과 아주 떨어진 곳에 격리시키곤 한다. 인류가 이런 모습으로 사는 것은 많은 부분이 우연에 기반하고 있다. 하필 유라시아 대륙은 동서로 뻗어있고 남북 아메리카 대륙은 남북으로 펼쳐져 있어서 고대부터 농업과 문명의 발전과정이 많이 달랐다. 지구가 서에서 동으로 자전하기에 유라시아 대륙에서 산 인류는 비슷한 기후대라 서로 교류하기도 쉬웠고 동식물의 전파도 쉬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지구를 일부러 그렇게 굴린 것도 아니고 대륙의 모양이 그렇게 생기라고 만든 것도 아닌데 이 우연이 만든 결과가 두고두고 인류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인류가 맞닥뜨리고 있는 문제들은 이런 우연이 아니라 인간이 일부러 만든 것들이다. 인간은 일부러 정착을 하고 농업과 도시를 발달시켰다. 일부러 더 많이 가지기 위해 전쟁을 하고 정복을 하고 사람들을 내쫓거나 죽이기도 했다. 당장 먹고살기 힘들어서 이웃 마을을 약탈했다거나 정착지를 버리고 옮겨간 것이야 어느 정도 이해한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단지 생존의 필요가 아닌 인간이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거나 남에게 권위를 행사하고 싶어 하는 동기가 내면에 숨어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근대에 들어와서 조금씩 인간이 인간됨이란 어떤 것인지, 인간이 본래부터 가진 인권이 뭔지, 인간과 자연과 문명의 관계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늘어난 것은 무척이나 다행이다. 20세기 들어 전 세계가 다 연루된 큰 전쟁이 지나고 교통과 통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부터는 이런 고민이 모여 인권선언도 생기고 인간이 자신의 지성으로 어느 정도 이 지구에서 서로 화해하고 살 수 있을지에 대해 조금은 이 전 시기에 비해 더 노력하고 있는 것 같다. 문제를 무슨 신종 바이러스처럼 격리하고 외면하거나 자신들과 떨어뜨려 놓는다고 해결되지 않고 어떻게든 거기에 뛰어들어 직접 보고 겪으면서 해결방법을 찾아야 된다는 것을 조금은 더 깨달은 것도 같다. 처음부터 인간이 사는 이 지구는 별난 세상이었다. 태양계에서 유일하게 안정한 대기가 있고 산소가 있고 얼지 않은 물이 있었기에 인간이 생명의 나무 끄트머리에서 나타날 수 있었다. 화성처럼 얼어붙지도 않고 금성처럼 타오르지도 않은 이 우연과 특별함이 수 억년의 세월 동안 생명을 키우고 살게 한 것이다. 이쯤 되면 인간은 자신의 삶을 현존하게 해 준 이 지구에게 보답을 해야 한다. 이것은 단지 과학자, 기술자들이 아니라 현재를 사는 지구 시민에게 주어진 소박한 숙제인 것이다. 실험실이나 연구실 혹은 거창한 기계와 거대한 담론이 아닌, 탐욕과 무지를 극복한 인류의 지성과 이해로 온갖 위기를 풀어나가야 할 새해가 밝아온다.

20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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