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를 청소하면서

by 전종호

세월은 기억되어야 하고

욕망은 소화되어야 하는데

교무실 냉장고 안에는

기억되지 않은 세월과

소화되지 않은 욕망으로 가득하다


누군가 가져다 놓은 건강음료는

있다는 사실조차 기억에서 멀어져

용처를 찾지 못해 쌓이고

장 속에서 매끄럽게 달려야 할

영양소들은 소화되지 못한 채

유통기한을 넘기고 있다


잠시 즐거운 영혼을 위한 커피는

여전히 입을 꼭 다물고 있고

옆에 한때의 고통을 잊기 위해

가져온 약들도 찾지 않는 걸 보면

소용은 다 한 듯한데

가져다 놓은 주인들은 다 떠나고


사는 일이란 결국

이것저것 챙기고, 챙기다 또 잊고

필요한 것들 열심히 쌓아 놓고

유통기한을 놓치는 일인지 몰라

쌓고 버리고 썩고 떠나는 삶의 순환이

냉장고 안에서 온전히 숙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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