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막이옛길

by 전종호

조금만 더 가면 된다는 말에

속았어 이 굽이 지나면 마을이라더니

아직 끝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속았당게

다리 풀려 툴툴거리는 노인에게

노인보다 한참 더 꼬부랑 옛길이 말을 건다


세상에 뭔가 있는 줄 헛된 꿈 붙잡고

평생 속으며 산 게 우리 아닌개벼

코끝을 파고드는 아찔한 향기에도

한없이 비루한 이름으로 불리는

쥐똥나무 같은 게 우리 인생 아니겄어

오래된 길이 노인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꽃이 사람 보기 좋으라고 피는겨

죽어 씨를 남기기 위해서 피지

숱한 세월을 지고 서 있는 저 소나무 좀 봐봐

줄기를 곧게 세우려고 땅바닥을 기는

구불구불 인고의 뿌리가 없으면 서 있겄어

봄날 어린아이가 말갛게 웃을 때

꽃은 부끄러운 듯 발갛게 램프를 켜고

청년의 초록 숲이 바다처럼 바람을 흔들다가

늙은이들 속에 울화가 치밀어 오를 쯤에

온 산에 단풍은 화병처럼 활활 타오르고


산이 막고 물이 들이민다 해도

사람의 길은 언제나 다소곳이 열리고

올 사랑은 마침내 오고야 만다는 사실을

숨 고르며 하루씩 빼기 하는 사람 중에서

산막이옛길을 걸어 본 사람은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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