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로 로마노

by 전종호


시간은 폐허의 흔적 속에 있었다

언덕 위에 하늘은 그대로이고

언덕을 넘는 바람도 옛날처럼 부드러운데

살아남은 몇 개의 기둥과 벽 채는

키케로의 웅변술보다 더 극적인 웅변으로

흥망의 로마사를 증언하고 있다

온전한 것보다 무너진 것들이 더 웅변적이다

권력과 광장의 열기는 자연으로 돌아가고

언덕의 올리브 숲은 허망虛妄 속에 있다

황제를 꿈꾸었던 카이사르는

공화주의자의 말과 칼에 베였고

공화주의는 시민들에 의해 버려졌다

전쟁을 끝낸 말들의 숨소리만 한가할 뿐

개선문에 들어서는 군인들의 흥청거림과

멀리 이방에서 잡혀 온 노예들의 저주는

길거리에서 어지럽게 교차되었다

세상의 길은 모두 이곳으로 통하고

제도는 모두 제국에서 전파된 것인데

남고 사라지는 것은 결국 무엇인가

팔라티노 언덕의 훤칠한 소나무 몇 그루가

광장의 가벼운 시간 놀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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