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발목에 걸려 흔들린다면
여수행 완행열차를 타라
용산에서 밤 열 시 넘어 떠나는
기차에서 서울을 내다보면
밤이 너무 깊어 들어 올릴 수 없지만
느리게 느리게 기어가는 기차에서는
숨에 맞춰 시간을 늘릴 수 있으니
지친 몸을 맡기고 한숨 자도 좋으리라
눈을 떠도 여기가 여전히 여긴 듯하나
서대전역에 서면 깊고 느린 말소리 들리고
봄날의 향기 언제나 그윽한 남원쯤 가서
운 좋으면 놀러 가는 전라도 농부를 만나
홍어삼합에 막걸리 한 사발로 요기를 하고
다시 눈 부쳐도 여수 가면 아직 미명未明
남도의 검은 새벽바람이 정신 나게 하리라
혼란한 마음으로 오동도 동백숲을 걷다 보면
떠나 왔으나 속에서 지우지 못한 사람
뜻이 있다면 언젠가 다시 만나리라 정리가 되고
금오산 향일암 천수 관세음보살 앞에 서면
절망이 몸부림쳐 노래 부르는 한바다
반짝이며 춤추는 물비늘의 반사가
볼 수 없는 그대의 뒷모습을 비추어 주리니
발목에 걸려 삶에 떫은 감물이 들 때면
여수행 전라선 완행열차를 타라
초고속 시간을 건너 느린 기차에서 내리면
진초록에 숨은 동백꽃의 단심丹心과
거칠 것 없이 씩씩한 돌산도 바다 물길이
가려진 삶의 길을 살포시 보여 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