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종호 여행 칼럼〕 어쩌다, 히말라야 16
‘팔파사 카페’에 담긴 뜻은
내가 알기로는 네팔에서 발간된 책이 우리말로 번역된 것은 딱 두 권이다. 하나는 소설 <팔파사 카페>이고, 또 하나는 시집 <누군가 말해다오 이생의 비밀>이다. 그리고 네팔 이주 노동자들이 최근에 낸 시집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이 책은 아직 읽지 못했다. <팔파사 카페>는 시작도 못하고 허무하게 끝난 사랑 이야기이다. 시작한 바 없어 머릿속 상상에 머물러 소설의 진부한 사랑 이야기조차 없는, 그래서 진부함마저 없어 아직 인생극장 이야기가 되지 못한 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소설에는 “인력소개소 앞에는 각양각색의 사람이 줄 서 있었다. 그들은 어디로 가고 싶은 것일까? 걸프만, 말레이시아, 한국, 아프가니스탄, 아니면 이라크?” 이런 식으로 네팔의 노동 현실의 절박성을 얘기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이 끼어 나온다. 실제로 여행객을 제외하면 카트만두 공항 탑승객의 대부분은 중동으로 일하러 가는 두바이행 노동자들이다. 소설의 골자는 화가인 주인공이 팔파사라는 여성을 마음에 품고 사랑하게 되면서 팔파사를 위한 공간 ‘팔파사 카페’를 구상하게 되는데, 자기 마음과 구상을 고백하려는 순간에 반군에 의한 버스 테러로 여인이 사라지게 된다는 슬픈 스토리이다. 이 소설을 이야기하려는 것은 사랑 때문이 아니라 소설의 배경이 되는 네팔의 정치 사회적 역사를 말하고자 함이다.
네팔은 산도 높고 골도 깊어 골짜기 별로 자기 종족끼리 부족사회 형태로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20세기 중엽까지 통행조차 쉽지 않은 산악지대로 인도와 중국 사이에 낀, 샤 Shah와 라나 Rana 가문으로 갈라진 왕국이었다. 1951년부터 라나 Rana 가문이 지배했지만 2001년 왕족 내 갈등으로 국왕이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나고 왕정과 입헌군주제와 민주정의 반복과 전복을 거치고 민중들의 삶이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피폐해졌다. 교육을 받은 학생들과 외국 문물을 경험한 용병 출신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 군주제 폐지와 토지개혁 등의 깃발을 든 마오이스트의 세력 확장은 정부의 무능과 부패와 맞물려 사회 혼란상은 극에 달하게 된다. 정부에 대한 불신과 저항으로 마오이스트들은 네팔 민중들의 요구를 반영한 40개의 요구사항을 제시하며 카트만두와 대도시 지역 일부를 제외한 농촌과 산골 등 국토 대부분을 장악하는 등 10여 년의 내전이 계속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일반 민중은 반군과 정부 양쪽으로부터 피해를 당하게 되는데, 마치 한국전쟁 당시의 우리 시골 마을 여기저기에서 벌어졌던 상황과 비슷하게 이념 갈등과 동족상잔의 비극을 경험하게 되었다.
소설은 당시의 이런 현실이 배경이다. 주인공은 네팔 풍경을 주로 네팔의 전통적인 색채와 방식으로 그리는 인정받는 화가이다. 정치적으로는 이쪽도 저쪽도 아닌 제3 자의 객관적인 시각으로 네팔 현실을 보고 ‘랑탕 1995’ 등 랑탕 연작 시리즈를 그리고 있다. 대학 동기인 반군 지도자의 권고로 자기 고향 마을을 중심으로 네팔의 산천과 민중의 삶을 보고 그리기 위해 걷는 여행을 하게 된다. 그는 여행 중의 편지에서 네팔의 현실을 담담하게 이렇게 그리고 있다. “지금 제가 머무는 마을 농부들이 오렌지 밭에서 일하고 있는 게 보입니다. 북쪽으로는 눈 덮인 히말라야가 있지요. 제가 농부들의 얼굴에서 본 만족감은 주변 풍경이 아름다워서가 아니었습니다. 그건 그들의 과일나무가 열매를 맺을 거란 확신에서 온 것이었습니다. 햇빛이 히말라야를 비추고 있습니다. 히말라야는 따뜻하게 햇볕을 쬐고 있습니다. 부인, 당신은 신에게 모든 희망을 거셨지요. 이 농부들은 히말라야에 모든 희망을 겁니다. 그들은 날씨에 의존하고 히말라야를 바라보며 계절의 변화를 읽습니다. 당신은 신에게 모든 희망을 걸고, 농부들은 히말라야에 모든 희망을 걸지만, 저는 당신에게 모든 희망을 겁니다.”
그러나 그가 여행하면서 목격한 네팔의 현실은 범상치 않다. “그녀의 아들 하나는 경찰이었고, 다른 하나는 졸업시험을 치르러 경찰 관할구역으로 떠났다고 소년이 일러 주었다. 마오이스트들은 분명 둘째 아들을 요구하고 있었다. ‘둘째를 정글로 보내지 않으려면 내가 가야 할 거야. 안 그러면 그들에게 십만 루피를 줘야 해’, ‘내가 가진 소를 전부 팔아도 겨우 만 루피 정도 받을 수 있으려나. 아니, 누가 이 마을에서 내 소를 사겠어?’”, “내 앞에 한 여자가 걷고 있었다. 결혼식 다음 날 과부가 된 여자였다. 내가 꼭 그녀의 눈물 위를 걷고 있는 것 같았다. 길 저편으로 나무에서 떨어져 다친 새가 있었다. 한쪽 날개가 나뭇가지에 끼어 있었다. 날개를 파닥거리는 소리가 나를 망연자실하게 했다. 새의 파닥 거림과 과부의 숨 쉬는 소리는 내가 들었던 가장 슬픈 음악이었다.” “과부 뒤에서 나이 지긋한 남자가 걷고 있었다. 그는 아들의 시신을 요구하러 가는 길이었다. 그의 한숨은 구릉의 한숨이 되었다.”
결국 사랑하는 여자는 반군의 버스 폭격에 죽고, 그는 자기 고향 마을에 그녀 이름을 붙인 ‘팔파사 카페’를 건축하려고 하면서 먼저 그림으로 그것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겨자 밭은 내게 그리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나는 이 구릉에서 색깔들을 빌려왔고, 이제 그들에게 이자를 붙여서 돌려주고 싶었다. 나는 이 마을의 흙과 바람과 물과 삶과 문화로부터 너무나 많은 것을 선물 받았다. 줄지어 늘어선 싸그(갓 같은 식물 종류)는 직선을 가르쳐 주었고, 구릉들은 연필 획을 위로 긋는 법을 가르쳐 주었으며 개울들은 다시 내리긋는 법을 가르쳐 준” 마을에, 아틀리에와 스위트룸을 갖춘 카페 겸 갤러리를 짓고자 했다. 그림 속에는 커튼을 열고 창문 밖을 바라보는 순간, 꽃과 나무를 마주할 수 있고, 계절들을 방 안으로 들이는 카페가 구현된다. 그러나 이런 그림 작업에 집중하는 것도 잠시 그는 반군과의 접촉 혐의로 정보기관에 의해 체포되고 연락이 두절된다.
아름다운 풍경 뒤에도 아픈 역사의 흔적은 숨어 있다. 앞서 2010년대에 히말라야 트레킹을 한 신한범의 여행기에도 마오이스트의 출현과 그들에게 통행세 비슷한 돈을 지불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아름다운 제주와 지리산의 구석구석에 역사의 아픔이 숨어 있고, 여행자들이 역사를 기억하며 땅을 밟듯이 이곳을 관광차 방문하는 사람들도 네팔의 역사적 아픔을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히말라야 못지않게 맑고 아름다운 네팔리들의 눈망울 속에 그런 슬픔을 읽는다. 랑탕 하늘에 그때 그 일을 아는지 모르는지 구름 한 점이 무심히 떠가고 있다.
떠도는 자는 구름에 대하여 말할 수 있다/ 구름은 언제 사랑하고 어디서 죽는지/ 왜 한 곳에 머물지 않고 흘러가는지/구름 위에서 서서 흘러가는 것들을 말할 수 있다// 떠도는 자는 구름에게 말을 걸 수 있다/ 막막한 저녁 정처 없는 사람의 슬픔과/ 처음 온 곳의 눈부신 아침 햇살의 경탄驚歎과/ 새날의 희망에 대하여 말할 수 있다/ 떠도는 자만이 구름에게 물을 수 있다/ 길 위에 붙박이 나무의 바람기와/ 집 없는 바람의 조바심과 쓸쓸함/ 근거 없는 자유의 기쁨을 물을 수 있다// 흘러가는 것도 저마다 흐르는 길이 있어/ 구름은 사람의 길을 지우며 날고/ 떠도는 사람은 저마다 신념을 위해/부질없는 헛맹세를 무너뜨리며 간다 <구름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