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종호 여행 칼럼〕 어쩌다, 히말라야 15.
누군가 말해 다오 이생의 비밀
매몰된 랑탕마을(사진 이성운)
다행히 날이 갰다. 등산화 밑창을 덮을 정도로 눈이 오다 그쳤기 때문에 걷는 길에 크게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긴장했던 마음도 누그러지고 앞길에 대한 기대가 조금씩 피어나기 시작했다. 오히려 산천은 환상적으로 변했다. 문자 그대로 환타스틱! 한 절경이었다. 압도적인 규모의 산과 골짜기가 흰 눈을 뒤집어쓰고 하늘을 이고 서 있는 풍경을 어떤 필설로 묘사할 수 있으랴. 눈이 와 산천을 덮어도 본바탕을 덮을 수는 없다. 배경으로서 자연이 아니라 주인으로서의 대자연이 펼쳐진다, 문명 세계에서의 인간과 자연의 주종관계는 여기서 역전된다. 본래의 세계질서로 돌아오는 것이다. ‘히말라야는 신이 머무는 곳이 아니라 히말라야 자체가 신’이라는 누군가의 말을 실감한다. 엎드리듯 겸허함 마음으로 한발 한발 내디디고 주위를 돌아보며 감탄의 소리를 연발할 뿐이다.
날이 험하면 탕샵(3,200m)에서 하룻밤 머무르려던 생각을 고쳐 다시 원래의 계획대로 랑탕 마을(3,430m)까지 가기로 했다. 오늘 눈길에서 좀 수고하면 내일 점심때쯤 강진 곰파(3,860m)에 도착할 것이다. 그러면 오후 한나절을 벌 수 있다. 눈발은 그쳤고 올라가면서 신기하게도 눈이 쌓인 곳이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여기는 눈도 높이에 따라 국지적으로 오는 건가. 신비한 일의 연속이다.
랑탕 마을을 생각하니 다시 마음이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오기 전에 지진 이야기를 들었다. 2015년 네팔 지진 때 가장 피해가 심했던 곳으로 잠자는 사이 한 마을이 통째로 매몰되어 마을 무덤이 되었다는 곳이다. 이 마을은 원래 야크를 방목하고 농사를 지으며 평화롭게 살았던 마을이었는데 지진으로 능선 위 호수가 붕괴되고 토사가 흘러내려 아랫마을은 묻혀버렸고 윗마을은 후폭풍으로 가옥이 모두 전파되었다고 한다. 65가구 중 63가구가 한순간에 땅속에 묻혔고, 희생자가 무려 243명에 달하는데, 마을 주민 175명, 가이드와 포터 27명, 외국인 트레커 24개국 41명이며 이 중 6구의 시신만을 찾았다고 한다.
지진 직후에 많은 나라와 단체들이 이재민을 돕기 위해 여러 가지 캠페인을 벌인 곳이다. 구호물자와 자금과 소방대 등 구호 인원과 장비를 지원해 주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네팔은 여전히 아름답다(Nepal is still beautiful)’는 캠페인을 벌이고, 피해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트레킹단을 조직하였다. 30대부터 60대까지, 젖먹이를 떼어 놓고 온 사람부터 류마티스를 앓는 사람들까지 한국 여성 13명과 현지 여성 포터 13명이 이 계곡을 걸으면서 명상과 치유의 트레킹을 함께 했다고 한다. 네팔을 도운 것이 아니라 히말라야를 통해 치유와 위로를 받았다고 고백한 사람들이다.
굽이굽이 고개를 오르다 큰 고개를 넘어서니 황량한 너덜지대가 열린다. 지질학 용어로 애추崖錐 같다. 지진이 나기 전에는 출렁다리를 건너야 마을로 들어갈 수 있다고 했는데 출렁다리는 온데간데없고 온통 돌무더기로 덮였다. 산사태와 홍수의 흔적은 대략 정리가 되었으나 마을 모습은 사라지고, 산사태로 자갈과 바위로 덮인 계곡 안으로 길이 희미하고 가느다랗게 나 있다. 위에서 무언가 쏟아질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느낌으로 계곡 위쪽을 자꾸 힐끔 힐끔거리며 걷는다. 발밑에는 시신과 집들이 묻혀 있다. 황량함 또한 압도적이다. 쑥대밭이 되었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초토화되었다고나 해야 할까. 감정을 숨기기도, 말을 찾기도 쉽지 않다.
무너진 돌길을 조심스럽게 지나가니 롯지 몇 채가 새로 지어져 있다. 삶이란 모진 것이어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묻힌 사람들 옆에 집을 새로 짓고 살고 있다. 죽은 사람은 그렇다 치고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네 삶인 것이다. 죽은 부모, 형제, 친구와 이웃의 뼈 한 조각도 찾지 못한 채, 저주의 마을을 떠나지 못하고 그 옆에서 눈물을 흘릴 새 없이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어찌 이해할 수 있겠는가!
마을 입구에 초르텐(위령탑)이 서 있다. 당시 사망한 243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평생을 이 계곡을 벗어나지 않고 극악한 자연조건 속에서 마니차를 돌리며 신의 뜻을 찾아 살고자 했던 사람들이다. 히말라야의 한 자락을 걸으며 쉬며 생각하며 여행하다 불귀의 객이 된 외국의 젊은이 이름도 빽빽이 적혀 있다. 이들의 가족이나 지인이 나중에 찾아왔었는지 사진 속에서 웃는 젊은이 앞에 슬픈 꽃들이 놓여 있다. 위령탑 앞에서 모자를 벗고 잠시 묵념을 한다. 네팔 풍습대로 탑 주변으로 코라를 돌았다. 이 길을 먼저 걸었던 동지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며 우리에게도 일어날지 모르는 재해에 대한 경계이다.
네팔의 시인 두르가 랄 쉬레스타가 ‘꽃은 왜 피는가’ 울며 절규하고 있다. “어느 날 시들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꽃은 왜 피나?/ 꽃은 왜 피어나나?/ 누군가 말해 다오 이생의 비밀/ 아침의 달콤한 입맞춤으로 / 가슴 벅차게/ 핀 인생이 따로 없네/ 꽃의 누설,/ 죽은 이 다시 죽을 수 없고/ 살아 있는 자만 죽을 수 있다는 것// 꽃은 다시 말하네/ 오고 가는 사람은 결코/ 내 것이 될 수 없어/ 나 애원하노니, 제발 나를 밀어내지 말아 줘// 나 살아 있으니/ 내 생을 죽이지 말아 줘/ 꽃은 다시 말하네/ 살아있는 동안/ 이렇게 살아있는 동안/ 나 웃으며 살고 싶어/ 꽃은 왜 피나/ 꽃은 왜 피어나나/ 누군가 말해 다오 이생의 비밀”
아름다운 땅에도 비극은 피해 가지 않는다. 참담한 땅을 묵묵히 걷는다. 룽다가 슬픈 영혼처럼 펄럭이고 있다. 걸을 때라야 비로소 나의 육체는 마음과 세상을 연결하는 매개체가 된다.
사는 일이 가끔씩 죽음과 이웃처럼/ 소근소근 하는 것이라는 걸/ 진즉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랐지만/ 위대한 마을 수호신 랑탕 리룽이/ 이렇게 함부로 흔들릴 줄은 몰랐다/ 산이 번개처럼 밀려와 마을과/ 여행자들과 가축들을 함께 쓸어/ 거대한 마을 무덤이 될 줄은 꿈도 꾸지 못했다// 누군가는 사람들의 탐욕이/ 신들의 노여움을 샀다고 쑤군댄다마는/ 그런 것에 변명할 틈도 없이/ 살아남은 사람은 또 살아야 했다/ 산들이 무너져 내리던 밤/ 토사土沙의 삼각파도 아우성과/ 지진이 멈춘 아침의 서늘함을 잊을 수 없으나/ 부모 형제 이웃이 묻힌 마을을 떠날 수 없어/ 무덤 마을 옆에 돌을 쌓아 새로 집을 짓고/ 살아남은 부모와 새끼들을 먹여야 했다// 묻힌 얼굴들이 시시각각 떠오르지만/ 목구멍까지 치미는 슬픔은 미루기로 했다/ 살고 죽는 것이 여반장如反掌이요/ 삶이란 아침 해와 저녁노을 사이/ 비치다 스러지는 잠깐의 빛이라는 걸/ 이미 일찍부터 체득하고 있었지만/ 난로에 다시 불을 지피며 절망은 잊기로 했다// 끓는 밥솥 힘차게 솟는 김을 바라보며/ 살리라 살아남아 이 매몰埋沒의 땅에/ 다시 뿌리 내리는 것만 생각하기로 했다/ 다시 해가 뜬다 명랑하다 일어서야겠다/ 오후엔 날이 흐릴 것이다 그래도 살아야겠다<랑탕 마을>
매몰자 위령탑(사진 이성운)
새로 지은 집들(사진 신한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