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대정(大靜)에 와서 고을을 돌아보고
고요의 깊이와 크기를 가늠해 보니
이름은 멋진 은유이되 직설은
한갓지고 후미진 땅이란 뜻이렸다
만 리 세상 끝 고요의 골방에 묶여
뼈저리게 고립된 추사를 생각하노니
바다가 검고 물결이 사나워질수록
영혼의 고독은 불같이 깊어 갔을 것이고
수선화 노랑꽃 청초(淸楚)를 사랑하여
연행 길에 시를 지어 귀하게 받들던 꽃들이
돌담 아래 지천으로 피어난 천덕꾸러기
제주 수선화를 보며 울고 또 울었으리라
힘주어 거친 먹 갈아 열 개의 벼루를 뚫고
일천 자루의 붓을 꺾어 명문을 썼어도
울며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쓴 글씨 한 점으로는
삭힐 수 없는 그리움을 밀어내지 못하고
세한(歲寒)의 늘푸른나무를 노래했으나
항상 알 수 없는 사단에 휩쓸려 일이 꼬이고
정한 길대로 갈 수 없는 삶을 어쩌지 못하여
추상과 파격의 곰솔나무 그림 몇 점으로도
섬 바닥에서 자신을 구할 수는 없었으리라
경서(經書)에는 없는 삶을 스스로 이끌 수 없어
모진 바람 부는 모슬포 바닷가 유배지에서
이름 모를 자잘한 사람과 꽃 풀들을 벗하며
결코 잠잠할 수 없는 마음과 싸우고 있으니
어쩌다 바다가 숨죽이는 깊은 밤에도
추사의 고요는 결국 끝에 닿지 못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