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물처럼 되돌아오는 법을 모른다
지난날의 영광과 상처에 매이지 말라
앞 마을 뒷마을에 율곡의 화석정과
우계의 사당을 모신 동네의 근본도
한때 마을이 안았던 미군 부대의 치욕과
부대에 붙어 빌어 먹었던 비루함 따위도
마을이 나서 신경 쓸 일이 아니다
추억하거나 꺼려야 할 어떤 사건도 없다
사랑은 항상 현재 시제時制이어야 하듯
삶은 오직 언제나 여기 이 가슴속에 있다
이웃 면面보다 많은 인구 사천의 사람들
가난한 정 넘치도록 살고 있으니
마을의 선善은 전쟁의 오랜 후유를 치유하고
아픈 노인들을 두 팔 들어 보듬는 일이다
힘차고 때로는 흔들리는 새끼들을 돌보는 것이다
선유리에 마음 깊은 이장님과 젊은이들 있어
아침마다 혼자 사는 노인들을 방문하고
실향의 노인들과 아픈 노래를 함께 부르며
가가호호家家戶戶 떨어진 문짝을 달아주고 있다
주름진 꼬부랑 길을 곧게 펼 수는 없어도
꽃철에는 꽃그늘 이마에 꽃등을 달고
꽃보다 환했던 세월을 밝혀주는 사람들이 있다
부끄러워 말라 굽고 세월이 시린 주민들이여
배고픔과 외로움을 달래줄 젊은이들이 있으니
쓰레기 더미를 치우고 공터에 함께 꽃을 가꾸면
열 송이 백 송이 묶인 꽃다발로 거듭나리니
몸에 밴 우울을 털고 늙어서도 두근거리며
담장 벽화에 환한 무리무리 찔레꽃 피어
춤추며 시를 노래하는 꽃향기로 살아나리라
* 마을 주변에 율곡 이이와 우계 성혼의 유적이 있다. 이이와 성혼은 기호학파의 태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