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사유 12

- 아카시아꽃

by 전종호

까맣게 잊고 살았다 그 향기 그 사람

아카시아꽃 한 주먹으로

한 움큼의 허기를 달래던 시절

쌀 몇 줌으로 달랠 수 없었던 허기

새까맣게 잊고 살았다

한 손으로 높은 가지를 잡아주며

기꺼이 가시에 함께 찔렸던 그 동무들

목숨을 위해서는 그까짓 가시 하나쯤

눈감아 주어야 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깨쳐 알았던 사람들

한 치 도 내다볼 수 없었던 그 시대

깜깜한 어둠을 굴리며 함께 자던

그 다짐들을 거짓말처럼 잊고 살았다

어린 친구들 세월의 파도를 넘어 어디서

흰머리 아카시아 향기 날리며 살고 있을까

술에 취해 흔들리는 봄밤의 귀갓길

훅 불어닥친 향기에 무릎을 꺾으며

깊은 그리움을 너무 오래 잊고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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