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념이 없는 건축가 2
오우근 건축가는 부인 함은주 건축가와 함께 <知音(지음)아키씬 건축사 사무소>를 2004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사무소는 서촌의 한옥 골목 안쪽에 위치하고, 사무실 건물도 개량 한옥의 형태를 띠고 있다. 3층의 선룸에서 보는 겨울 인왕산 전경은 겸재의 그림과 다를 바 없다. 영화 <건축학 개론>에 나오는 한옥 빈집 바로 맞은편에 있다.
사무소를 내기 이전 젊은 스탭 시절부터 건축에 대한 몰인식과 부정적 시각에 대해 고민해 왔던 그들은 여전히 건축에 대한 개념의 확대와 건축시공의 실험을 계속해 왔다. <知音아키씬 건축 사무소>라는 이름 안에 내포된 것과 같이 건축 속에서 음악, 관계, 삶, 영화(씬)의 의미를 구현해 내려고 한다. 지음은 한글로 짓는다build는 의미를 가지지만, 한자로는 음악 마니아인 건축가의 취미를 고려한 것이기도 하거니와, 백아절현伯牙絶絃의 고사에 나오는 최고의 친구를 가리키는 말로 이상적인 고객 관계를 추구하는 의미하기도 한다. 아키는 아키텍처(architecture)를 줄인 말로 건축을 의미하고, 씬은 영화 같은 멋진 씬(scene)의 의미를 넘어 삶의 장면 장면들을 건축물 안에 구현해 내는 '현장'의 의미일 것이다.(안 물어봤다. 그동안 만나고 대화한 것을 바탕으로 한 내 생각이다)
영화 <건축학 개론>에서 “자기가 살고 있는 마을을 애정을 가지고 이해하는 것이 건축학 개론의 시작이다”이라는 건축학 교수(김의성 역)의 말이 나온다. 우연의 일치일지 모르지만 오우근과 함은주 건축가는 골목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많다. 서촌의 골목을 돌며 ‘마을 가꾸기’를 하고 있으며 마을 골목에 들어선 낡고 날림의 건축물들의 공존에서 건축의 미와 지향을 발견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오래되어 낡고 후미진 곳에서도 조금만 시간을 할애하면 더 좋은 환경을 만들 수 있고, 건축가라는 타이틀을 통해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이야기 한다. 골목길 안에서 터져 나온 아이디어를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먼저 행동하고 제안하는 것이 자신들의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골목길은 거니는 것은 즐겁다. 정감 어린 모습들이 우리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 주고 더욱이 이 즐거운 골목길엔 건축적인 감동 또한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다양하게 펼쳐지는 집들의 형태, 재료, 색깔, 불현듯이 나타나는 작은 마당, 있을 듯 없어지는 골목과 없을 듯 생겨나는 골목, 높이도 폭도 제각각인 계단들과 핸드레일 깜찍한 창문들과 어수룩한 대문들. 그 다양하고 신기한 것들이 필요에 의해 생겨났고 최선의 선택들이었기에 세월의 관록만 쌓여갈 뿐 일체의 군더기가 없다. 나는 가장 미니멀한 건축을 골목길에서 본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미니멀한 건축들이 의외성과 다양성까지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건축가가 디자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쯤 저런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 그의 말 속에 골목길를 평생 찍던 사진 최민식의 작업도 떠오른다.
전문 건축가가 짓지 않은, 그것도 한 명이 계획적으로 지은 것이 아니라 세월에 따라 수많은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 곁대 지은 골목집과 골목에서 건축적인 영감을 얻고자 하는 이들이 오우근, 함은주 건축가이다. 현실에 발을 디디지 않은 오우근 건축가의 공상적 상상력은 함은주 건축가의 손에 잡혀 수학적 계산에 의해 현실실의 공간과 조형으로 아름답게 자리 잡는다.
서촌 골목에는 그들의 상상력이 있고 그들은 그 골목길 안에 사무실과 집을 차려놓고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