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눌노리 49

- 설계와 설계비

by 전종호

집을 짓기로 결정한 이후 수많은 책을 읽었다. 책뿐만 아니라 EBS <건축 탐구 집>을 시간이 날 때마다 시청하고 심지어 조금이라도 건축이 무엇인가의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영화나 다큐멘터리도 찾아보았다. 책의 제목을 일일이 거론할 필요는 없지만, <착한 건축주는 호구다>라는 제목부터 <시공사도 건축사도 안 알려주는 건축주만이 알려줄 수 있는 집 짓기의 진실>이라는 제목까지. 제목만 보면 마치 집을 짓다가 ‘쫑’이 나거나 ‘영혼까지 탈탈 털릴 수 있다’는 경고 이상의 메시지처럼 느껴졌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라는 답은 유감스럽게도 찾기 어려웠다. 그러나 책에서 얻은 것도 많다. 집짓기의 공정, 낯선 건축 전문용어들의 이해, 다양한 자재들의 장단점, 건축주가 스스로 알아서 챙겨야 하는 것 등등의 실용적 정보 말이다. 그러나 장님이 코끼리 더듬는 격이라 할까? 여전히 오리무중 속에 있다.

어느 책에서 건축가가 건축주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살면서 물건을 사거나 밥 먹거나 이런저런 서비스를 받을 때 발생하는 부가세가 총액의 10%입니다. 만약 내 집을 짓기 위해 예산 3억을 갖고 있다면 그중 설계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요. 부가가치세보다 못한 걸까요, 아니면 그 이상일까요?” ‘싸고 좋은 것’ 싸기만 해도 안 되고 좋기만 해도 안된다. 우리가 일상에서 어쩌다 싸고 좋은 것을 얻었을 때 ‘득템’했다고 소리치지만, 싸고 좋은 것이란 가능한가? ‘싸고 좋은 집짓기’라는 말에 슬쩍 웃음이 나온다. 나 역시 싸고 좋은 것을 원하는 사람에 비껴나 있지 않기 때문이다.


과연 싸고 좋은 집은 있는가? 내가 모르는 싸고 좋은 집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싸고 좋은 집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변호사에게 법률상담을 받을 때 시간당 비용을 지불하는 데 과연 싼 비용으로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까? 싸구려 식자재로 최고의 요리를 주문하는 것과 다른 점이 있나? 내 생각을 너무 확장시키고 있나? 암튼 설계비 역시 건축가의 시간과 노고를 빌리는 비용인데 설계비를 싼 값에, 속칭 허가방에서 하면서 좋은 집짓기 서비스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세상에 싸고 좋은 집은 없다고 결론 내렸다. 그 건축가는 ‘싸고 좋은 집은 성능을 지키면서 선택 가능한 마감재에선 욕심을 버리는 방향으로 지어진 집’이라고 말한다. 여전히 어렵다. 그러나 생각이 깊어지는 대목이다. 건축에 관한 십수 권의 책에서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이 있었다. 추가 비용 문제이다. 비용 부담을 만드는 것은 자재와 디자인, 시공법 등이 자세하게 표현된 상세도면을 가지고 체크하지 않으면 시공 단계로 가면서 추가 공사비를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 부딪친다는 것이다. 결국 그것은 설계에서 제대로 검토되지 않은 집은 시공단계로 가면서 거의 자동적으로 발생하는 추가 공사비는 당연하다는 말 아닌가? 게다가 부실 공사의 그림자도 남는다. 실제 뉴스에서 이야기되는 부실 공사의 원인은 설계와 감리 책임의 부실로 귀결되고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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