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수고하셨으니 이제 여생을 즐기시지요
듣기 좋게 번지레한 말을 다시 생각해 보니
하던 대로 하루하루 사는 것이 인생이요
원래 누구나 처음부터 여생餘生이 인생이지
여생이라고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일을 물러났다고 남는 인생이 아니라
시간을 한 시간 하루 이틀로 나누지 않고
할 일을 이 일 저 일로 칸을 막지 않으며
하늘처럼 둥근 시간에 기대어 살뿐이다
서둘러 끝내야 할 일도 시간도 한정이 없으니
아침저녁 하루 해면 족하지 않은가
젊어 늘 정처 없는 안갯속을 떠다녔지만
안개강을 넘어와 이제 보이지 않는 건 없다
시간의 부유에도 짐짓 게으르지 않고
생활의 가난에도 차마 비굴하지 말며
오직 마알간 한가함 한 모금 끌어들여
하류의 강물소리에 온전히 귀 기울이며
물소리 따라가다 소리가 그치면 멈출 뿐
강물이든지 저 하늘 빈 마음 구름이든지
흘러 흘러가는 것들에게 종점終點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