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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종호 Oct 27. 2023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

제주에 와서 내내 돌아감歸과 돌아갈 곳歸巢을 생각했다. 몇 군데를 둘러보며 내내 물러남과 밀려남을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과, 퇴로를 끊고 돌아가지 않는 사람과, 바다뿐 아니라 운명에 둘러싸여 섬을 빠져나갈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했다. 왕명이 없이는 자발적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유배자들과, 어떤 이유인지 알 수 없으나 남몰래 섬으로 숨어 들어온 사람들과, 법적으로 이도離島할 수 없는 섬 주민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했다.   

   

조선 시대 서울에서 보면 제주는 말이나 생선 등 조공을 바치는 야만의 땅이요, 양반들에게는 명령을 받거나 벌을 받거나 유배지에 다름 아니었다. 유배지 중에서도 절도絶島요, 절도 중에서도 가장 멀고 험악한 원악지遠惡地였다. 추사 김정희의 유배지 대정마을에 갔다. 대정마을은 제주에 도착해서도 80리나 더 들어가야 하는 원악지 중의 원악지였고, 그의 벌은 거기에서도 탱자나무 울타리 속에서 갇혀 지내야 하는 위리안치였다. 추사의 입장에서 보면 도착해 보니 대정大靜이라는 고을 이름이 깨달음에서 오는 큰 고요가 아니라 멀리 세상 끝까지 쫓겨난 자들이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한적함의 이름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섬에서 정신적 고립과 조악한 음식 등을 참아내는 모습이 아내에게 보낸 그의 편지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山菜는 더러 있나 본데 여기 사람은 순전히 먹지 아니하니 괴이한 풍속입니다. 고사리 소로장이 두릅은 있기에 간혹 얻어먹습니다. 도무지 저자와 장이 없사오니 평범한 것도 매매가 없어서 있어도 몰라서 얻어먹기 어렵습니다.”     


냉장기술도 없고 수송 수단도 변변치 않은 당시에 장을 보내라, 민어와 곶감을 말려서 보내라 어째라 하는 등등의 편지의 말들을 보면 당시 양반들의 철딱서니 없음이나 민중들의 생활과의 괴리를 느끼기도 하지만, 마땅한 식품이나 의복을 구할 수 없는 현지의 궁핍한 사정을 짐작해 볼 수도 있다.   

  

아무튼 추사 김정희는 먹을 것과 입을 것과 몸의 질병과 싸우며 변방의 이 땅에서 살아냈다. 대정 향교와 곰솔 나무 몇 그루는 그의 예술혼에 투영되어 세한도라는 이름으로 남았고, 세한도의 쓸쓸한 집 한 채는 추사관의 형상으로 21세기에 다시 살아났지만, 예나 지금이나 죄는 법과 도덕이 아니라 가진 자들의 힘겨루기에서 결정되는 것임을 다시 생각한다.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가 고민이 한가득인 사람이 돌아갈 길이 차단된 추사의 적거지에 와서 추사의 사무치는 외로움과 그리움을 생각하고 있다.      


외국이나 다름없는 고립된 섬에서 극심한 외로움을 참아내는 방편은 가족의 편지 한 장이었을 터인데, 한 달이나 지나서야 알게 된 아내의 죽음에 부친 기막힌 편지 한 대목에 울음이 목울대에 걸려 넘어가지 않는다.  

    

“아아, 나는 형구가 앞에 있거나 유배지로 갈 때, 큰 바다가 뒤를 따를 적에도 일찍이 내 마음이 이렇게 흔들린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당신 상을 당해서는 놀라고 울렁거리고 얼이 빠지고 혼이 달아나서 아무리 마음을 붙들어 매려 해도 그럴 수가 없으니 이 어인 까닭인지요? 아아, 무릇 사람이 다 죽어갈망정 유독 당신만은 죽지 말아야 했습니다. 죽지 말아야 할 사람이 죽었기에 이토록 지극한 슬픔을 머금고 더 없는 원한을 품습니다. 그래서 장차 뿜으면 무지개가 되고 맺히면 우박이 되어 족히 공자의 마음이라도 뒤흔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경주 김씨와 안동 김씨 세도가의 정치 싸움에 휘말려 55세에 와서 8년을 넘게 섬에서 살다 서울로 다시 돌아갔다. 지금 나와 비슷한 나이다. 


         추사 생각     


멀리 대정(大靜)에 와서 고을을 돌아보고

고요의 깊이와 크기를 가늠해 보니

이름은 멋진 은유이되 직설은

한갓지고 후미진 땅이란 뜻이렸다

      

만 리 세상 끝 고요의 골방에 묶여

뼈저리게 고립된 추사를 생각하노니

바다가 검고 물결이 사나워질수록

영혼의 고독은 불같이 깊어 갔을 것이고

    

수선화 노랑꽃 청초(淸楚)를 사랑하여

연행 길에 시를 지어 귀하게 받들던 꽃들이

돌담 아래 지천으로 피어난 천덕꾸러기

제주 수선화를 보며 울고 또 울었으리라    

 

힘주어 거친 먹 갈아 열 개의 벼루를 뚫고

일천 자루의 붓을 꺾어 명문을 썼어도

울며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쓴 글씨 한 점으로는

삭힐 수 없는 그리움을 밀어내지 못하고     


세한(歲寒)의 늘푸른나무를 노래했으나

항상 알 수 없는 사단에 휩쓸려 일이 꼬이고

정한 길대로 갈 수 없는 삶을 어쩌지 못하여

추상과 파격의 곰솔나무 그림 몇 점으로도

섬 바닥에서 자신을 구할 수는 없었으리라

    

경서(經書)에는 없는 삶을 스스로 이끌 수 없어

모진 바람 부는 모슬포 바닷가 유배지에서     

이름 모를 자잘한 사람과 꽃풀들을 벗하며

결코 잠잠할 수 없는 마음과 싸우고 있으니

어쩌다 바다가 숨죽이는 깊은 밤에도

추사의 고요는 결국 끝에 닿지 못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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