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강정마을에 와서 보니
마을 뒤에 서서 말없는 한라산은 한결같고
잔파도 조용한 강정바당 또한 한 바다인데
범상하지 않은 것은 오직 사람의 일 뿐이니
꼼짝 없이 제자리에 앉아 있는 범섬은
마을에서 일어난 지난 일들을 알고 있다
부르지 않아도 달려와 기꺼이 날리던
생명 평화의 깃발은 빼앗기고
명진 스님의 간절한 목탁과
문 신부 쉰 목소리 미사는 허망虛妄이 되어
냇깍에서 월평 포구까지 구럼비는 폭파되고
고깃배 몰던 어부의 물길은 군대의 바다가 되었다
평화의 외침과 발걸음을 걷어 낸 자리에
말끔한 부두와 성채 같은 방파제를 세우고
구불구불 흘러가던 돌담 사이 올레는
직선으로 펴지고 서로 이어져
사람 살던 낮은 집들을 밀고 들어선
말 많은 군항의 질긴 혈관이 되었다
마을과 괸당*을 찢고 저항의 목소리 눌러
외세外勢를 끌어들인 평화가 참 평화인가
외치는 주민들 쫓겨난 길가 천막
사람의 일은 이렇게 사연도 곡절도 많은데
푸릇푸릇 한 뼘쯤 자란 마늘밭 주변에
다시 매화와 유채꽃은 무심코 피어
길 가는 사람의 속을 뒤집고 있다